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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펭귄 Aug 11. 2022

똥이 된 아이

딸에게 쓴 편지 2.


Ⅱ 사춘기 초입에 선 아이.(5학년이 된 딸)                                                                                                                                                                                         

#. 육아의 정답     

아이의 방학이 끝나갑니다. 방학이 시작될 때, 마눌님은 아이에게 선전포고했었습니다.

"이제 엄마는 네 방학 숙제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까, 네가 알아서 미리미리 해둬.

숙제를 못 해서 선생님께 혼나든, 친구들한테 망신당하든 네가 알아서 해!"

아이는 호기롭게 그러겠다고 대답했었죠.


어젯밤 아이의 학교 과제물을 챙기던 마눌님이 폭발했습니다.

"넌 방학 동안 뭐 했어? 엄마가 하라고 했던 걸 하나도 안 했네? 허구한 날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 앉아서 뭐 한 거야?"     

마눌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집안의 분위기는 화산폭발 직전과 다름없었습니다. 아이는 눈물 콧물을 다 쏟았습니다. 본인이 해야만 하는 방학 숙제를 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저항도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이의 눈물에 마음 편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잘못을 편들 생각도 없었습니다. 잘못한 일은 야단을 맞아야죠. 마눌님을 말리지 않고, 침대 방문을 닫고 누웠습니다. 조금 후 눈물을 훔치며 아이도 들어와 눕습니다. 아이는 책 읽을 생각도 안 하고 누워있는 아빠를 슬쩍 보더니 한마디 합니다.

"아빠 (훌쩍) 오늘은 책 안 읽어줘? (훌쩍훌쩍)"

"책은 스스로 읽어야지, 아빠가 한두 페이지 읽어주는 게 무슨 소용이야?"

방학 동안 독후감 숙제를 엉망으로 해 놓은 아이에게 일부러 차갑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읽어주면 안 돼?"

"책 내용은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단어 뜻을 알아 가는 게 중요한 거야?. 아빠가 읽어주는 게 무슨 소용이야?"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집니다. 아이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결국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한두 페이지 읽다 보니 어느새 눈물에 흠뻑 젖은 눈이 아빠 어깨에 바짝 붙어 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는 졸음이 오는지 “인제 그만 읽어” 하고는 돌아눕습니다. 책을 덮으며 아이에게 말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 속이는 건 잘못한 거야.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갔으면 공부했어야지,

공부하는 척하고 유튜브 보고, 핸드폰 보고. 결국 엄마에게 혼나고 울고…."

"잠깐만 보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시간이 금방 가. 내 마음대로 안 돼."

" 아빠가 매일 말하잖아. 생각한 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해, 생각을 기다리면 사라져 버리는 거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서…."

아이는 다시 눈물을 흘리고, 코를 몇 번이고 풀고 나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창 놀고 싶고 호기심 많은 나이입니다. 유혹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는 것 부모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이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보다 몇 곱절은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조금 더 노력하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하게 됩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이 맞는지, 그냥 하루하루 즐기며 행복하게 살게 두는 것이 맞는지, 부모가 아이를 위한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지,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삶에 정답을 찾을 수 없듯이, 육아의 길에도 정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 생일선물 (2020년 2월)     

아침부터 맛있는 소고기미역국 냄새가 거실에 가득합니다. 마눌님은 평소에 냄새 때문에 잘 굽지 않던 조기도 굽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빠의 생일입니다. 마눌님의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생일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생일선물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눌님의 잔소리 없는 날을 만끽했습니다. 주말이라 거실에서 뒹굴뒹굴하며 TV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마눌님의 생일선물은 하루 동안 아빠에게 잔소리하지 않기입니다.     

"너는 아빠 선물 없어? 아빠는 네가 사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습니다. 잠시 후 아이는 공부방에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습니다. 1시간 정도 후에 아이가 뒷짐을 지고서 쭈뼛쭈뼛 아빠에게 다가옵니다.     

"아빠, 이거 선물이야. 읽어봐!."

아이는 부끄럽게 카드를 건네도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성 들여 꾸민 생일 카드입니다.

"아빠 생신 축하합니다."라는 제목과 사연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아빠가 좋다는 내용들이 이어지고 감동적인 마지막 문장이 심금을 울립니다.     

"부드러운 아빠의 목소리는 매일 제 심장을 저격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정말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아빠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감정도 느껴졌지만 '초등학생의 문장치고는 꽤 멋진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드를 다 읽고 아이를 꼭 안아줬습니다.

"고맙다 잘 자라줘서…."

아! 카드 속에는 아빠의 생일선물로 1,000원 지폐도 한 장 들어있었습니다. 1,000원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됩니다.


#. 꿈 2. 나무에서 떨어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높은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간 나무가 하필이면 가시나무입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위태롭게 굵은 가지에 서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옆에 솟은 참나무로 옮겨 가기 위해 가지 끝으로 이동했습니다. 가지마다, 줄기마다 삐죽삐죽 솟은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 집중하다 보니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손을 뻗어 잡은 머리 위 나무줄기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습니다. 자칫 한눈을 팔면 손을 크게 다칠 수 있었습니다. 발도, 손도 모두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마지막 한 발을 떼는 순간 나무 밑에서 아빠를 바라보던 아이가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나무를 흔들어 댑니다.

‘이 굵은 나무가 저 꼬맹이가 민다고 흔들리겠나?’ 하고 안심하는 순간 나무가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우리 딸이 이렇게 힘이 셌었나?’ 당황하는 순간 난 나무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눈동자 옆으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슝슝 지나갑니다.      

"으~~허~~헉~~" 저절로 비명이 나옵니다.

후두두둑…. 쿵!!

내 몸뚱어리는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얼굴에도 상처가 났는지 얼얼합니다.

"아~ 빠?"

아이가 아빠를 부릅니다. 아이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위험한 장난을 친 아이를 화난 표정으로 노려봤습니다.     

"아빠 괜찮아~?"

아이가 침대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빠를 걱정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가시나무도 참나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난 침대 아래 매끈한 방바닥에 누워있습니다.

"응. 괜찮아."(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아빠 왜 침대 밑에서 자고 있어?"

"꿈꾸다가 떨어졌나 봐. 아빠 괜찮으니까 어서 자~~“

침대 위로 올라가 아이 가슴을 토닥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습니다. 정말 실제 같은 꿈입니다.     

침대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영역은 70%, 아빠의 영역은 30%입니다. 그 30%의 영역마저, 잠결에 움직임이 활발한 아이에게 침범당하기 일쑤입니다. 종종 아이 발에 차이기도 하고, 주먹에 얼굴을 맞기도 하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합니다.     

떨어지고 차여도 따님과 함께 잠을 청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 눈사람. (2020년. 2월)     

일요일 아침 때늦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창밖 좀 봐봐. 눈 온다.~"

"와. 나도 볼래."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간 아이는 눈 내리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합니다. 한참을 베란다에 있다가 들어온 아이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놀이터에서 놀다 오겠다고 조릅니다. 엄마의 승인이 떨어지자 아이가 바빠졌습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그 어느 때 보다 빠르게 나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이는 쌓인 눈을 밟습니다. 이번 겨울엔 눈이 쌓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밟는 눈이 이번 겨울에 아이가 밟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눈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눈도 밟고 손으로 눈도 뭉치고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에 장갑이 없습니다.

"장갑 왜 안 끼고 왔어?"

"장갑 찾아봤는데, 없었어."

"얼마 전에 친구랑 눈썰매장 갔을 때 사용했던 거 있잖아"

"못 찾았어. 엄마도 어디에다 뒀는지 모르겠대"     

결국 내 장갑을 아이에게 양보했습니다. 눈 쌓인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뭉쳐 아빠에게 던집니다.

"역시 자연 눈이 최고야. 잘 뭉쳐져…."

"눈썰매장에 있는 인공눈보다는 자연 눈이 잘 뭉쳐지지?"

"눈 잘 뭉쳐지는데, 눈사람 만들까?“

"아빠는 몸통 만들어, 나는 머리 만들게~"

"그래. 아빠도 눈사람 진짜 오랜만에 만들어 본다."

"아빠 눈사람 만든 적 있어?"

"그럼 아빠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눈사람 정말 크게 만들었어.

지금 너만큼 큰 눈사람 만들었지"

(아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 약간의 허풍은 필수입니다.)

"와 진짜? 우리도 만들어 보자"     

둘이 작은 눈 뭉치를 만들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굴리다 보니 손이 너무 시립니다.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녹이고 있는데 아이가 장갑 한 짝을 건넵니다. 눈 뭉치를 굴리는데 한 짝이면 된다면서, 왼손 장갑을 양보해줍니다. 고마운 따님입니다.     

눈사람을 굴리며 놀이터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땀이 흐르네요. 몸통은 제법 커졌습니다. 몸통 위에 아이가 굴린 눈을 올리고 눈사람 얼굴을 꾸몄습니다. 눈사람 꾸미기는 아이가 도맡아 했습니다. 코가 될 당근이 없어 아쉽긴 했지만, 나뭇가지로 머리숱도 만들어 얹어주고 눈과 팔도 만들어줬습니다. 아빠가 어릴 때 만들었던 추억 속 눈사람 크기는 아니지만, 아파트 놀이터에서 가장 큰 눈사람입니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주말 아이와 기분 좋은 추억을 선물했습니다.          


#. 봄방학과 코로나 (2020년 2월)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왕관'이란 의미를 가진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는 집안에만 있습니다.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아이의 개학도 1주일 연기됐습니다.     

아빠 : "수민, 너희 봄방학 일주일 더 한대, 개학이 연기됐대"

따님: "야호~~ 하하하"

엄마: "어휴, 일주일을 더 있어야 한다고?"

따님 : "아빠! 아빠! 난 코로나가 정말 나쁜 애인지 잘 모르겠어~~ 흐흐흐“     

개학 연기 소식에 엄마와 아빠, 아이의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아이는 일주일 더 논다는 생각에 신이 났고, 엄마는 일주일 동안 애 뒤치다꺼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져 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더 심해지면서 아이가 외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학원도 문을 열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는 집 밖에 나갈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몇일이 지나자 아이도 갑갑해질 만합니다.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매일 집안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학원 숙제하는 아이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아이는 이 상황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아이 방은 시끌벅적해집니다. 단짝 친구들 여럿이 모여 동시 통화를 하면서 게임을 합니다. 딸이 친구들과 온라인 모임을 할 때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 하하 호호 웃음소리도 커지고 목소리가 한껏 높아집니다.      

요즘 아이들은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스마트폰 속 게임 캐릭터를 통해 얼마든지 만남을 즐기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집콕생활입니다. 집안에 갇혀있던 스트레스를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다 날려버리는 듯합니다.     

코로나19가 빨리 안정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스크를 벗는 날 일단 따님이랑 야외에 나가 신나게 뛰어야겠습니다. 아이와 앵무 연도 날려볼까요?          


#. 아이의 카톡(2020년 3월)     

카톡~ 카톡~ 출근하자마자 휴대폰 카톡 알림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울립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순식간에 50통이 넘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초등생들의 대화입니다.

"오늘 아빠랑 '작은 아씨들'이란 영화 보러 간다."

"나는 점심때 삼겹살을 먹는다!!"

"나 학원인데 몰래 폰하고 있다! 카카카"

"학원 끝나고 로블(온라인 게임) 할 사람??"

"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알았다!"


아이와 친구들의 카톡방입니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는 아빠의 카톡으로 친구들과 카톡방을 만들어 놨습니다. 봄방학이 길어지면서 아이는 친구들과 카톡방에서 수다를 떨어댑니다.     

아이 친구들 카톡 알림 메시지는 끊이지를 않습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창이 영 신경 쓰여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대화방을 클릭해 버렸습니다. 다시 업무에 몰두하려고,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컴퓨터 모니터 한쪽 구석에서 새롭게 뜨는 카톡 메시지…. "카톡 ♪~" "읽씹하는 사람 누구임?"     

아이들 대화방 인원은 총 4명. 지금까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이밖에 없습니다. ‘헉! 이거 어떻게 하지’ 가만히 있다가는 친구들이 아이를 오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해요. 수민 아빠입니다. 수민이가 핸드폰이 없어서. 카톡을 못 봐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보여줄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흐흐흐”

휴~~.다행히도 아이와 같이 한두 번은 만나본 사이라 친구들의 오해 없이 잘 풀렸습니다.     

저녁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빠의 휴대폰은 아이 것이 돼버립니다. 카톡하고, 통화하고, 게임하고,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가지고 놉니다.

"너는 왜 휴대폰 사달라는 말을 안 해?"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불편은 없어!"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아빠가 불편하지?"     

아이에게 휴대폰을 장만해줘야겠습니다. 아이가 슬기롭게 휴대폰을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의 복수

요즘 아이는 숲속 성에 갇힌 라푼젤 같습니다. 좋아하는 영어학원도, 미술학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합니다. 학원들은 매일 아이가 해야 할 숙제를 집으로 보내옵니다.     

비좁은 집안에 엄마랑 단둘이 있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잦습니다. 아무리 귀여운 외동딸이라도 마눌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초반에 호기롭게 엄마에게 반항하다가도 결국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후퇴합니다.      

저녁 시간입니다. 아이는 수학 문제로 엄마에게 혼이 난 후입니다. 따님과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따님이 명란젓을 젓가락으로 쓱 집어서 엄마 국그릇에 넣습니다. 마눌님은 식탁을 차리느라 이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 너 뭐한 거야…?'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입 모양으로 물었습니다. 아이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승자의 미소를 짓습니다.

'아빠는 모른 척하고 있어….'

아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꾹 참으며 아빠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얘기합니다. 일을 마친 마눌님이 식탁에 앉아 맛있게 국 한 숟가락을 먹자 아이가 세상 행복하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엄마 "넌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이 "하하하 그럴 일이 있어…."

엄마 "애는 왜 이래?"

엄마는 아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소심한 복수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명란젓 조금 국에 들어갔다고 국 맛이 변했을 리는 없습니다. 몸에 해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명랏젓 한 덩이로 아이는 엄마에게 스스로 무엇인가 복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혼자만의 소심한 복수입니다.     

잠깐, 이 녀석 자다가 아빠에게 발길질하고, 주먹질하는 것도 혹시 소심한 복수였을까요?          


#. 행운을 주는 마리모(20년 3월)     

"아빠, 아빠! 마리모가 떠 올랐어."

"와 진짜야?"

"진짜야. 나 소원도 빌었다."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마리모 소식을 전했습니다. 카톡으로 전송된 사진에는 정말 마리모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습니다. 마리모가 집에 온 것은 1년 전 이었습니다.     

몇 주 전 일요일 아이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아빠를 데리고 성수동 ‘커먼그라운드’ 쇼핑몰에 갔습니다. 푸른색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쇼핑몰이라 지역 명소가 된 곳입니다. 한때는 아빠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아빠도 즐겁게 따라갔었습니다.     

아이는 쇼핑몰에 들어서자마자 마리모 파는 가게로 갔습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마리모 매장과 마리모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꿰고 있었습니다. 마리모 어항과 모래, 장식을 고르고, 열심히 어항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다 똑같이 생긴 마리모를 신중히 고른 다음 어항에 담아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마리모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줘야 한대."

"마리모는 기분이 좋으면 물에 뜬대."

"물에 떴을 때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대."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항을 품에 꼭 안고서, 자신이 알고 있는 마리모에 대한 지식을 조잘대며 얘기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일요일마다 마리모 물을 갈아준 것은 아빠였습니다. 초반에 반짝 관심을 두던 아이는 마리모에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마리모 물을 갈아주면서 따님에게 물었습니다.     

"수민, 마리모는 살아있긴 한 거야?"

"마리모가 아니라 마린이거든('마린이'는 아이가 붙여준 마리모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살아있지. 애는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동물이야."

“그런데 왜 맨날 바닥에만 있나?"

"개들은 기분이 좋아야 물 위로 올라오는 거야"

어느새 아빠 곁으로 와서 마리모를 손바닥에 올리고 동글동글 굴리면서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리모 어항을 청소했습니다. 어항 속에 들어있던 산호 가지와 장식물도 빼내 깨끗이 닦아주고 마리모도 씻어주었죠.

아이가 어항을 청소하고 불과 3일 뒤에 마리모가 물 위쪽으로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청소를 해줘서 '마린이'가 기분이 좋아진 걸까요?     

아이가 관심을 주니 물 위로 떠 오르는 마리모가 신기했습니다.     

알고 보니 마리모가 물 위로 떠 오르는 것은 광합성으로 인해 기포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아이는 소원도 빌고 마리모에 대한 애정이 한층 더 커졌습니다.          


#. 한 이불 덮는 사이 (2020년 3월)     

아빠, 나 졸려~"

"먼저 자, 아빠 드라마 좀 보고 들어갈게…."

"치, 어제도 나 먼저 잤는데"

"조금 늦게 들어가는 것뿐이잖아. 잠은 딸이랑 같이 자는 거야."

"딸보다 드라마가 더 중요하냐?"

"헉! 당연히 딸이 더 중요하긴 한데, 오늘만 봐주면 안 될까?."

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지난 주말 좋아했던 드라마 최종회를 보며 맥주 한잔 마시고 있는데, 같이 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아이가 훌쩍입니다. 결국 드라마를 포기하고 아이를 따라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다 큰 녀석이 맨날 아빠랑 자려고 하냐?"

"어제도 혼자 잤는데, 오늘도 먼저 자라고 하니까. 그렇지."

"혼자 자는 건 아니지, 아빠가 조금 늦게 자는 것뿐이지."

"잘 때도 혼자고, 아침에 눈 떴을 때도 나 혼자면 혼자 잔 거지."

"아! 딸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아빠는 네 옆에서 잤어,

네가 이불 걷어차는 거 다시 덮어주느라 밤잠도 설치고."

"잠든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아."

"하하하 딸이 알 수는 없지. 아무튼 오늘은 아빠 안 나갈 테니 어서 자자."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훌쩍이던 따님을 겨우겨우 달래고 잠을 잤습니다. 아이 말마따나 드라마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아빠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 딸이 있는데.     

따님과 한 이불을 덮은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따님의 세 살 때부터 줄곧 아이와 같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중 몇 달은 아빠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며, 아빠와 따로 잔 적도 있었지만 결국 아빠가 옆에 있어야 좋은 꿈을 꾼다며 다시 아빠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빠의 코골이 소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가 신기합니다. 이제 청소년이 되면 아이는 혼자서 잠을 자겠지요. 이렇게 옆에 누워 잠이 드는 것도 몇 해 남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원할 때 옆에 있어 주려고 오늘도 노력합니다.           


#. 선거의 원칙 (2020년 4월)     

아침 8시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아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납니다. 거실에 앉아 있는 아빠를 확인한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네요.     

"아빠 회사에 안 갔어?"

"오늘 선거 날이잖아. 아침은 뭐 먹을래?"

"그렇구나!. 선거 날 좋네. 아빠는 누구 찍을 건데?"

"비밀이야. 우리나라 선거는 비밀선거의 원칙을 갖고 있어. 흐흐흐"

"흥!. 쳇!."

"그나저나 밥은 뭐로 해줄까? 콘플레이크? 아니면 계란밥?"

(아빠가 해주는 밥은 매일 똑같습니다. 간장 계란밥이나 콘플레이크 둘 중 하나입니다)

"나도 뭐 먹을지 안 가르쳐 준다. 비밀이다. 뭐…."     

아이는 아빠가 누구에게 표를 줄지 말을 안 해준다고 자기도 무엇이 먹고 싶은지, 말 안 해준다고 협박입니다. 밥을 굶어봤자 자기 배가 고프지, 아빠 배가 고픈 게 아닌데도 말이죠. 결국 아이의 단식투쟁에 아빠의 비밀선거 원칙은 무너졌습니다.     

"아빠는 아직 결정은 안 했지만, 00색은 안 찍을 거고, ☆☆색이나 △△색을 찍을 거야”

"00색은 왜 안 찍는데?"

"그건, 힘들게 앞으로 걸어 온 길을 되돌리는 것 같아서, 그나저나 아침밥은 뭐 먹고 싶은데?"

"그냥 아빠가 주는 대로 먹을게…."     

선거 날 아이의 아침 식사는 계란밥이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아이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향했습니다.     

투표하며 아빠 세대 보다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값이 몇 프로 더 오르는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하게, 더불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말입니다.              

 

#. 아이 쌤(선생님)은 엄마     

"예쁘고 성격 좋은 쌤 만나면 뭐 해?, 우락부락한 엄마가 나한텐 쌤인데. ㅜ,ㅜ"

아침부터 아이가 카톡으로 투정을 부립니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아이의 아침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가 내 얘기를 무시하고 화만 내잖아. 나도 하는 방법을 안다고 말했는데, 기다리라고 혼내고, 글씨 못쓴다고 또 혼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하하"

"나는 억울하다고, 웃지 말라고."

"엄마는 왜 그렇게 말했대. 우리 딸도 이제 다 컸는데…."

"그러니까, 엄마는 나보고 맨날 가만히 있으라고, 망치지 말라고 하면서 큰소리만 쳐~"

"엄마에게는 수민이밖에 없으니까, 너무 소중하니까, 조심스러워서 그런 거야…."

"조심스럽긴 무슨 부숴버릴 것처럼 화낼 때도 많은데 뭐."

"수민이도 엄마 입장이 되어보면 알게 될 거야. 화 풀고 공부해. 오늘도 화이팅."     

요즘 아이는 엄마와 매일 전쟁입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면서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칠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는 힘과 말발로 엄마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해가 갈수록 엄마에게 말대꾸도 많아지고, 가끔 엄마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마눌님은 마눌님대로 고충이 많습니다. 온종일 아이 옆에 붙어서 수업 잘 듣는지 감시하고, 삼시세끼 밥 먹이고 하다 보면,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는커녕 집 안 청소할 시간 내기도 빠듯합니다. 온라인 수업 접속이 못해서 몸이 달았다는 둥,

딸내미가 얼마나 못됐는지 아냐는 둥,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마눌님은 가슴에 담아둔 속내를 쏟아냅니다.     

아이가 학교를 못 간지 어느새 2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부모 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재택수업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도, 마눌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실수도 있고 오해도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실수는 만회하고, 오해는 풀면서 이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 새로운 것에 모두가 익숙해져 결국엔 새로움도 평범하게 될 것입니다.      

"라떼는 말이야,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었었어…."

아이는 아마도 오늘을 추억하며 미래의 자식들에게 얘기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늘은 아이에게도, 마눌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돼 있을 것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2020년 6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저녁을 먹다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빠의 뜬금없는 질문에 딸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합니다.

"둘 다 싫어!"

"헐~~. 뭐냐…."

"그러게 왜 그런 질문을 하실까?"     

어릴 적 아이는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둘 다 좋아"라고 답을 했습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큰아빠랑 놀고 있는 아이에게 "큰 아빠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봐도 "둘 다 좋아"라고 답을 하고 했습니다.     

"어떻게 낳아주고 길러준 아빠하고, 잠깐 놀아준 큰아빠가 같을 수 있어?"라고 아이에게 투정 섞인 말을 하면 아이는 큰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다가와 "솔직히 나는 아빠가 좋은데, 그렇게 말하면 큰아빠가 슬퍼하잖아."라고 귓속말로 얘기해줍니다.     

어릴 적 따님은 양자택일의 질문에 항상 "둘 다 좋아" 였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 "아빠와 강아지"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떤 질문에도 ‘둘 다 좋아’였습니다.     

그런 녀석이 머리가 좀 컸다고 "엄마 아빠 둘 다 싫어"라고 답을 하다니…. 아이의 장난이란 걸 알지만 왠지 서운했습니다.     

밤이 되어 여느 때와 같이 아이와 같이 누웠습니다.

”아빠 책 읽어줘요.“

"흥! 아까 아빠 싫다고 했잖아. 아빠 싫다는 애한테 책 안 읽어 줄 거야"

"치~ 그럼 아빠는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그런 건 묻는 거 아니다."

"아빠도 대답 못하면서 왜 당연한 걸 물어봐요…."

"그래, 책이나 읽자."     

결국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가 부쩍 컸음을 느낍니다. 키도 커지고 생각도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몸도 생각도 어른이 돼가지만 순수했던 동심은 조금 더 오래 간직했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마음입니다.

          

#. 어린이날 선물 (2020년 5월)     

"내가 무엇을 가장 갖고 싶으냐 하면…."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을 묻는 아빠의 물음에 아이가 대답을 주저합니다.

산타가 주는 선물도 아닌데, 선뜻 대답하지 않으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어린이날 선물로 어떤 거 사줄까? 스케이트보드 사줄까?"

(스케이트보드는 녀석이 갖고 싶어 하는 목록 중 하나입니다)

"롱보드겠지~"

"그래 롱보드, 롱보드 사러 가자"

".......... 그래….“

아이의 반응이 시원찮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뜨뜻미지근합니다. 한밤중이 돼서야 따님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됐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어 주려는데 따님이 귓속말로 소곤거립니다.

"아빠 현질이 뭔지 알아?"

"현질? 음. 현금으로 물건을 산다는 말 아닌가?"

"응~ 비슷한데, 온라인에서 유료 아이템을 돈 주고 산다는 뜻이야."

"온라인 아이템 사는 걸 말하는 거구나."

"나 사실은 어린이날 선물로 로블록스에서 현질하고 싶어."

"어린이날 선물로 게임 아이템을 사달라고? 당장은 약속 못하겠고, 먼저 얼마인지 보자"     

어린이날 따님이 보여준 게임 아이템 금액은 5,900원이었습니다. 엄마 몰래 결재해 줬더니, 아이의 얼굴색이 환해집니다. 정말 갖고 싶었나 봅니다. 엄마에게 게임 많이 한다고 매일 혼났던 터라, 아이템 사달라는 말을 못 하고 속으로 몇 날 몇일을 고민했을 겁니다. 오천구백 원으로 아이에게 이 정도 기쁨을 줄 수 있다니 아빠도 손해 보는 선물은 아닙니다.      

아이는 친구에게 새로 산 아이템을 자랑하며 어린이날을 즐겼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아이템 때문에 친구가 살짝 삐쳤다고 하더군요. 친구의 기분이 상했을지 몰라도 아이의 표정에는 은근히 아이템 부심이 드러납니다.     

솔직히 아빠도 어린이날을 저렴하게 보낼 수 있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저렴한 선물로 어린이날을 때운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5월은 따님의 생일도 있습니다. 미리 예쁜 롱보드를 찾아봐야겠습니다.          


#. 어버이날 선물(20년 5월)     

”항상 사고뭉치 똥고발랄 저를 키우느라 힘드시죠?

엄마 아빠께 든든한 딸이 되고 싶은데 제가 부족한 거 같아요.

말썽 피우지 않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을게요.

나중에 돈도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사랑해요~“

수민 올림.     

아이가 어버이날 쓴 편지입니다. 종이로 예쁘게 접은 '카네이션 화분'과 함께 편지를 선물했습니다. 아이는 카네이션 화분을 만드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면서, 두 개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카네이션 화분은 엄마와 아빠 공동선물이라고 합니다.     

편지를 읽다 호강시켜 준다는 말에 웃음도 나고, 어느덧 훌쩍 자라 감사 편지도 쓸 줄 알게 된 아이 모습에 흐뭇한 미소도 나왔습니다. 다음 날 외가댁으로 가는 내내 아이는 휴대폰만 보고 있습니다. 외가 식구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도 휴대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휴대폰을 빼앗았더니 아이는 입이 삐죽 나와서 표로퉁 해졌습니다. 휴대폰을 보지 못해서인지 심술도 부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식구들 듣지 않게 조용히 따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어제 편지에 쓴 내용은 다 거짓말이야?"

"아니. 아빠한테 짜증 내는 게 아니라. 그냥 배가 불러서 먹기 싫다고.“

”배부르면 조용히 있어야지 네가 짜증을 내면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도 불편해지잖아!“

아이는 편지 얘기에 조금 당황하며 나름 차분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버이날 편지에 담긴 약속이 하루라도 효과를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이의 편지를 책갈피에 넣어두고 가끔 읽어 봅니다. 편지를 읽다 보면 따님의 얼굴도 생각나고, 어릴 적 귀여웠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더 낡기 전에 액자에 넣어서 잘 보관해 둬야겠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다 자라서 월급 받는 날에 편지를 주면 월급봉투를 건네주면 어떤 말을 할까요?      

    

#. 스트레스에는 매운맛(2020년 5월)     

"아휴. 재 때문에 못 살겠어. 학원 끝날 시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애가 걱정돼서 그 빗속을 뚫고 장화랑 우산 챙겨서 내려갔더니, 아 글쎄 왜 왔냐고, 엄마한테 짜증 내는 거 있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눌님의 잔소리가 폭발입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두 여인의 사이에 끼어 난감합니다.      

"딸, 왜 그랬어? 왜 엄마한테 짜증 냈어? 왜 내 마누라한테 짜증을 왜 냈어?“

마눌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아이에게 농담 섞인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는 책상에 앉아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삐죽거리더니 금세 눈물을 떨굽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옆에 있으면 대성통곡할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몇 분을 더 훌쩍거렸습니다.     

아이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린 후에 기분도 풀어줄 겸 아이를 데리고 단둘이 외식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뭐 그만한 일로 울고 그러냐? 나중에 커서 연기자 될 거야? 우리 딸은 눈물의 연기의 달인이야.~."

"연기가 아니라 아빠가 다짜고짜 나만 혼내니까 그렇지. 엄마 편만 들고, 내 마누라한테 왜 그랬냐고 뭐라고 하니까 난 눈물이 나지."

"혼을 낸 게 아니고 엄마가 말하니까 농담조로 한마디 한 거지…."

"사실은 나 우산 챙겨갔었단 말이야. 그런데 엄마가 장화 가져간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엄마 기다리다 영어학원도 늦고, 수업도 늦게 끝나고, 또 집에 늦게 오니까, 숙제는 아직도 다 못 끝냈다고. 나도 힘들었어."

"우산을 챙겨 갔었어? 아빠는 딸이 우산도 안 챙기고 학원 갔는지 알았지."

"그러니까 엄마 말만 듣고 나 무시하고 그러니까 내가 눈물이 나겠어? 안 나겠어?"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네.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따님 걱정돼서 장화를 챙겨 간 건데 엄마한테 짜증 낸 건 너도 조금 잘못한 거지…."

"몰라. 오늘은 매운 게 당기네. 비빔냉면 사줘요~"

차 안에서 자초지종 얘기하며 아이는 속에 맺힌 걸 풀었습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비빔냉면과 매운 걸 잘 못 먹는 아이를 생각해 설렁탕도 한 그릇 시켰습니다. 오늘따라 매운 비빔냉면을 잘도 먹습니다.     

"아빠. 사람은 피곤하면 단 것을 찾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운 것을 찾는데…."

"하하하 우리 딸이 오늘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아직 오늘 해야 할 숙제가 남았다고 했잖아. 들어가서 마저 해야 해."

"어휴. 고생이 많다. 그래도 네가 앞으로 8년만 열심히 공부하면, 남은 50년이 편할 수 있어. 8년 놀고, 50년 힘들게 사는 것보다 8년 고생하고 50년 행복한 게 낫잖아"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도 견디면서 하는 거야."

"그래. 기특하네. 우리 딸"     

비빔냉면 때문인지, 아빠랑 단둘이 보낸 시간 때문인지 아이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공부하는 아이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 자란 아빠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매일 동네 친구들과 놀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숙제는 방학 숙제 밖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 방학 때만 되면 밀린 일기 쓰느라 몇일을 고생했던 잔인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아이가 매 순간 즐거운 일을 하다 보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아직은 이 사회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행복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기에 "공부해라!" "책 읽어라." 얘기하게 됩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제일 후회되는 아빠이기에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자주 얘기하게 되네요.     

우리 딸! 스트레스받을 때, 피곤할 때, 언제든 아빠 찬스 써도 돼. 냉면과 초콜릿 배부르게 먹도록 해 줄게!!          

#. 맛있는 미역국 (2020년 5월)     

“이야!! 미역국 맛있다!”

"당연히 맛있지, 내 생일국인데…."

"우리 딸 생일이라서, 엄마가 정성 들여 끓여서 맛있는 건가?"

"아니 내 생일이니까. 내가 맛있다고 느끼면 맛있는 거야"

"그런 거였어? 그런데 아빠는 아빠 생일 아닌데 왜 맛있어?"

"아빠 딸 생일국이니까 맛있지. 아빠는 딸 생일인데 안 좋아?"

"(뜨악!) 좋지, 좋아, 왜 안 좋겠어“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와 저녁 식사를 하며 아이와 나눈 대화입니다. 미역국은 맛있었고, 따님과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생일 미역국을 먹은 건 아이 생일 다음 날입니다. 아이 생일에 공교롭게도 회사 일로 저녁 약속이 있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아이 생일날 밤늦은 시간 집으로 향하면서 생일 케이크를 살까 말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어차피 절반 이상은 버릴 텐데, 차라리 다른 걸 사주자'라는 마음에 케이크를 사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생일날 많이 슬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12살, 아직도 어린이날이면 들뜨고 크리스마스에 산타 선물을 기다리는 나이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미역국은 정말 맛있었습니다.)만 먹었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그래도 아빠에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볼멘소리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정말 고맙고,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녁 자리에서 따님의 말투엔 은근히 가시가 담긴 듯하네요. 생일날 실수를 만회하려고 저녁 자리에서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롱보드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따님! 온라인 쇼핑몰에 네 롱보드 담아놨으니까 맘에 드는지 알려줘…."

따님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상품을 확인했습니다.

"아빠 이거 나한테 너무 큰 거 아닐까?"

"롱보드는 원래 좀 커야 해. 길이가 짧은 것도 있는데. 처음 배울 때는 롱보드가 나은 거 같아"

오늘 온라인몰에 담긴 롱보드를 주문했습니다. 롱보드를 받아들 때 따님의 표정이 벌써 궁금합니다.     

우리 딸!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스트레스받을 땐 한강에서 멋지게 롱보드 타며 기분전환도 합시다. ^^          

#. 회장 선거 (2020년 6월)     

"자 여러분, 뒤를 돌아보십시오. (일동 고개를 돌린다)

네. 이제 앞을 보십시오. (일동 다시 앞을 본다)

여러분 이게 저의 리더십의 증거입니다."

"하하하. 글쎄, 00이가 회장 선거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 거야.”

“그래? 표는 많이 받았어?”

“많이 받았을 리가 있겠어. 그렇게 말해서 떨어졌어"

"넌 어떻게 했는데.?"

"난 그냥 평범하게 했어."     

아이는 새 학년이 시작되고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 오래간만에 간 느낌이 어떻냐? 반 친구들은 어떻냐? 묻는 아빠의 질문에 처음엔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따님은 반에서 학급회장을 뽑았다고 얘기를 시작합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추천으로 아이는 회장 후보에 출마하게 됐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이 됐습니다. 1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누구는 부회장이 됐고, 1학년과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누구는 후보로 출마했지만 떨어졌다고 얘기합니다. 회장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당선되고 나니 기분은 좋았나 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반 분위기는 너무 조용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될 수 있는 대로 얘기하지 말고,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한창 서로 궁금한 것도 많고,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것도 많은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침묵해야만 했던 교실은 너무 삭막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선생님도 좋았고, 친구들도 괜찮은 것 같다며 첫 등교의 소감을 설명했습니다. 내친김에 전교 부회장에도 나가볼까?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등교 첫날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전교 회장 선거는 어떻게 뽑아? 선거 운동도 못하잖아?"

"인터넷에 연설문 올리고 인터넷 투표로 뽑는 거야!"

코로나19 바이러스 아이들의 일상을 참 많이도 바꿔놓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 어릴 적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재택수업도, 온라인 선거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딸. 일단 건강하고 밝게 자라라. 온라인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          

 

#. 롱다리 숏다리 (2020년 6월)     

쉬는 날 집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다가 책상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듣던 아이의 다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길쭉하니 쭉 뻗은 다리가 부러워 한마디 던졌습니다.     

"우리 딸 다리 길어서 좋겠다!"

"내가 아빠 닮아서 다리가 짧았으면 좋겠어?"

"(뜨으~악!) 이놈이. 누가 다리 짧으면 좋다고 했냐?"

"왜 남의 다리를 훔쳐보고 그래?"

"뜨악(2)!! 누가 다리를 훔쳐봐. 아빠가 팔굽혀 펴기 하다가 네 다리가 보인 거지!

그리고 아빠가 딸내미 다리 보는 게 훔쳐보는 거냐?"     

아이와 잠시 티격태격했습니다. 아이는 잠시 수업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고, 아빠는 아이와 말장난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올라가면 아빠보다 다리가 길겠다."

"중학교? 아니지. 지금도 내가 더 길걸?"

"무슨 소리야. 아빠 다리가 아무리 짧아도 키가 있는데."

"그럼 재보면 되겠네.!!"

급기야 초등학교 5학년생과 다리 길이를 재기로 했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쭉 뻗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다리를 뻗었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의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아빠의 중요한 부위에 닿을 것 같았습니다.     

"됐다. 그만하자…."

"우하하하, 내 다리가 더 길지??"

"아직은 내가 조금 더 긴 거 같아. (.ㅜ,ㅜ)"

머리하나 작은 아이와 다리 길이가 비슷하다니 슬프면서도 행복합니다. 아빠의 다리가 짧은 것을 증명하는 것은 바짓단입니다. 아빠는 청바지건 면바지건 새로 산 바지 밑단을 '싹둑' 잘라내야 합니다. 바지 길이를 잘라내며 마눌님은 항상 농담을 건넵니다.

"이야.!! 이 정도면 옷 만드는 회사에서 할인을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두세 벌만 모으면 바지 하나 만들 원단 나오겠는데."

흑! 잘려 나가는 바짓단을 보면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습니다.     

아이는 지금까지 옷을 산 후 바짓단을 자른 적이 한 번도 없지요. 아이가 아빠를 닮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키도 쑥쑥 자라고 팔다리도 길쭉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는 날, 팔등신 미녀와 맥주 한잔 마실 날이 기대됩니다.   

        

# 주말 동안 외로웠던 서러움(2020년 6월)

“나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고…. 엉엉~. ㅠ,ㅠ”

아이가 눈물을 쏟아냅니다. 아이가 울면 아빠 마음도 아픕니다. 우는 아이 등을 가만히 토닥여줬습니다.     

이수가 펑펑 울어야만 했던 이야기입니다. 시골집 공사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서울로 모시게 됐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머무는 거실에는 나가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자는데도 아빠는 잠자리만 봐주고 거실로 나갔습니다.     

아이는 주말 동안 아이는 놀아주지 않은 아빠에게 심술이 잔뜩 났습니다. 항상 자신을 첫 번째로 여기던 아빠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혼자서 눈물 한 방울 훔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아빠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가 없는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밥을 먹었습니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위해 정성 들여 요리한 아침밥은 맛있었지만 아이는 입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오후 늦은 시간에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아빠는 이수와 놀아주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만 있습니다. 일요일 저녁 늦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모님 댁으로 가고 나서야 아이는 거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할아버지 때문에 앉지도 못했던 소파에 길게 누워 뒹굴뒹굴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밤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빠는 엄마랑 이야기한다며 혼자 자라고 말하고 다시 나갑니다.      

아이는 괜스레 눈물이 나옵니다.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데도 자꾸 눈물이 흐릅니다. 아이가 거실로 나와 아빠에게 따지듯이 묻습니다.

“어제도 나 혼자 잤는데, 오늘도 혼자서 자야 해?”

“다 컸잖아. 이제 혼자 잘 나이야!”

“책도 안 읽어주고, 난 아빠랑 같이 자고 싶은데. 엉. 엉….”

갑작스러운 아이의 눈물 섞인 오열에 아빠도 당황스럽습니다. 아이를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아빠도 옆에 누웠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옆에 있으니 더 서럽게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펑펑 웁니다.      

아이를 다독여 주며 얘기했습니다.

“우리 딸! 뭐가 그리 서러워,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주말 내내 고생해서 아빠가 엄마 위로해주려고 같이 맥주 한잔하는데. 그게 서러울 일이야?”

“나도 힘들었다고.”

“넌 핸드폰만 봤잖아,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재롱도 안 피우고.”

“으앙~. 나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고. 날도 덥고, 에어컨 켜져 있는 거실에 나가고 싶은데 할아버지 냄새가 싫어서 나갈 수도 없고, 나라고 온종일 핸드폰만 보고 싶었겠어? 좁은 방에서 할 게 없으니까 핸드폰을 본거지 엉. 엉. 엉….”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계신 거실에 나오지는 못하고 자시 방에 선풍기 하나 가져다 두고 온종일 혼자 있었습니다. 자기 딴에 힘들게 1박 2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아빠야. 딸이 아빠가 중요한 것처럼,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소중해.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빠와 같은 나이가 있었어, 힘들게 농사지으셔서 아빠를 가르치셨어. 지금처럼 냄새도 안 나셨고….”

“나도 알아. 알고 있으니까 하루 종일 참고 있었던 거잖아….”

“그래. 너도 힘들었겠다. 아빠가 네 마음을 몰라봐서 미안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조용히 아이 배를 토닥거리자 아이가 잠이 듭니다. 얼마 후 아빠가 가만히 손을 빼는 것을 느꼈는지 눈을 떴다가 감으며 얘기합니다.

“아빠 빨리 와….”

“그래. 금방 올게….”     

아이가 어릴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했습니다. 시골집에 내려가면 쫑알쫑알 말벗도 해드리고, 옆에서 재롱도 피웠죠. 아이가 나이 든 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귀도 잘 안 들리시고, 기억력도 현저히 떨어지시다 보니 아이는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색한가 봅니다. 아이는 마음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살갑게 대하고 싶은데 몸은 그러지 못해 어찌할 줄 몰라 합니다. 아이의 마음도 이해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쓰럽고. 중간에서 아빠의 고민도 깊어집니다.     

     

#. 뒤늦은 생일 선물(2020년 7월)     

아이의 생일선물인 롱보드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생일보다 한 달이 더 지나 생일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어린이날 선물 겸, 생일선물로 아이가 갖고 싶어 했던 롱보드를 구매했습니다.     

롱보드가 아이 손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롱보드를 살 때 아이는 신중하게 제품을 골랐습니다. 아빠가 부담되지 않게 제일 저렴한 것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핑크색의 롱보드를 골랐습니다. 롱보드 주문하자마자 신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롱보드를 샀다고 자랑도 했습니다.      

그런데 롱보드는 주문 후 일주일이 지나고, 10일이 지나도 선물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매일 롱보드 언제 오냐며 확인했고, 쇼핑몰에서는 배송 중이라는 메시지만 뜹니다. 롱보드가 도착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때, 쇼핑몰에서 도착한 문자는 충격이었습니다.     

“배송 지연 이유로 제품구매가 취소되었습니다”

헐… 이런, 아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롱보드 구매가 취소됐대….”

“뭐라고? 왜 취소가 되는데? 아빠 사주기 싫어서 취소한 거 아니야?”

“(쇼핑몰 문자를 보여주고) 중국에서 물건이 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자동으로 취소 된 거야….”

“왜 자기들 맘대로 취소야. 난 더 기다릴 수 있는데. ”

“최대한 빠르게 배송되는 곳으로 다시 알아보자….”

아이를 겨우 달래서 같은 제품을 다시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1~2만 원 정도 더 비싸졌습니다. ㅜ,ㅜ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롱보드가 도착했습니다. 아이는 롱보드를 애지중지합니다.

“아빠. 나 이제 롱보드 잘 탄다!!”

일주일도 안 돼서 잘 타봐야 얼마나 잘 타겠습니까? 아이는 매일 매일 롱보드에 올라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상도동 롱보드의 여신’을 기대합니다.          


#. 말다툼 (20년 7월)

"너는 그래라. 나중에 시집가고 나면 아빠 찾아오지 마라!"

"그래 그럴 거다 뭐."

"아빠 늙고 병들어도 찾지 마. 너 힘드니까."

"알았다니까…."

눈물을 글썽이며 이수가 돌아섭니다.     

아이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지난 주말 고향 집을 방문했다가 생긴 일입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홀로 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아이는 시골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파트에 생활에 익숙한 탓에 시골집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는 거동도 불편하시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서 아이랑 놀아주지도 못합니다.

아빠는 집 청소에 바쁘고, 엄마는 부엌에서 할아버지 밥도 챙겨드려야 하고 집 안 정리로 바빠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습니다. 아이는 시골집에 가면 친구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아 놀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내 황금 같은 주말이 이렇게 보내는 거야?"

걸레질하는 아빠 옆에서 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이번 주는 어쩔 수 없어. 너도 곧 방학이잖아."

"방학은 방학이고, 주말은 주말이지"

"휴~후. 할아버지 연로하셔서 편찮으시고, 할머니는 입원하셨잖아. 네가 이해해야지"

"난 시골이 싫어."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아빠의 부모님이고,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뵙는 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야"

"왜 그래야 하는데?"

"이유는 없어. 그냥 자식이 된 도리야. 넌 나중에 결혼하면 아빠가 늙고 병들어도 안 찾아오겠네."

아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지기 싫었던가 봅니다.

"그래 안 찾아올 거다."     

이렇게 말싸움이 시작됐고, 아빠는 서운한 마음에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도 애써 눈물을 참으며 돌아섰습니다. 아빠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늙고 병치레 많은 부모님을 편히 모시지 못하는 게 맘에 걸리고, 아직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따님과 맘껏 놀아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아이 맘도 이해가 됩니다. 아이는 멀미가 심해 장거리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빠가 시골 내려가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아이도 아빠와 함께 시골에 내려가는 날이 늘어납니다.      

한참 놀고 싶은 나이, 주중에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로 지친 아이 주말이라도 맘껏 놀고 싶은데 멀미까지 참아가며 시골에 따라가는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죄스러움과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것 다 해주지 못하는 부모로서의 미안함이 교차하면서 아빠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아이도 언젠가는 지금의 아빠 처지를 이해해 줄 거라 믿습니다.     

우리 딸, 너도 사춘기가 처음이고, 바이러스로 흐트러진 일상이 처음이듯이 아빠도 아빠의 역할이 처음이고, 연세 드신 부모님의 모습이 낯설단다. 우리 같이 이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내 보자.          


#. 팩트 폭격! (2020년 7월)     

아이와 미용실에 다녀왔습니다. 매일 다니던 곳이 아닌 동네 저렴한 미용실에 갔죠. 머리를 짧게 단정하게 다듬고 나름 만족해하는 아빠를 이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미용실 문을 나서면서 아이가 말을 합니다.     

“아빠, 머리를 왜 그렇게 잘랐어?”

“너무 짧게 잘랐나?”

“아니. 이상해. 이태원클라스의 그 사람 닮았어….”

“누구? 박새로이?”

“그래 박새로이….”

“그럼 멋진 거네~~^^"(아빠 표정은 매우 만족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죠….)”

“에이…. 머리가 그렇다는 거지. 아빠는 박새로이 얼굴이 아니잖아!”

“뜨악! 아빠 얼굴이 못생겼어?”

“못생겼다고는 안 했어. 단지 박새로이는 아니라는 거지….”

“그래. 고맙다. 못생긴 아빠랑 같이 다녀줘서….”     

나이 먹은 사람이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박새로이가 될 수는 없겠죠. 아빠 껌딱지라고 생각했던 아이 입에서 나온 팩트 폭격에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대화는 뭐 그럭저럭 훈훈하게 마무리됐지만, 아이는 아빠의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별로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까지만 해도 이수에게 아빠는 늘 제일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그 콩깍지가 이제 벗겨지고 있네요. 그만큼 아이가 자란 것이고 아빠의 나이는 늘었습니다.      

요즘 아이는 남자 보는 눈을 높이는 중입니다. 조금이나마 아이 맘에 들 만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미용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아빠는 변태! (2020년 7월)     

“아빠 변태야? 어딜 봐?”

요즘 아이가 아빠를 변태로 몰아갑니다. 본인이 아빠 앞에서 훌떡 벗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만히 있는 아빠에게 뭐라고 합니다. 아빠 샤워할 때는 목욕탕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제 할 일 다 하고 나가면서 본인이 목욕할 때 칫솔을 가지러 잠깐 문을 여는 아빠에게 ‘변태’라고 소리칩니다. 변태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거의 8년 동안 아빠와 샤워했던 녀석이 이제는 아빠를 변태로 몰다니 배신감마저 듭니다.     

아빠가 아이랑 샤워하기 시작한 건 엄마에게 속아서입니다.

“요즘 애들은 빨라서 7살만 돼도 이성을 알아서 아빠와 안 놀아준다. 어릴 때라도 같이 있는 시간 많이 만들어 줘라.~”

일리 있는 설득에 아이의 목욕은 아빠 차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도 가끔 엄마랑 씻을 때도 있지만 아빠와 목욕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엄마는 깨끗이 씻는 것에 주목했지만 아빠는 아이와 놀아주며 씻겨주기 때문입니다. 소꿉놀이도 했다가, 비눗방울 놀이도 했다가, 욕실 거울에 맺힌 습기를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4학년이 되면서 혼자 샤워하기 시작했고. (4학년 때도 몸이 피곤하면 아빠를 불러서 씻겨 달라고 했죠) 그랬던 아이가 5학년이 되고 나서는 아빠가 욕실 문만 열어도 소리를 치네요. 아빠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아빠 변태야?”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와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아이도 언젠가는 자기 방에서 문 꼭 닫고 혼자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요. 이제 몸도 마음도 소녀가 되어가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부모로서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이 하는 일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도 커집니다.          


#. 나무 식혜 (2020년 8월)     

“아빠, 나무! 해봐”

“나무”

“나무를 빨리 10번 빨리 말해봐~”

“나무, 나무, 나무나무나무….”

“잘하네. 이번에는 식혜를 빨리 말해봐~”

“식혜 식혜 식혜식혜시케시케시케....”

“오~~. 그럼 나무하고 식혜를 번갈아 가며 빨리 말해봐”

“나무식혜, 나무식혜, 나무시케, 나무시케…??”

“으하하 하하 ”

“뭐야? 이게 웃을 일이야??”

“크크크 아빠 무식해…. 으하하 하하”


아이의 ‘잼민이’ 같은 장난입니다.

“좋겠다. 넌 아빠가 무식해서.”

“응?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하하하 ”     

유튜브에서 배워오는 건지, 학교 친구들에게서 배워오는 건지 모르지만 따님의 말장난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다음 날 아이는 마눌님에게도 나무 식혜를 시켜봅니다.

“나무 식혜 나무 식혜….”

“흐흐흐…”

“이것들이 어디서 장난질이야…. 당신도 알면 말려야지 같이 웃냐?. 장난 그만치고 냉장고에 탄산수 하나 갖다줘”

아이는 탄산수를 꺼내와 엄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바닥에 탕!! 하고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입가에 쓱 번지는 미소!!. 아무것도 모르는 마눌님은 탄산수를 집어 듭니다. 뒤 일이 걱정돼 마눌님을 말렸습니다.     

아이는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의 귀여운 복수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무서운 엄마를 상대로 복수하고자 하는 집념을 보며 ‘이제 이 녀석도 사춘기가 돼가는구나!’ 생각합니다. 큰 탈 없이 사춘기가 지나가기를 빌어봅니다.     


#. 임기응변(2020년 8월)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라 말하고 먼저 누웠습니다. 따님은 아주 얇은 영어 그림책을 들고 왔습니다. 그림이 많고 글은 몇 자 안 돼 읽는 데 몇 분 걸리지 않는 책입니다. 한두 페이지 읽고 나니 어릴 때부터 여러 번 읽었던 책입니다.

“딸, 이거 몇 번 읽은 책 아니야?”

“또 읽고 싶어~”

“매일 같은 책만 읽으면 되나? 안 본 책도 읽고 해야지~”

“아빠가 언제는 영어 공부는 머리에 외워질 때까지 읽어야 한다며? 그리고 이 책 내용은 내가 제일 좋아한단 말이야.~”

“응? 아! 그렇긴 하지. 읽자~”     

마땅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괜한 말을 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임기응변이 나날이 발전합니다. 이제는 좋은 말도 가려서 해야겠습니다.          

#73. 용돈 (2020년 8월)     

“아빠, 나 지난번에 사회 100점 맞았고, 이번에 과학시험 100점 맞았어.”

“우와~ 축하해~”

“축하한다는 말이 다야? 아빠, 지난 시험도 100점 용돈 안 줬어!”

“아하. 맞다. 지금 줄게….”     

이번 달 용돈을 주는 날입니다. 월 용돈과 2과목 100점 보너스를 더해 7,000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아이는 2,000원만 달라고 합니다.      

“이번 달 용돈 5,000원은 안 받아?”

“나 지난번에 받은 용돈 안 쓴 거 많아. 2,000원만 있으면 돼~”

“일단 받아놓고 필요할 때 써~”

“아냐, 됐어. 난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도 있어. 이건 아빠 써~ ”

“우와~ ㅜ.ㅜ”     

용돈을 귀하게 쓸 줄 아는 따님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아빠의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마음껏 돈을 안 쓰고 눈치를 보는 게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가끔 아이와 주말 나들이를 가면 먹고 싶은 걸 꾹 참는 모습을 봅니다.     

“왜 안 먹으려고 그래, 먹고 싶은 건 먹어”

“괜찮아 이건 비싸잖아~”

“아빠가 딸한테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 먹어도 돼”

억지로 손잡고 가게에 들어가 사주면 잘 먹습니다.      

아이가 부자와 가난, 그리고 돈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빠가 부자가 아니라서 딸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유리 지갑 월급쟁이 봉급 인상은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아이가 철이 들수록 아빠의 고민도 깊어집니다.          


#. 전생에 나라를 구한 아이 (2020년 8월)

“아빠.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같아”

“?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렇게 착한 아빠를 만났잖아!”

“아빠를 만난 게 나라를 구한 값어치가 돼?”

“생각해 보니까 아빠가 나한테 화낸 적이 없어~”

“아빠도 화낸 적은 있어~~”

“음. 그렇지만 지금 내 기억에는 없어~~”     

주말에 쇼핑몰에서 아이가 한 이야기입니다. 주말 아이와 쇼핑몰에서 데이트하다가 작은 캐리어에 상자를 가득 싣고 운반하던 배달원 아저씨가 미닫이문에서 캐리어에 실었던 짐이 무너져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쇼핑객들이 분주히 오가는 문 앞에서 아저씨는 상자를 급히 새로 쌓고 움직이다가 짐이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아저씨를 도와줘야겠다 싶어 아이와 함께 양옆에서 문을 잡아 주었습니다.      

“아빠, 나도 추운데 문을 왜 잡고 서 있으래?”"

“많이 추웠어, 미안해, 그런데 우리보다 아저씨 사정이 더 딱하잖아. 그래서 아빠는 도와주고 싶었어~”

“왜 도와주는데?”

“우리는 이렇게 주말이라고 쉬고 있지만 아저씨는 남들 쉴 때도 일하시잖아. 그리고 문에 부딪혀서 짐이 자꾸 무너지니까 문을 열어 드리고 싶었어”

“음….”

“사회는 서로 도와줘야 해. 그래야 발전하는 거야”

“아빠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아”     

아이는 배달원 아저씨를 도와주고 나서 주차장으로 가던 중에 자기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부모의 작은 행동에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할 거 같습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아이에게 함부로 화를 내면 안 되겠죠.      

따님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못난 아빠를 높게 평가해주는 아이가 더욱 예뻐집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아이’가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인생 게임 (2020년 8월)     

"아빠 나랑 인생 게임 하자~"

코로나에, 주말마다 내리는 비, 일요일에도 집에 갇혀있던 아이가 보드게임을 들고나왔습니다.     

“게임 끝나고 아빠보다 돈 적게 벌었다고 삐치면 안 돼! 삐치거나 화내면 아빠 게임 안 해~"

"알았어. 안 삐칠게….“     

아이는 승부욕이 강한 편입니다. 게임을 할 때도, 공부할 때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생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입니다. 아이는 운 좋게도 월급이 2번째로 높은 변호사를 뽑았고, 아빠는 의사를 뽑았습니다. 게임 결과는 아빠가 조금 더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아이는 아쉬운지 "한 게임 더!"를 요청합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아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모아 승리했습니다. 아이의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아이가 남에게 지고 사는 것도 바라지 않지만, 너무 승부에 치우쳐 사는 삶도 바라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이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가 되고 싶은 변호사가 되더라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돌봐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이의 3학년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키는 작지만 키지만 승부욕이 강했던 아이는 1학년 때부터 줄곧 반 대표로 이어달리기 선수로 뛰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도 이수는 반 대표로 이어달리기 선수로 선발됐습니다. 운동회가 있었던 날 저녁 아이에게 운동회 결과를 물었습니다.      

”달리기는 잘했어?

“내가 청팀(아이는 백팀이었습니다)을 거의 따라잡았는데, 내 뒤에 남자애들이 역전을 못 했어.”

”결과는 아쉽지만, 우리 딸이 잘 달렸으면 됐지 뭐“

”그래도 운동회 결과는 청팀이랑 백팀이 무승부야.“

”응? 어떻게 경기가 무승부가 됐어?“

”다른 경기는 백팀이 모두 이기고 이어달리기는 백팀이 져서 운동회 결과는 무승부야“.

”무승부면 둘 다 이긴 거네. 잘했어“

”이어달리기도 백팀이 이길 수 있었는데 5학년 8반 언니 오빠들 때문에 졌어“

”왜 오학년 팔 반 때문에 졌다고 생각해?“

”5학년 8반 담임 선생님이 이어달리기 선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주선수로 나가고 싶은 사람을 지원받아서 가위바위보로 뽑았대“

”진짜? 선생님은 왜 그랬대. 잘하는 선수를 뽑았으면 백팀이 이겼을 텐데“.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난 잘 모르겠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난 후 5학년 8반 선생님의 선수 선발방식이 이해는 됐습니다. 운동회는 전교생이 즐기는 날이지 운동 잘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6학년 동안 잘 뛰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응원석에만 앉아 있어야 합니다. 아빠도 어릴 적 달리기를 잘하지 못해 운동회 날이면 응원석에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5학년 8반 이어달리기 대표로 나선 아이들은 남들보다 잘 달리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을 것입니다. 게임에는 졌지만, 그 아이들은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운동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달려보고 싶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5학년 8반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노력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주만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인생입니다.       

    

#. 휴대폰 독립 (2020년 9월)     

“아빠, 나 틱톡 이용 시간 조금만 늘려주면 안 돼요…?”

“흠. 책 한 권에 한 시간 늘려 줄게”

“나 아침에 읽고 나왔는데….”

“그럼 한 시간만 늘려 줄게….”

“고마워, 하하하 그런데 그 책 아직 다 읽지는 못했어."     

순순히 한 시간을 넣어 준다는 아빠의 말에 아이가 책 한 권을 다 읽은 건 아니라며 양심선언을 합니다. 처음으로 본인의 휴대폰을 갖게 된 아이가 월요일 아침 카톡으로 사용 시간을 늘려달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휴대폰 사용에 스트레스받지 않게 주말 동안 넉넉하게 시간을 설정해 뒀더니 주말 내내 휴대폰만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이 얄미워 시간을 2시간을 확 줄여 놓았었습니다.     

“책 읽은 만큼 휴대폰을 봐도 돼~”

휴대폰을 건네주며 말했지만 아이는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에는 책을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휴대폰 시간으로 거래를 하는 게 조금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책을 읽히고 싶습니다.     

“아빠 책 한 권에 한 시간이면 독후감은 권 당 20분??”

“오케이 콜.”

“알았어…. 그럼 나 책 한 권 읽고, 독후감 2개 쓸 거야.~”

“흐흐흐 그래 일단 2시간 추가해 줄게….”     

훈훈하게 아이와 휴대폰 시간 거래를 마쳤습니다.

초등학생 5학년 아이는 휴대폰이 생기고 나서 단짝 친구와 매일 몇 시간씩 수다를 떱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아바타를 가지고 놀면서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식입니다.     

아빠가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요즘 아이들을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로 부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세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는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만화책을 보기 위해 온갖 꾀를 내고는 했었지만, 만화책이 없다고 힘들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휴대폰을 없애버리면,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또래 문화에 융화되기도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따님의 모습을 보면 신기합니다. 아빠의 스마트폰 기능을 가르쳐 준 사람도 없는데 아빠보다 많은 기능을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기기와 함께 자란 요즘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10년 20년 후의 세상을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난 10년 20년의 세월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바라는 건 긴 호흡을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마트폰의 빠른 호흡도 좋지만, 활자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세상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잠자리 루틴 (2020년 9월)     

아이는 잠을 자는 루틴이 있습니다. 잠자기 전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눕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불을 아빠에게 내밀며 펼쳐 달라고 합니다. 아빠는 이불 한쪽 끝을 잡고 공중에 붕~ 띄워서 아이의 몸을 감싸게 덮습니다. 아이는 이불이 공중에서 쫙 펼쳐져서 자기 몸에 사뿐히 내려앉는 느낌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다음은 책을 읽어줘야 합니다. 2~3장 읽다가 잠이 올 때쯤 아이는 거실에 나가 물을 한잔 먹고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아빠 그 페이지까지만 읽어~”

“한 페이지만 더 읽으면 안 될까? 다음 내용 궁금한데?’

“그럼 조금만 더 읽고 그만 읽어~”     

아빠는 일부러 책을 읽다가 중간에 주인공이 무엇을 하려는 찰나 책 읽기를 멈춥니다.

“뭐야…. 막장 드라마야? 갑자기 끝나게?”

“투비 컨티뉴드.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자자”

(아이는 책 내용이 정말 궁금할 때는 다음 날 아침 혼자서 나머지를 읽기도 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조명을 끄면 아빠 손을 끌어다 자기 배 위에 올려놓습니다.

정확히는 배와 갈비뼈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아빠 손을 놓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잠이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잠잘 때 이 루틴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한 침대를 쓸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더 이상 아빠 옆에서 잠자기를 거부하는 날이 되면 시원섭섭하겠지요.

더 이상 잠자리 방해받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아이 곁에서 잠잘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 아이의 랜선 일상 (2020년 9월)     

띠링~ 띠링~ 아침 8시 30분 알람이 울립니다. 아이의 기상 시간입니다. 아이는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9시부터 온라인 수업입니다.

아이의 수업이 시작되면 엄마는 따님에게 식사를 배달하고, 이수 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합니다.     

아이는 뒤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서늘한 시선에 부담을 느끼며 모니터에 집중합니다. 엄마가 아이 방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주 전입니다.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요령이 생긴 이수가 수업 시간에 유튜브를 보다 엄마의 불시검문에 딱 걸렸기 때문이죠.     

“수업 시간에 딴짓하면 되겠냐? 온라인 수업도 수업이다. 수업을 듣는 척하며 딴짓을 하는 것은 엄마를 속인 것이고, 네 자신도 속인 것이다. 속임수 쓰려면 차라리 공부하지 않는 게 낫다”

아이는 엄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이수는 엄마의 감시 속에 온라인 수업을 듣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습지 문제를 풉니다. 그리고 3시.

“야호!. 자유시간이다!” 아이가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빠 롱보드 타러 가자~”

“지금? 아빠는 시간이 안 돼. 아빠 6시까지 근무시간이야.”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와 놀이터를 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시간을 내주지 않아 아이는 금세 풀이 죽었습니다.     

“미안한데 엄마랑 같이 가면 안 될까?”

“엄마, 갈 수 있어?”

“그래 아빠 근무 중이니까. 나랑 가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롱보드를 챙겨 들고 놀이터로 갑니다. 아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아이가 땀에 젖어 들어옵니다.      

“재미있었어? 실력은 좀 늘었고?”

“나 이제 카빙도 잘 된다. 으하하”

아이는 롱보드를 아빠에게 건네주며 닦아달라고 합니다.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지 못한 죄(?)로 기꺼이 닦아 줬습니다. 아이는 보드를 타고 난 후에는 바퀴부터 몸체까지 먼지를 깨끗이 닦습니다. 연습용이라 너무 아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롱보드 닦는 일을 건너뛰지 않습니다.     

아빠의 재택근무와 따님의 랜선 수업, 집안 풍경이 새로워졌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모습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스크 없이 야외활동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날이 그립습니다. 아빠도 롱보드 하나 장만해서 한강공원에서 이수와 함께 롱보드를 탈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 아빠의 코골이     

"아빠, 어제 잘 잤어?"

"응. 잘 잤지. 밤에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새벽에 아빠 깨웠었잖아"

"그랬어? 아빠는 몰랐어. 그런데 아빠를 왜 깨웠어? 아빠가 코 골아서?"

"엄청 심했어."

"그랬구나, 딸이 잠을 제대로 못 잤겠네. 미안해…."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이가 아빠를 걱정하며 건넨 말입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새벽에 "아빠 돌아누워서 자~"라는 말에 반대로 돌아누웠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들면서 코골이가 심해졌습니다. 가끔 새벽에 잠을 깨 살펴보면 아이는 머리를 반대편으로 두고 잘 때가 많습니다. 아이의 잠버릇이 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빠 코골이 소리를 피해 도망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빠 옆에서 잠을 청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는 여전히 아빠 손을 잡고 침대로 갑니다.     

엄마 “빨리 아이 방에 예쁜 침대 하나 놔줘야겠어요.”

아이 “그 침대에선 과연 누가 자게 될까? 흐흐흐”     

아이 방에 침대를 들여놓자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기 방에 침대가 들어와도 안방 큰 침대에서 아빠랑 잘 거라며 엄마를 협박(?)합니다     

여전히 아빠를 좋아하는 다 큰 딸을 곁에 둔 걸 복에 겨워하며 지내는 요즘입니다.

          

#. 말괄량이 삐삐가 부러워 (2020년 9월)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도 줄어듭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안고 ‘그네놀이’ ‘무등타기’ ‘이불로 감싸 들어 올리기’ ‘이불 만두’ 등 온갖 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가끔 어릴 때 했던 놀이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빠의 힘이 부족해서 해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어릴 때 행복했던 놀이로 풀고 싶었겠지만, 그것마저 마음껏 할 수 없어 아쉬워합니다.      

며칠 전 아이가 <말괄량이 삐삐> 동화책을 읽다가 한 대화입니다.

"아빠 삐삐는 왜 학교에 안 가"

"삐삐는 힘이 엄청 세고 엄청난 부자야. 삐삐 아빠는 작은 섬나라 왕이야. 그래서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어."

"난 가난해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 거구나…."

"꼭 가난해서 공부하는 건 아니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가난한 것도 아니야!"

"알았어. 아빠 농담에 너무 진지하지 마."     

어제는 엄마에게 혼나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엄마가 나 엉덩이를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렸어…."

"엄마가 왜 때렸어?."

"엄마가 내가 핸드폰 본 거 안 봤다고 거짓말했다고…."

"왜 거짓말했어. 거짓말하면 안 돼…."

"..............훌쩍…. 훌쩍…."

"이수 우는 거야??"

"난 거짓말 안 했어…. 훌쩍….""

아이의 눈물보가 터졌습니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나도 힘든데…. 훌쩍….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고…. 훌쩍"

"그래 딸도 많이 힘들구나. 힘들면 좀 쉬어도 돼..."     

울고 있는 아이를 말없이 한참을 안아 주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 떨고 뛰놀며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입니다. 학원을 오가며 중간중간 친구들을 만나 과자도 사 먹고 놀이터에서 놀며 스트레스가 풀렸을 것입니다.     

요즘은 집에만 있다 보니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휴대폰입니다. 부모로서는 휴대폰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아이에게는 휴대폰이 유일한 외부로 향하는 수단일 것입니다.     

기회를 봐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겠습니다. 동화 속 삐삐처럼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신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인생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이죠.     

공부는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행복을 포기하고 하는 공부보다는 공부를 안 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낫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힘든 시기입니다. 아이가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빠의 1순위 (20년 9월)     

“아빠한테 제일 소중 사람은 누구야? 누가 첫 번째야?”

“당연히 딸이 제일 소중하지”

“왜 아빠는 내가 1순위야?”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어. 세상의 모든, 거의 모든 부모 마음이 자식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그래? 그럼 엄마는 몇 위야?”

(아차 싶었습니다. 마눌님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고자질한다면, 다음 순간이 상상이 되면서 순간 식은땀이 흐르는 듯싶었습니다. 아이에게 말리면 안 된다. 정신 차리자. 머리 회전속도를 높였습니다.)     

“엄마는 아빠랑 순위가 같아. 엄마와 아빠는 동급이야. 부부니까 0순위지….”

(나름 선방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순위에 없구나…. 알았어. 엄마한테 일러야지. 엄마~~”

“0순위라고. 1위보다 높다고…. ㅜ,ㅜ”

결국 아이는 엄마에게 조르르 달려가 일러바쳤습니다. 마눌님이 이종격투기에서나 볼 수 있는 발차기를 선보입니다. 엄마와 아빠의 장난을 지켜보며 아이가 해맑게 웃습니다. 듣기 좋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지나갑니다.          


#. 보이스 피싱 (2020년 10월)

"얘가 자기 휴대폰에 내 번호 뭐로 저장해 놨는지 알아?"

"글쎄. 뭐라고 해 놨는데"

"아 글쎄. 나를 보이스피싱이라고 적어 놓은 거 있지"

으하하. 엄마를 보이스피싱이라고 저장하면서 이수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갔습니다.      

"당신 거는 뭐로 해놨는지 알아?"

"모르지. 나도 확인해 봐야겠네."     

갑자기 아빠는 뭐로 저장해 놨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 방으로 달려가 휴대폰 좀 빌려달라고 하니 절대 주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휴대폰 잠깐 줘봐. 잠깐 확인하고 줄게"

"크크크 안 돼요."

"너…. 아빠 번호 뭐로 저장했어?"

"으하하 안 알려줘…."     

아이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깔깔깔 웃으며 핸드폰을 절대 건네주지 않네요. 한참을 실랑이하다 엄마까지 가세해서 겨우겨우 휴대폰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진짜 외계인' 아이가 저장한 아빠 전화번호입니다. '보이스피싱' 보다는 나쁘지 않네요. 아빠 엄마가 아니고 외계인과 보이스피싱으로 저장해 놓은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엄마는 보이스피싱이고, 아빠는 진짜 외계인이야?"

"특별한 이유 없어. 재미있잖아!!“     

아이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서 전화 올 때마다 자기 휴대폰에 뜨는 이름을 보며 웃음 짓는 아이의 표정이 상상이 갑니다.     

아빠가 외계인이면 어떻습니까? 아이가 즐거우면 됐지요. 휴대폰 이름 하나에도 재미를 느끼고 떨어지는 가랑잎을 봐도 웃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아이가 더 많이 웃으며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이별 선언? (2020년 10월)     

"아빠 어제 잘 잤어?"

"잘 못 잤어…."

"왜? 침대에서 안 자서?"

"침대에서 안 자서는 아니고, 아빠 술 마신 날이면 새벽에 잠이 깨."

"아무래도 내 방에 침대를 놔야 할 것 같아"     

술 마신 날 아이 옆에서 잠을 자다가 침대에서 쫓겨났습니다. 아이는 다음 날 아빠가 걱정됐는지, '미안하다'라며 가만히 아빠를 안아줬습니다. 침대에서 쫓겨난 아빠를 걱정해주는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이쁘면서도, 이제 아이의 잠자리 독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르게 서운했습니다.     

이제 곧 13살이 되는 아이가 아직도 아빠 옆에서 잠을 자는 게 고맙기도 합니다. 한 집안에서 방 하나 옮길 생각만으로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데, 아이가 시집간다고 말하면 어떤 감정이 들지 현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빨리 크기를 바라지만, 아빠 곁에 더 오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서로 오락가락합니다. 아빠 껌딱지로 남아있는 지금 마음껏 놀아주고, 마음껏 안아줘야겠습니다.     


#. 여인들의 전쟁 (2020년 11월)     

“딸~ 아빠가 엄마 먹으라고 쌍쌍바 엄청 많이 사 왔다”

“내가 아빠한테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말해서 사 온 거야….”

“아니야 아빠가 엄마 좋아하는 거 일부러 사 온 거야, 엄마를 더 좋아한다는 얘기지!”

“참나. 아니라니까. 내가 쌍쌍바 사 오라고 아빠한테 말해서 사 온 거라니까! 아빠한테 물어봐라.”     

주말에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습니다. 월요일 냉장고를 열어본 마눌님과 아이가 아이스크림 종류를 보고 의미없는 논쟁을 했습니다. 마눌님은 아이가 질투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아이는 엄마의 쓸데없는 자랑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마눌님이 아이와 말다툼했던 얘기를 해줍니다.

“딸이 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더라니까…”

“ㅋㅋㅋ 귀엽네….”

“이수, 저 조그만 것이 엄마한테 질투가 엄청 많다니까!”

“그만큼 아빠를 좋아한다는 거지 우하하하”

“어린 두 여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기분 좋지?”

“두 여자는 맞는데 둘 다 어린지는 모르겠는…. 헉!!”(퍽!! 마눌님의 주먹이 옆구리에 꽂혔습니다)     

맞은 곳은 얼얼하지만, 아이와 마눌님이 아빠를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잠든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집니다.          


#. 침 (2020년 11월)     

"아빠, 많이 아파?"

"안 아파. 잠깐 따끔해…."

"어느 정도로 따끔한데?"

"어느 정도냐 하면, 너 독감 주사 맞아봤지. 그것보다 덜 아파."

"독감 주사는 많이 아팠었다고…."

"독감 주사보다 안 아프다니까?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아빠는 침 맞아봤어?"

"아빠는 침 많이 맞았지. 일 년에 서너 번은 맞았어."

"내 나이 때도 침 맞아봤어?"

"아니, 너만 한때는 맞아본 적은 없어…."

"그거 봐, 아빠는 어른이니까 안 아픈 거지. 나는 어린이니까 아프다고…."

"침은 주삿바늘보다 훨씬 얇아서 안 아파, 괜찮아…."

"침 안 맞으면 안 될까…?"     

아이가 엄마 신발을 신고 뛰다가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인대에 무리가 갔는지 발목이 붓고,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발목을 다치고 아빠에게 와서 발이 아프다며 엉엉 울었습니다. 발목을 살펴보니 많이 붓지 않아서 금세 나을 줄 알았는데, 자고 나니 발목이 제법 부어올랐습니다. 절뚝거리며 학원을 오가는 아이가 안쓰러워 한의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침 맞을 생각에 아이는 걱정이 한가득합니다. 발목을 다친 또래 친구들까지 동원해 발목이 접질렸을 때의 정보를 얻습니다. 3일이면 낫는다며 침을 맞지 않고 버텨 보겠다고 사정도 합니다. 한창 자랄 나이라 일주일 정도 조심하면 금방 낫겠지만, 활동량이 많은 아이라 아픈 부위가 덧날까 걱정이 앞섭니다.     

결국 아이는 침을 맞지 않았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발목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히 자라주는 것도 부모에겐 큰 행복입니다.          


#. 아빠는 갱년기 (2020년 11월)     

"아빠…. 갱년기야? 아빠가 요즘 여성 호르몬이 많아 졌나 봐. 말이 많아졌어…."     

아이가 요즘 아빠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아빠의 잔소리가 좀 길어진다 싶으면 가만히 아빠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빠? 갱년기야?"라며 말을 끊습니다.     

며칠 전 저녁 시간 때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롱보드 이야기하다가 아빠 어릴 적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빠 어릴 때는 롱보드가 뭔지도 몰랐어. 아빠는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겨울에 눈 오면 비료 포대에 짚단 넣어서 타고 놀았지. 요즘은 세상 좋아졌지. 아무 때나 롱보드도 타고, 워터파크도 가고 참 좋은 세상이지."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레 아빠의 라떼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옆에서 거드는 마눌님의 맞장구에 신이 나서 라떼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아이가 밥숟가락을 멈추고 한마디 합니다.


"아빠 요즘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것 같아. 말이 참 많아졌어."

"맞아. 아빠가 요즘 말이 많아질 나이야. 이제 갱년기잖아!"     

마눌님도 아이 말에 동의합니다. 아!! 순간 '현타'에 빠지면서 더 이상 라떼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는 시간이 갱년기 아빠에게는 제일 좋은 시간입니다.          


#. 시간아, 멈춰라 (2020년 11월)     

"머리 말려야 하는데 귀찮아~~"

아이가 샤워 후 욕실 앞에서 최대한 힘든 표정으로 말을 건넵니다.

엄마: "뭐가 귀찮아. 빨리 머리 말려…."

따님: "하긴 할 거야 그런데 귀찮다는 거지…."

아빠: "드라이기 가져와, 아빠가 말려줄게…."     

아이가 씨익 웃으며 잽싸게 드라이기를 챙겨서 아빠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기분 좋아진 아이가 엄마를 놀립니다.     

따님: "이거 봐라~ 나 아빠가 머리 말려준다.~"

엄마: "이구! 좋겠다. 네가 아빠 다 가져라.~"     

아이가 아기 때부터 씻기고 머리를 말려주는 일은 아빠의 몫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면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아이의 머리 말리기는 아빠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이가 5학년이 되고부터 아빠의 일거리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혼자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이와 함께하는 일은 가끔 숙제를 봐주거나 일기를 봐주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빠도 풀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납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사라집니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빨리 자라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아이의 입맛(2020년 11월)     

동네에 도토리묵을 잘 만드는 가게가 있습니다. 손두부를 만들어 팔던 가게 주인이 가족들 먹으려고 만들었던 도토리묵을 한두 명 단골손님들이 사가다가 입소문을 타고 정식 상품으로 가게 진열대에 올려졌습니다.     

이수의 저녁 밥상에도 가끔 도토리묵밥이 올라옵니다. 구수한 멸치육수와 어우러진 찰진 도토리묵은 식감과 쌉싸름한 뒷맛이 별미입니다. 이수는 도토리묵에 김치 고명을 듬뿍 넣어 한 그릇을 뚝딱하고 비웁니다.     


엄마: “이수 넌 입맛도 참 별나다. 네 또래 애들은 도토리묵 안 좋아하는데….”

아이: “맛있는 걸 어떡해! 그리고 내가 뭐 햄버거 같은 거 좋아하면 좋겠어?”

엄마: “잘 먹어서 좋다고….”

아이: “나 유치원 때 롯데월드 갔을 때 간식으로 햄버거를 나눠줬었어. 그때도 억지로 먹었네….”

엄마: “넌 평상시에 햄버거나 탄산음료 안 먹으니까, 그럴 땐 가끔은 먹어도 돼.”

아이: “난 햄버거는 별로야….”     

이수의 입맛은 좀 특이합니다. 피자보다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고, 짜장면보다 봉골레 파스타를 좋아합니다. 달달한 음식보다는 토속적인 맛을 좋아합니다. 라면을 먹기 시작한 것도 초등학교 입학 후입니다. 라면보다 먼저 먹은 것이 베트남 쌀국수입니다.     

몇 년 전에 아빠랑 주말 나들이하다가 베트남 쌀국숫집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아빠가 고수를 추가해 넣어 먹었더니 이수도 고수를 넣어 먹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가게 주인이 어린애가 고수 먹는 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었습니다. 애 입맛이 어른 입맛이라고 가게 주인에게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아이: “아빠 애들은 고수 안 먹어?”

아빠: “음, 아마 고수를 좋아하는 애들은 거의 없을걸. 아빠도 서른 살 넘어서 고수를 처음 먹어 봤었어. 처음 먹었을 때는 거의 토할뻔했지.”

이수: “그래. 난 괜찮은데. 고수 먹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아빠: “좋은 거지. 너처럼 음식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아이가 유치원 시절 청국장에 들어간 콩을 골라 먹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외식보다는 집밥을 좋아하고, 인스턴트 음식보다 엄마의 미역국을 더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이 보기 좋습니다.     

아이는 청소년이 돼 가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늘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의 입맛을 오래 유지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질투의 화신(2020년 12월)     

아이는 옹알이를 빨리 시작했습니다. 100일 즈음부터 옹알이를 했습니다. 아이 옆에 누워 그림책을 펼쳐주고 읽어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옹알옹알’ 말대꾸를 했습니다. 옹알이를 너무 잘해 세상의 모든 아빠가 그렇듯이‘이 녀석 천재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이가 100일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당시 침대는 엔티크풍이라 높이가 꽤 높았습니다.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마눌님이 차려준 저녁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하고 있있을 때 방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 초 후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뒤척임을 하다 침대에서 떨어진 겁니다. 그 작은 몸으로 몇 바퀴를 굴러서 떨어진 건지, 엄마와 아빠는 사색이 됐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 한동안 아이는 옹알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아이랑 저녁을 먹다가 아기 때 침대에서 떨어졌던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넌 옹알이가 빨랐다. 그림책을 보여주면 옹알옹알 잘도 말했다. 네가 침대에서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몇 배는 똑똑했을 것이다.’ 등등.     

“아빠! 뭐야 지금 나보다 다른 아기를 더 좋아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너 어릴 때 얘기하는 거잖아!”

“아니지. 아빠 얘기는 지금 난 멍청하고, 옛날 아기 때 나는 똑똑하다는 거잖아~~”

“하, ㅜ,ㅜ 지금 너도 똑똑한 데 그때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네가 더 똑똑했을 거라는 얘기지.”

“그 말이 그 말이지. 어쨌든 난 옛날 아기보다 덜 똑똑하다는 거잖아….”

“그렇게 결론을 내면 안 되지.”     

질투의 화신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과거까지 질투할 수 있을까요?       

   

#. 소피 마르소를 닮았나? (2020년 12월)     

"아빠? 머리 감고 말리는 게 겁나 편해!!"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날 아이가 욕실에서 나오며 한 말입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긴 생머리를 고수해왔습니다. 단발머리로 바꿔 보라는 엄마의 권유에도 아이는 긴 생머리를 고집했습니다.      

아빠가 미용실 가는 날 아이가 룰루랄라 기분 좋게 따라나섰습니다. 미용실에 가면 아빠 머리 자르는 동안 휴대폰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아이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오는 길이로 잘라버려"라는 마눌님의 지령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이 헤어스타일을 묻는 헤어디자이너의 질문에

어깨까지 싹둑 잘라달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아이는 뭉텅뭉텅 자기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져 나가는 걸 보자 잠시 당황하더니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거울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애한테 상처를 준 건 아닌가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헤어디자이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수다를 이어갑니다.

헤어디자이너가 머리를 말리는 법, 머리 정리하는 법 등을 얘기해주자 열심히 귀담아듣습니다.     

다음 날 저녁 아이는 쇼트커트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왜 쇼트커트를 해?"

"막상 머리를 자르고 나니까 길었을 때보다 열 배는 편해. 머리 감는 것도, 머리 말리는 것도"

"머리 자르기 그렇게 싫어하더니. 그것 봐 어떤 일이든 해보지 않으면 좋은지 나쁜지 모르는 거야. 고민되는 건 일단 시도해 봐야 후회가 없어…."

"난 긴 머리가 싫다고 말한 건 아니야, 짧은 머리가 편하다는 거야…. 흐흐흐.“     

아이가 처음 시도해 본 단발머리가 맘에 들어서 다행입니다. 아이의 짧아진 머리는 영화 라붐의 소피 마르소를 닮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소피 마르소처럼 파마머리를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 아이의 키 (2020년 12월)

“딸, 요즘 키가 얼마야?”

"150㎝는 넘을걸!"

"앞으로 20cm만 더 크자. 아빠 보다 몇 cm만 더 크게….""

"치! 그게 맘대로 되냐?"     

겨울 방학이 되고부터 아이의 키가 부쩍 컸습니다. 이제는 엄마 옷을 같이 입어도 될 만큼 자랐습니다. 신발은 엄마 그것보다 큰 치수를 신습니다.      

엄마: "애는 발이 왜 이렇게 커~"

아이: "엄마 아빠가 그렇게 낳았으니까 그렇지"

아빠: "아기 때부터 발은 컸어. 고모들이 발이 크면 키도 큰다고 했잖아~"     

키는 아빠의 콤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요즘은 그 작은 키마저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매년 0.5cm씩 작아지고 있습니다. 근육과 작은 연골조직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흑흑.     

아이는 반에서 키 순서로 5~6번입니다. 매년 번호 숫자가 조금씩 뒤로 이동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빠 초등학교(아! 국민학교라고 해야 하나요?) 시절 키에 비하면 부러운 키지만 아빠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아이가 170cm까지 컸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키와 비교하면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걸 압니다. 다만 아이 고모들은 작은 키는 아니어서 불가능한 욕심도 아닙니다.

지금은 어른이 돼서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아이 유년 시절의 꿈은 패션모델이었습니다. 아이가 패션모델만큼 키가 크지는 않아도 아빠처럼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지런히 먹이고 열심히 잠을 재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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