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쓴 편지 3
Ⅲ. 이제는 어른. (초등학교 6학년: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아이)
#. 행운의 편지 (2021년 1월)
‘카톡, 카톡'
사무실 책상에서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던 오후 아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전달된 메시지에는 작은 물병 이미지와 함께 「당신은 물약을 보셨습니다. 이글을 10명에게 보낸다면 키가 10cm 크게 됩니다. 이글을 무시하면 키가 멈춥니다. 잘 생각하세요」라는 글귀가 담겨있었습니다.
요즘은 행운의 편지도 카톡으로 보내는 시절이 됐습니다. 아이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아빠는 이미 키가 줄고 있어서 이런 행운은 필요 없음. 딸이나 빨리 10명 채우시오.”
"이미 채웠음 으하하!!
귀여운 따님의 카톡 메시지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메시지는 누구누구한테 보냈어?"
"00이한테도 보냈고, 00이, 00이, 그리고 오빠한테도 보냈어."
"그래, 오빠는 뭐라고 답장했는데?"
"오빠는 ’보낼 사람이 없다 제길. 인생 참’이라고 보냈어. 하하하"
으하하. 조카의 재미있는 답장에 아이와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이의 사촌 오빠는 중학교 1학년입니다. 중학교 입학할 때쯤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 간 날도 많지 않고, 학교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해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실을 반영한 답변이라 안쓰럽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인생을 거론한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올해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하지요. 아이들이 하루빨리 백신을 맞고 친구들과 맘껏 장난치고 놀 수 있는 학교생활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수학 문제 (2021년 1월)
“아빠? 왜 ‘-3’ 빼기 ‘-5’는 ‘-8’이 아니고 ‘+2’가 돼?”
“아 그거는….”
아이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빠는 지금까지 음수 빼기 음수는 뒤의 음수는 양수가 되는 것이 당연하고 왜 양수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음수 두 번 반복되면 양수야, 그냥 외워!’라고 말하려다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지? 고민하다 갑자기 뒷걸음이 생각났습니다.
“음수는 내가 가는 방향에서 뒷걸음으로 오던 길 반대로 가는 거랑 같다고 생각해봐!”
“무슨 말이야 알기 쉽게 설명해줘~”
“이수야. 지금 앞을 보고 뒤로 세 걸음 걸어봐.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서 다섯 걸음 걸어. 그럼 원래 위치에서 몇 걸음 앞에 있어?”
“아하!! 이제 알았어. 고마워~”
아이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뿌듯해집니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아빠가 학생 시절엔 선생님을 비롯한 윗사람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조건 정답이었고, 의문이나 질문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시절입니다. 윗분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잘 외우는 아이가 모범 학생이었습니다.
요즘은 배움의 길도 많고, 문화도 다양해졌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질문과 궁금증은 아주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아이의 문제 풀이를 도와주다 보면 아빠도 바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점점 많아집니다. 가장 취약한 영어 문제는 아빠가 알려준 답이 틀릴 때도 많습니다. 이제 곧 아빠가 이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려고 합니다.
#. 공부하자! (2021년 1월)
아이는 오늘은 국어 문제를 물어봅니다. 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문제라고 가볍게 보고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아빠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퇴근 무렵에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때문에 한 문제 틀렸잖아! 책임져!!"
"미안해. 아빠가 시험을 본 지가 오래 돼서 그래."
"영어 문제도 틀리고, 국어 문제도 틀리고. 이제 아빠한테 수학하고 사회 과목밖에 남지 않았어. 공부 좀 잘해~~"
아이는 반협박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빠 도움으로 2문제가 맞은 건 생각 안 하고 틀린 것만 아쉽다고 되레 성질입니다. 다행인 건 3문제 중에서 1문제만 틀렸다니 아빠도 체면치레는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에게 아빠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빠의 밑천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둘째 고모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고모 : "밥 먹었어?"
따님 : "아니요. 안 먹었어요~"
고모 : "왜 안 먹었어요?"
따님 : "지금까지 엄마랑 공부했어요~"
고모 : "엄마가 똑똑하구나!!"
따님 : "아니에요? 엄마보다 아빠가 더 똑똑해요~"
고모 : "우하하하 왜 그렇게 생각해?"
따님 : "아빠는 매일매일 책 읽거든요. 읽고, 또 읽고~"
책 읽는 아이로 키우려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틈만 나면 책을 집어 들었더니 효과가 있긴 있었나 봅니다 ^^
아이는 자기가 모르는 수학 문제를 풀어주고, 영어 단어도 알려주는 아빠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는 본인이 풀지 못하는 시험문제로 아빠의 능력을 평가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예 아빠에게 물어보지도 않겠지요.
지금처럼 간간이 물어볼 때라도 제대로 알려주는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 아이 교과서를 빌려서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 아기광대버섯 (21년 2월)
요즘 아이는 유튜브와 게임에 빠져 삽니다.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손에서 핸드폰을 놓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카트를 밀면서 휴대폰을 볼 정도입니다.
"아빠 은하수가 구름이 아니고 별들이 너무 많아서 그 빛들이 구름처럼 보이는 거래."
"응 맞아! 우주는 엄청 넓고 별빛이 너무 많아서 하얗게 보이는 거지. 근데 그건 어디서 배웠어?"
"응 유튜브에서…."
아이는 유튜브와 휴대폰을 통해 온갖 잡학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아이는 끝말잇기를 한창 좋아했었습니다. 아이가 샤워하다가 끝말잇기를 제안합니다
"아빠. 끝말잇기 하자~"
"그래!"(아무렴 이 나이에 초등생에게 지겠습니까? 흐흐흐)
"나부터!!"
"응~. "
"과녁"(헉. 이 녀석의 게임 의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단어 하나로 게임 끝내기!)
"음. 녘~~~시?"(두음법칙이라고, 우겨서 겨우 끝말잇기를 이어갔습니다. ㅠ.ㅠ)
시간, 간장, 장독대, 대장, 장소, 소멸, 멸치. 단어 공방이 이어지고 다시 아빠 차례입니다.
"치아!"
"아기광대버섯!!!"
"섯? 흑흑 ㅠ.ㅠ. 졌다"
"히히히…."
“아기광대버섯 이란 단언은 누가 알려줬어?”
“쉬리(아이폰)랑 끝말잇기 하면서 알게 됐어.”
아이폰이 아이에게 못된 것만 알려주고 있네요.*
아빠는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큰 반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만화에 대해 가졌던 걱정이 요즘 부모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걱정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아이들이 겪게 될 미래도 달라질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은 아이가 스스로 사고하는 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의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게 최고의 과제가 됐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세상에 선보인 이후로, 세상 거의 모든 부모의 고민 중 하나는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일 것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을 무조건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 성묘 (2021년 2월)
설날 아이와 단둘이 성묘하고 왔습니다. 막걸리와 북어포, 과일 등 간단한 차례 음식을 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아이도 아빠를 따라 절을 합니다. 성묘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햇살을 쪼이며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여기는 누가 있는데?"
"아빠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딸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계시지….“
"이 탑 같은 곳 안에는 뭐가 있는데?"
"조상님들 유골을 모셔놨지.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랑 엄마도 여기 들어오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먼 곳에 모셔놨어?"
"우리한테는 멀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은 여기잖아. 아빠 고향도 이곳이고…."
"내 고향은 서울이니까 아빠는 서울에 있어~~"
"(뜨악!) 조상님 모시는 거야 후손들 편한 대로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이곳에 같이 있게 해주면 안 될까? 할아버지 할머니도 챙겨드려야지."
"음식은 왜 차려?"
"조상님들의 영혼들이 와서 드시라고…."
코로나19로 북적북적하고 풍성한 설 명절은 아니었지만, 따님과 한적하게 성묘도 하고 얘기도 하니 좋았습니다. 아이와 자주 다녀야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친척이 모이지 못했습니다. 따님의 세뱃돈 수금 목표에는 차질이 생겼습니다. 반면 아빠의 지갑은 숨 좀 쉬게 되었습니다.
#. 잠꾸러기 딸 (2021년 2월)
"아빠~나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알아?"
"몇 시에 일어났을까?"
"11시. 겁나 오래 잤지?"
"와~ 진짜 오래 잤네. 아빠가 집에 없으니까 잠이 잘 오는 건가?"
"아빠가 없어서는 아니고, 요즘 잠을 많이 자는 거야!"
"그런데 왜 주말에는 8시만 되면 일어날까?"
"주말은 수업이 없잖아. 그러니까 빨리 놀고 싶어서지."
아이가 늦게까지 잠을 잔다고 자랑합니다. 한참을 늦잠 자랑을 한 뒤 기둥에 등을 대고 키를 재달라고 합니다. 이제 150cm가 조금 넘었습니다. "아빠는 어릴 때 잠을 많이 못 자서 키가 안 큰 거야!"라며 아이에게 잠을 많이 자야 키가 큰다고 자주 얘기해서 아이는 잠을 많이 자면 키가 큰다는 얘기를 믿습니다.
문제는 평일에 늦잠을 자주 자는데, 주말만 되면 8시에 되면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마자 아빠 곁으로 옵니다. 더 자라고 얘기해도 한번 잠을 깬 아이는 다시 침대로 가지 않습니다. 아빠 핸드폰을 손에 들고 아빠 옆에 눕습니다. 아빠도 결국 일어나 아이 밥을 챙겨주고, 핸드폰(또는 유튜브) 그만 보라고 잔소리하는 것이 아빠의 주말 일상이 돼 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춘기에 접어든 따님이 아빠에게 몸을 비비대며 장난치고, 핸드폰을 보는 모습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책을 펼쳐 들고 있으면 더 좋겠지요. 아이가 다 큰 성인이 돼서도 아빠 무릎에 다리 올리고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 음란 마귀 우리 딸 (2021년 3월)
”음란 마귀야 빨리 자라"
"누구보고 음란 마귀래? 엄마가 더 음란 마귀면서~"
6학년이 된 딸이 엄마에게 음란 마귀로 찍혔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순정만화 주인공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그리다가 엄마에게 들킨 뒤로 아이는 음란 마귀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그림 그리지 말라며 아이를 혼냈고, 아이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지요.
"무슨 그림인데 그렇게 화를 내?"
"당신이 한번 봐봐. 하 나 참 혼자 방에서 오래 있길래,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그림이나 그리고 있더라고. 아주 리얼하게 그렸어. 그런데 그림은 잘 그렸다."
그림 속에는 잘생긴 만화 주인공들이 얼굴이 발그스레한 채 입술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림 실력만큼은 아빠보다 훨씬 낫습니다.
"혹시 넷플릭스에서 보는 만화영화에 야한 장면이 나오니?"
"야한 장면 없어, 폭력적인 장면은 있지."
"칼싸움하고 사람을 베는 장면이 나와?"
"아니 총으로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
"엄마가 네가 이상한 영상을 보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데…."
"엄마가 너무 예민한 거야…."
성적 호기심이 한참 많아질 사춘기 소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야한 영상 얘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대화했습니다. 솔직히 아빠의 사춘기 시절을 되돌아보면, 떳떳하지만은 않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지만, 참 다양한 경로로 호기심을 채웠었습니다.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호기심 충족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고 부모가 자랐던 시절과 너무 다른 세상이다 보니 부모들의 걱정도 커진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부모의 걱정도 아이가 다 자란 후에는 '기우(杞憂)' 였기를 빌어 봅니다.
#. 바이올린과 굳은살 (21년 3월)
“아빠 머리는 다 잊었는데 내 몸이 기억해"
아이는 4개월 만에 문화센터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 되면서 가을부터 바이올린 수업을 가지 못했습니다. 3월이 되면서 거리두기가 완화돼 수업이 재개된 것입니다. 바이올린 수강신청을 하며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방학동안 연습 한번 안 하고, 그동안 배운 거 다 잊어버렸을 텐데 걱정 안 되나?"
"나 가끔 바이올린 켰어.~"
"아빠는 딸이 바이올린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수업 들어가서 창피당하면 어떡하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수업하러 가기 전 아이를 놀렸지만 아이는 태연한척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걱정은 되는지 바이올린 케이스를 만지작거립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따님의 표정은 밝아 보였습니다. 막상 바이올린을 켜니까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인다며 뿌듯해하며 손가락이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굳은살은 안 쓰면 사라져. 그래서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내 엄지손가락 굳은살은 왜 안 없어지지?"
(따님은 연필 잡는 습관이 잘못돼 엄지손가락에 굳은살이 배어 있습니다)
"그 손가락은 매일 공부할 때마다 연필을 쥐잖아?"
"아! 하~~ 그렇구나. 깔깔깔"
따님의 손을 주물러주면서 이런저런 꼰대다운 얘기를 했습니다. 공부하는 머리도 굳은살이랑 똑같다. 머리를 안 쓰기 시작하면 굳은살이 사라지듯 공부한 것도 사라진다 등등. 따님은 아빠의 잔소리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손을 맡기고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중하며 듣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바이올린과 손가락 굳은살을 통해서 따님이 새로운 인생의 교훈을 깨달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젠더 논쟁 (21년 3월)
아이는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 합니다. 아빠도 반려견을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눌님의 반대에 반려동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려면 조금 더 넓은 집을 먼저 장만해야 합니다.
반려견을 입양하지는 못했지만, 마눌님을 설득해 1년 전에 작은 어항을 장만했습니다. 구피와 플래티 몇 마리를 키우다가 어항에서 이제는 태어난 플래티 2마리만 남았었습니다. 몇일 전 두 마리 모두 암컷이라 수족관에서 수컷 한 마리를 사왔는 데 몇일이 지나고 보니 그놈도 암컷이었습니다.
아이와 다시 수컷 물고기를 사러 수족관으로 향했습니다.
아빠: “그 수족관 아주머니는 분명히 수컷을 달라고 했는데 암컷을 줘서 발걸음을 두 번 하게 할까?”
아이: “맞아, 왜 암컷을 줬지?”
아빠: “수컷은 화려하고 암컷은 밍밍한데….”
아빠의 말에 아이는 기분이 상했는지 갑자기 안색이 바뀝니다.
아이: “아빠 뭐야, 여자는 뭐 안 멋있다는 거야?”
아빠 “여자가 아니라 물고기 얘기잖아. 너도 알듯이 수컷 물고기 지느러미가 암컷보다 화려하잖아!”
아이: “여자도 멋있는 게 있어. 여자도 남자보다 더 화려할 수 있다고”
아빠 “사람들은 여성들이 더 예쁘고 화려하지. 아빠는 동물을 얘기하는 거잖아. 사자도 수컷은 갈기가 화려하고, 공작새도 그렇고….”
아이: “난 암컷들도 멋있다고 생각해….”
아빠: “그렇지, 암컷이 멋있는 동물들도 많지….”
아이: “그러니까 아빠가 수컷이 암컷보다 멋있다고 한 말 사과해….”
아빠 “그래 미안하다. 그런데 아빠는 사실을 얘기한 거야….”
물고기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는 얘기를 하다가 아이와 젠더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자존감은 높이 사지만 물고기 얘기를 하는 데 젠더를 연결하다니, 과한 논리의 비약에 어찌할 바를 몰라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딸을 키우는 아빠로 우리 사회가 성차별 없는 사회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남녀 역할의 차이가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
#. 아이의 수다> (2021년 4월)
아이가 조잘조잘 6학년 반 친구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빠 봐봐. 어떤 애들은 가슴을 이렇게 앞으로 내밀고, 팔은 양옆에 붙이고, 손은 요렇게 예쁜 척 팔을 쭉 편 채 뛰어…."
아이가 흉내를 내며 총총충 뛰어갑니다.
"또 어떤 애들은 팔을 요래조래 좌우로 흔들면서 역시나 예쁜 척하면서 뛰어~"
소리까지 흉내 내며 따님이 거실을 뜁니다.
달리고 난 뒤에는 손가락 한두 개로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며, 새초롬한 표정을 재현해 보입니다.
"남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다들 엄청 예쁜 척들 해요~"
"우리 딸은 어떻게 달리는데?"
"난 이렇게. 우다다다~"
머리카락을 흩트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인상을 팍~ 쓴 채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달리는 시늉을 합니다.
"에구 우리 딸 못생겼네. 얼굴을 꼭 그렇게 못생기게 하고 뛰어야 해?"
"달리는 데 예쁜 얼굴이 왜 필요해. 빨리 달리면 됐지 뭐…."
아이의 6학년 생활은 즐거워 보입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부모 참관수업 때도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발표도 씩씩하게 잘했습니다. 일주일에 2번이지만 학교도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단짝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조금 속상해하지만, 활달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학교생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 지갑 분실 사건> (2021년 4월)
지난 주말 쇼핑몰에서 따님과 점심을 먹은 후 지갑을 분실했습니다. 식당가에서 나와 카페에 자리를 잡고 계산하다 지갑이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앉은 자리에서 기다리라 말하고 식당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는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습니다.
"혹시 지갑 못 보셨나요?"
"검정 지갑이요?"
"아, 네!"
"뒷자리 앉아 있던 사람들이 주인 찾아준다고 가져갔습니다."
식사하던 손님이 지갑의 행방을 알려줬습니다. 지갑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고객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아직 들어온 지갑은 없다고 합니다. 연락처를 남겨놓고 아이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혼자 있기 무서운데"
"미안해. 지갑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지갑은 찾았어?"
"아직 못 찾았어. 그런데 누가 주인 찾아준다고 가져갔대."
"그 사람들이 돌려줄까? 안 돌려주면 어떻하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심적이잖아. 믿어 봐야지"
아이에게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잃어버린 지갑은 마눌님이 생일선물로 사준 것입니다. 몇 년동안 사용하면서 이미 2번이나 잃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술집에서 한번, 복잡한 이케아 매장에서 한번. 하지만 용케도 두 번 모두 지갑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행운의 지갑입니다.
이번에도 지갑이 돌아올 거란 믿음 반, 이번에는 정말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반으로 불안해하며 시계만 바라보고 있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대폰만 보고 있었는데 고객상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지갑은 내용물 그대로 담긴 채 내 손에 쥐어줬습니다. 감사인사를 하고 고객상담실을 나왔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착해"
"맞아. 일부 나쁜 사람도 있지만 착한 사람도 훨씬 더 많지. 아빠도 착한 일 더많이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를 위해서라도 미약하나마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아들 같은 아빠, 엄마 같은 딸 (2021년 5월)
이틀 만에 아이의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전날 술 약속으로 새벽에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아이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날 아빠가 고주망태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는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봅니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빠의 무릎에 앉아 아빠의 얼굴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바라보네요. 꼭 엄마가 아들 챙기듯이 살펴봅니다.
"아빠 괜찮아? 아빠 나이도 많은데 몸 생각 안하고 술을 그렇게 마시면 어떡해.
나 아직 어려서 아빠 보호가 필요해요~. 아빠 걱정돼서 나 어제 잠도 못잤어. 아빠 진짜 나빠"
"앞으로 술도 조심히 조금씩만 마실게. 진짜 미안해!"
엄마의 잔소리를 아이 입을 통해 듣습니다. 잔소리를 쏟아내며 아빠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따님은 아빠의 손을 끌고 자기 방으로 데려갑니다.
"아빠 이게 뭔지 알아?"
따님이 보여준 작은 종이쪽지에는 '숙제 프리패스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숙제 패스권? 숙제 안 해가도 되는 거야?"
"응! 이거 우리 반에서 나만 받았어!"
따님의 얼굴은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오~ 멋진데…! 그런데 이건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야?"
"숙제 안 했거나 깜박한 날 이 쪽지를 촤~악! 내밀면 돼! 흐흐흐"
아이와의 이틀 만의 대면식은 아빠의 건강 걱정으로 시작해서 본인의 자랑으로 끝났습니다. 아이와 얘기하며 반성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주량이 줄어든 생각은 못 하고 젊었을 때의 호기만 남은 모습이 아주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이가 멋지게 사회에 진출할 때 건강한 모습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몸도 마음도 챙겨야 겠습니다.
#. 바닥이 드러난 아빠의 지식(2021년 4월)
“아빠, 아빠~ 마이너스 붙은 정수는 자연수 아니야?”
“.....................”
갑작스런 아이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문과생인데다 수학을 손 놓은 지 수 십 년이 지난 터라 ‘정수’라는 개념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기요?”
“...............”
“몰라욤?”
“그게…. 음. 잠시만 기다려봐. ”
주변에 있던 젊은 사무실 직원들에게 긴급히 도움을 요청해 뒤늦게 답변을 해줬습니다.
“자연수는 양수만 속하는 걸로 알고 있음”
“그럼 진즉에 말을 해주지.”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카톡방에서 퇴장했습니다. 어떤 날은 영어 문제를 보내놓고 설명해 달라고 질문합니다. 아빠는 영어도 손 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 바로 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이구. 유학 갔다 왔다면서 이것도 모르나?”
“유학이 아니라 몇 개월 어학연수 다녀온 거라고.ㅜ,ㅜ”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난이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빠의 지식은 점점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위안 중입니다. 아빠의 신뢰도가 바닥이 나기 전에 다시 수능시험 공부를 시작해야 할까요? 고민입니다
#. 아빠 초등학생 때 상상했던 현재 모습은? (2021년 4월)
"아빠, 나 국어 숙제로 진짜 아무거나 발표 준비해야 하는 데 뭐가 좋을까?"
"주제가 없어? 아무거나 발표하면 되는 거야?"
"그런 거 있잖아. 예를 들면 직업 인기 순위나 과거에 있다가 사라진 직업 같은 거, 아무튼 그래프 같은 걸로 나타낼 수 있는 거면 좋아"
"뭐가 좋을까? 사회적으로 관심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민주주의에 관한 자료 발표해도 되는데, 그것은 사회 수업에서 발표할 거라 안 돼"
"그럼 초등학생이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 순위는 어때?"
"그건 교과서에 나와 있어요. 흐흐흐"
"이런 건 어떨까? 엄마 아빠 초등학교 시절(1980~1990)에 예상한 21세기는?"
"오~~ 괜찮은데, 좋아요. 고마워!"
따님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으니 내심 뿌듯했습니다. 82년도(아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신문 아카이브를 찾아봤습니다. 2001년이 되면 집집마다 차가 있고, 영상통화가 가능한 전화기가 나오고, 국민 1인당 GNP가 4천 3백 80달러가 되고,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며 장수 가족이 급증하고, 연탄보일러는 사라지고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시대고 오고, 쾌적한 자연환경을 누릴 것이라는 신문 기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 예상했던 것 중에 많은 것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자동차 보급률과 휴대폰으로 영상통화 시대는 과거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된 미래에는 바이러스도, 미세먼지도, 범죄도 없는 깨끗한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 따님의 키 부심(2021년 4월)
요즘 아이의 키가 부쩍 컸음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딸, 키 많이 컸네~ 이제 엄마만큼 자랐나?”
“당연하지, 엄마보다 클 수도 있어”
따님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와~ 벌써 그렇게 컸어? 쭉쭉 커서 아빠보다 3cm만 더 커라”
“에이…. 아빠 키가 몇인데?”
“아빠 167!”
“그 키로 안 돼. 난 더 커야 해.”
“헉!…! (현타). 그래도 여자가 아빠 키 정도면 큰 편이야~”
“풋~….”
“헉. (2차 현타) 지금 아빠 비웃은 거야?”
“흐흐흐 아빠, 비웃은 건 아니고 사실을 말해줄게. 우리 반에 아빠만 한 애도 있어~ 아빠 시절의 기준 말고, 요즘 시대 기준으로 잡아야지~”
“헉. (3차 현타) 그래? 아빠 키만 한 친구들이 있어?”
“ooo, ooo이 키는 아빠 만해. 학교에는 아빠보다 큰 여자애들도 많을걸”
“그러면 딸은 아빠보다 5cm 이상은 더 커야겠네.”
아이와 키 얘기하다 마음의 상처만 입었습니다. 그래도 쑥쑥 자라는 따님의 키를 보면 흐뭇합니다. 작은 키는 아빠의 콤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키가 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중간 정도 된다고 자랑합니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키로 콤플렉스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키가 원하는 만큼 자라지 않더라도 자존감 높고 당당한 여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6학년 4반 메타포 (2021년 5월)
“수민아, 네가 우리 반을 표현하는 포스터 좀 만들어 줄래”
2주 전 금요일 아이는 담임 선생님에게서 단독 과제를 지시받았습니다. 아이의 미술 과제물을 눈여겨본 담임 선생님이 특별과제를 내준 겁니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의 재능과 유치원 때 미술학원에 다녔던 경험이 더해져 아이의 그림 실력은 반 친구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입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랑 과제물에 대해 상의했고, 반 친구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아이는 반 친구들이 공유하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저녁부터 한명 두명 답변이 올라옵니다.
"나는 핸드폰 같은 사람이 될 거야. 핸드폰은 모두가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니까"
"나는 마스크 같은 사람.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니까!"
"나는 흰색 도화지 같은 사람. 흰색 도화지는 어떤 것이든 그릴 수 있고, 무엇이든 채울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다양한 메타포(은유)로 자신을 표현했고, 그 이유도 의미가 있어 부모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지켜봤습니다.
이제 아이와 마눌님의 본격적인 공동 숙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가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면, 마눌님은 전공 실력을 살려 섬세하게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색깔로 전체적인 얼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아빠는 아이들이 올려준 장문의 글을 짧게 요약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올린 문장을 "일상에 도움이 되는 연필" “힘이 되는 비타민"과 같이 아이들이 보내 준 글을 몇 단어로 축약했습니다.
아이의 숙제는 결국 온 집안이 나서야 하는 과제물이 됐습니다. 시험공부 하랴, 학교 과제 하랴, 학원 숙제하랴, 아이도 분주했지만, 마눌님도 몇 날 몇일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포스터는, 아주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6학년 4반 친구들 24명은 귀여운 캐리커처로 표현됐습니다.
아이가 과제물을 제출하고 온 날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물어봤습니다.
" '우와~~' '쩐다~~' '헐~~~‘ 대충 이런 반응"
"흠. 그런 표현은 좋다는 건가?"
"당근, 뭐 감탄한다, 놀랍다는 의미야."
"그렇군. 우리 딸도 기분 좋았겠네. 엄마한테 고맙다고 말해줘~"
아이가 과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졸업식 날 이 과제물은 아이가 꼭 챙겨왔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 마지막 어린이날 (2021년 5월)
"우리 딸 어린이날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아이의 어린이날 선물은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5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가격 마지노선을 정해줬는데 아이가 요구한 것은 2만 원도 안 되는 '펀치 니들 자수'엮습니다.
아이의 소박한 선물을 듣고 마눌님은 마음을 바꿀 새도 없이 바로 온라인으로 주문했습니다.
펀치 니들은 어린이날 전에 배송됐습니다. 택배 상자를 안아 든 아이 얼굴은 미소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택배 상자를 열어보던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자수바늘이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실과 틀은 있는데 바늘이 없다니…. 엄마와 아빠도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문방구도 가보고, 대형마트에도 가봤지만 바늘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온라인에서 다시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바늘만 살까? 바늘이 포함된 자수 세트를 살까 한참을 고민하다 실과 바늘이 함께 있는 세트를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17,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 부담되는지 아이가 망설입니다.
"뭐 비싸지도 않네. 마음에 드는 걸로 사자! 그리고 이게 너의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인데 뭐"
"마지막? 중학교 때까지는 어린이로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중학교부터는 청소년이지! 흐흐흐"
구매 버튼을 누르고 다음날(어린이날) 배송되는 총알 배송을 주문했습니다. 어린이날이 토요일이라 따님은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아이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쇼핑하고 다니면서도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게임을 하는 줄 알았더니, 상품 배송정보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아빠 배송 중이면 오늘 오는 거지?"
"배송 중이면 오늘이나 늦어도 내일은 도착하겠지."
그렇게 휴대폰만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빠, 왔어! 고마워요~"
아빠 목을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합니다. 쇼핑몰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흐뭇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금액으로 최고의 보답을 받았습니다.
그날 아이는 집에 와서 열심히 자수를 떴습니다. 잠시나마 휴대폰을 놓고 자수를 뜨는 모습을 보니 나쁘지 않은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빠의 졸업앨범(21년 5월)
“아빠 초등학교 졸업사진 보니까 얼굴이 딱 내 스타일이던데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됐어!”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의 문제야!”
“그 외모와 학벌이면 여자친구도 많이 사귀었을 텐데 연애는 왜 못했어.’
“아빠는 시골에서 자랐고 가난했어. 너처럼 다양한 문화경험을 해보지 못했어.”
“연애랑 문화경험 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엔 이유가 딱 하나야! “
“뭔데??”
“S.H.O.R.T!”
“뭐라고? 휴~. 그래 키 작은 것도 이유 중 하나지.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
아이가 최근에 아빠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봤습니다. 자기 또래의 아빠 모습을 보고 꽤 좋아합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아빠의 어릴 적 모습이 기억에 남았는지 아빠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많이 안타까워합니다.
아빠의 작은 키를 이제 더 키울 수는 없지만, 친구같이, 키는 작지만,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마음이 큰) 키다리 아저씨로 남고 싶습니다.
#109. 마지막 생일 (2021년 5월)
“오늘이 초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생일이네. 축하해~”
“내년부터는 아빠가 생일 안 챙겨주는 거야?”
“글쎄, 딸 생일은 챙겨주겠지. 그런데 아마도 딸이 엄마 아빠보다는 친구들하고 놀면서 생일을 보내려고 할걸?”
“그러면 아빠가 슬퍼할까?”
“슬프다기보다 조금 서운할 수는 있겠지. 그만큼 우리 딸이 컸다는 얘기니까 뭐. ”
“.............”
아이가 말없이 생각에 잠깁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주변의 챙겨야 할 사람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관계를 넓혀가는 것이지요. 딸이 온전히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날이 온다면 아빠로서 시원섭섭할 것입니다.
5월 27일은 아이의 생일입니다. 생일선물로는 평소 입어보고 싶던 잠옷을 샀습니다. 2만 원밖에 안 되는 선물이지만 아이의 만족도는 최고치였습니다. 집안에서 입는 편안한 옷만 입다가, 침대에서 잠옷을 갈아입고는 춤까지 춥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도 즐거워하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가족과 외식하는 걸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 엄마의 과거 남자친구 (2021년 6월)
“엄마, 젊었을 때는 인기 많았어?"
"엄청 많았지, 엄마 좋다고 따라다녔던 남자들 많았어?"
"거짓말, 아! 못생긴 남자들은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게 한 대 맞으려고, 엄마 옛날 남자친구는 고수 닮았었어. 키도 컸고."
"고수? 쌀국수에 들어가는 거?"
"하~! 영화배우 중에 고수라는 사람이 있어."
아이가 핸드폰으로 검색해 봅니다.
"와!! 잘생겼네~"
"멋있었지. 성격도 착했고…."
"이 사람 보는 눈이 아주 낮았네…."
"야!! " 천둥 같은 고함과 마눌님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오늘도 아이와 마눌님은 아웅다웅 말다툼합니다. 사춘기 아이는 외모와 이성에 부쩍 관심이 커졌습니다.
"아빠 나 예뻐?"
"그럼 엄청 예쁘지."
"아빠는 내가 딸이니까 당연히 예쁘겠지. 난 남자애들한테 인기가 없어.ㅜ,ㅜ"
여드름이 올라온 얼굴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고 불만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아이가 한창 예민할 나이인데도 엄마 말도 잘 듣고 수업 태도도 좋은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여드름이 있건 없건 아빠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쁩니다.
"딸아. 넌 객관적으로 예쁘다. 1%는 아닐지 몰라도 상위권은 분명하다."
아이가 모든 면에서 지금처럼 자신감을 갖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이가 자는 순서 (2021년 6월)
아이는 잠자기 전 루틴이 있습니다.
첫째 전등을 켠 채로 침대에 누워야 합니다. 전등을 끄고 조명등을 켜도 안 됩니다.
둘째, 이불을 공중에 쫙 펼쳐서 이불이 내려앉으며 몸을 감싸게 해줘야 합니다.
셋째, 책을 읽어줘야 합니다. 책을 2~3페이지 읽다 보면, 잠깐만! 하고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더 읽고서 불을 꺼야 합니다.
넷째, 아빠가 돌아눕습니다. 코골이 소리가 잠이 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어제도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중에 아이는 조르르 침실 밖으로 나갑니다. 화장실을 가겠거니 했는데 웬일로 공부방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후 '쨍그랑!!' 소리가 들립니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입니다.
‘뭔가 떨어뜨렸군' 생각하며 가만히 누워있는데 아이가 들어올 기미가 없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아빠를 부릅니다.
"아빠, 아빠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왜? 무슨 일 있어?"
"유리가 깨졌어?"
"유리가 깨졌어?"
날카로운 유리에 혹여 다치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며 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바닥에 하얀 구슬들과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다람쥐 인형이 들어있던 주먹보다 작은 스노우볼이 깨진 겁니다. 아이는 깨진 흔적을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조각들과 흔적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습니다.
유리조각과 구슬들을 살펴보다 아이가 맨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이 발바닥을 닦아준 후 방에서 내보내고 바닥 정리했습니다. 유리 조각을 쓸어 담고, 유리 파편들은 청소기로 흡입했습니다. 아이는 쉽게 발을 떼지 못합니다. 열려있는 방 창문을 닫다가 스노우볼이 떨어졌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잠들기 전까지 유리 파편 걱정합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의 공부방에 들어가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손톱 크기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구석에서 반짝입니다. 아이가 다치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출근했습니다.
아이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 하나로 스노우볼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작은 루틴이 깨지면서 일어난 사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고는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할 때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익숙한 것만 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든, 본인만의 루틴을 고수하든, 아빠에게는 아이가 다치지 않고 건강한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꿈을 조절하는 아이 (21년 6월)
아이가 다소 생뚱맞게 SF영화 같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아빠도 지금 내 꿈속에 있는 거야. 그래서 난 지금 내 마음대로 뭐든지 만들 수 있다!"
"그래? 그러면 아빠 좀 엄청 부자로 만들어 주라"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꿈이라도 그건 좀 어려워"
"딸 꿈인데 마음대로 만들 수 있잖아?"
"난 내 기분하고, 무서운 것을 무섭지 않게 하기, 같이 꿈속에서 내 기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 그런데 남의 인생은 바꿀 수가 없어"
"아깝네. 아빠도 부자가 되어보고 싶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꾸면 꿈을 꾸면서도 안 무섭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자기 꿈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나요. 아이 꿈속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이 말을 믿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아빠 얘기 때문인지 아이가 화제를 돌립니다.
"아빠 난 커서 빌딩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우리 딸 꿈이 건물주면 그 꿈을 구체화 시켜봐, 그리고 어떻게 하면 건물을 살 수 있을지 계획을 짜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자꾸 진지하게 대답해"
"크크크 아빠가 너무 다큐멘터리였나? 그런데 꿈을 구체화하는 방법은 성공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야!"
사실 아빠도 미래의 모습을 글로 쓰거나 구체화 한 적은 없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글로 쓰고, 매일 보며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이가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을 그려갈 때 아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묘사하고, 실천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다 보면 원하는 꿈이 훨씬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꿈을 조절하는 능력처럼 자신의 인생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아빠의 고민 (2021년 6월)
”아빠 영어학원에서 중학생 언니가 나랑 같은 레벨을 공부하고 있어!"
"그 언니는 학원을 늦게 다니기 시작했나 보네."
"치~, 내가 진도가 빠른 거거든?."
아이는 공부를 곧잘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은 몸이 아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 개근상을 준다면 아마 아이가 100% 받았을 겁니다.
저학년 때 아이에게는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 일종의 협박이었습니다.
"너 이렇게 숙제 밀리고 할 거면 학습지도 학원도 다 그만두게 할 거야. 이제부터 공부하지 말고 그냥 놀아"
"아니야 학원에 갈 거야. 학습지 공부할 거야. 끊지 마!"
엄마에게 혼나서 울먹이면서도 학원을 가겠다며 공부 욕심을 부렸습니다. 아이의 성적은 초등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강남 8학군 같이 학구열 높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 견주면 우물 안 개구리밖에 되지 않겠지요.
이제 몇 개월 후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중학교부터는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해야겠지만 주변 환경도 중요할 겁니다. 아이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사를 가야 할지, 가게 되면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형편만 된다면 남들이 원하는 강남 8학군으로 가고 싶습니다. 아빠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고민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 내 머릿속이 궁금해 (2021년 7월)
"아빠, 뇌는 어떻게 생각을 하는 걸까?"
"글쎄. 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빠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낸 컴퓨터 칩들도 모이면 판단 비슷한 걸 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컴퓨터까지 등장했으니까. 사람의 뇌도 세포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거지"
"아빠. 근데 웃기다. 뇌는 자기 이름을 ’뇌‘로 지은 거잖아? 멋진 이름도 많은데, 뇌는 좀 촌스러워 흐흐흐."
"뇌? 멋지지는 않네! 카카카 딸! 그거 알아? 사람 뇌의 주름을 펴면 엄청나게 큰 데 사람들은 그 뇌의 10% 정도밖에 사용을 안 한대"
"헐! 그것밖에 안 돼? 나머지는 노는 건가?"
"응, 그렇대 만약 뇌를 30% 이상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 거의 초능력자가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을 조정할 수도 있을 거야."
"누와~~ 초능력이라."
아이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꿈속에서 초능력을 부려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아이는 숙제와 시험공부에 쉴 틈이 없습니다. 아이의 뇌도 좀 쉬고, 놀아줘야 하는데, 쉴 틈 없이 공부만 하는 아이의 뇌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주말마다 아빠랑 한강에도 가고, 애견 카페나 고양이 카페에도 가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등등 놀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즘 아이는 주말에도 놀 시간이 부족합니다.
주말 내내 밀린 숙제를 하는 아이가 안쓰럽습니다. 아이는 잠시 쉴 틈이 생기면 휴대폰을 집어 듭니다. 아이의 뇌가 유튜브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뇌가 유튜브나 모바일 게임보다 육체적인 운동을 통해 휴식을 취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뇌가 휴대폰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휴대폰 사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 아버지는 생선 살이 싫다고 하셨어! (2021년 7월)
"딸~ 많이 먹어~"
맛있게 익은 조기구이와 밥을 먹었습니다. 짭조름한 생선구이가 입맛을 돋워 줍니다. 마눌님은 아이와 싸우지 말고 한 마리씩 나눠 먹으라며 조기구이 두 마리를 밥상 위에 올려놨습니다. 지느러미를 발라내고 두툼한 생선 살을 떼어 아이 밥그릇 위에 올려줬습니다. 아이는 짠맛을 좋아해 짭조름한 조기를 올려놓기 무섭게 사라집니다. 다시 조기 살을 큼직하게 발라내 따님 앞에 올려줍니다.
"딸, 아빠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생선 머리가 맛있다고 하셨거든. 아빠는 그 이유를 최근에 알았어.“
"생선 머리가 왜 맛있는데?"
"딸이 잘 먹는 모습 보니 많이 먹이려고 생선 몸통에 손이 안 가지네. 생선 머리가 맛있는 게 아니라 맛있는 몸통 살을 자식한테 먼저 주고 싶은 거야"
"아! 그런 노래도 있지 않나?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래. 많이 먹고 건강하게 커라!"
잠시 후 남은 건 조기 뱃살과 머리입니다. 생선 머리를 발라먹다 보니 고향 집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빠 어린 시절에 어머님이 생선요리를 해주시면 아버님은 생선 머리를 먼저 발라먹었습니다. 가시가 목에 걸려 어머님께 잔소리도 자주 들으셨었습니다. 어머님이 생선 몸통부터 먹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아버님은 생선 머리가 맛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리사랑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세상 누구보다 힘이 셌고, 세상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어느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연세가 되었습니다. 조기구이를 먹다가 아버님 생각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2021년 7월)
아이와 밥을 먹으며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뉴스에는 일산 중학생들의 폭행 및 성추행 사건과 생후 20개월 된 영아를 폭행해 숨지게 한 친부에 관련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아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세상을 한탄하는 말 한마디를 합니다.
“저 언니 오빠들은 왜 저래?”
“저 나이 때는 세상 무서운 게 없고, 자신들의 행동에 관한 판단을 잘하지 못해”
“그렇다고, 사람 목을 졸라? 부모님은 가만히 있나?”
“저 아이들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지 못하겠지. 넌 바르게 살아!”
아이와 뉴스를 보며 얘기하다 보니, 아이에게 뉴스 시청을 권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스는 가끔 미담과 선행 소식도 전하지만 어른들의 관심사인 ‘정치 관련 소식’과 ‘끔찍한 사건·사고 뉴스’가 대다수입니다. 뉴스가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부적절한 콘텐츠처럼 느껴집니다. 뉴스를 보는 것보다 차라리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시청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뉴스는 사회에 주는 경각심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친부모, 양부모의 영아살해 사건은 최근 들어 끊임없이 보도되는 사건 뉴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이 비판하지만, 자신이 낳고 기른 아이를 폭행해 숨지게 하는 부모들에 대한 뉴스는 끊이지 않습니다.
선한 뉴스, 세상을 기분이 좋게 만드는 뉴스는 없을까요? 상대를 비판하는 정치인들의 뉴스가 아닌 상대를 칭찬하는 정치인들의 뉴스가 많아지는 세상은 불가능할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미디어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참 살만한 세상이다’ ‘잘 돌아가는 세상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뉴스 콘텐츠가 많아지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 백신 접종이 뭐라고. (2021년 9월)
드디어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일이 되었습니다. 예약 접종 시간에 맞춰 예약시스템에 접속했습니다. 저녁 8시, “10, 9, 8…. 1, 0” 아이가 불러주는 카운트다운에 맞춰 바로 접속했지만, 앞 대기자는 벌써 1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차례가 금방 되겠지”하며 노트북을 열고 대기했습니다.
시간은 더디 갔습니다. 40여 분 만에 드디어 예약 화면이 떴고 따님과 기쁨을 나누며 예약하려고 화면을 클릭하는 순간, 화면이 초기화되면서 다시 대기화면으로 돌아갑니다.
“와 뭐 이런 게 다 있어! 이x 이게 뭐야…. 사람을 열받게 하네….”
“아빠! 딥빡이네, 릴렉스 해~”
아이 앞에서 너무 화를 냈나 싶어 진정하고 대기화면을 눌렀지만, 대기자는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생각할수록 기다렸던 시간이 아쉬워 화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결국 집 안에 있는 모든 휴대폰을 동원해 대기를 걸었습니다. 대기 시간은 무려 200분이 넘는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시간은 벌써 10시인데…. 예약하려면 거의 새벽 1시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눈앞에서 놓친 예약 화면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립니다. 어디다 화풀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 없는 노트북만 두드렸습니다.
“아빠 화내는 거야? 내가 아빠 핸드폰 봐서 화났어?”
“아니야, 따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노트북이 이상한 건지 시스템이 이상한 건지. 눈앞에서 기회가 사라지니까 너무 화가 나서 그래.”
“오늘 예약 못하면 백신 못 맞아?”
“오늘 안 되면 내일 새벽에 하면 되겠지. 어차피 아빠는 일이 있어서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해!”
맞습니다. 오늘 예약 못하면 내일 아침에 해도 되는데 왜 굳이 저녁에 하려고 애를 썼을까요?. 아이 앞에서 화를 낸 것이 창피해서 마음을 추스르고 대기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예약을 완료했습니다.
기다리면 결국 해결되는 것을, 눈앞에서 사라진 기회에 너무 쉽게 화를 낸 것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 코리아팀 파이팅! (2021년 8월)
”후~~ 후~~"
아이가 TV 모니터에 대고 바람을 불어댑니다.
"저 선수들은 일본에 있는데 TV에 바람을 분다고 일본까지 가겠어? ?"
"그래도 우리나라 선수가 이길 수 있게 내가 뭐라도 해 봐야지“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결승전을 시청하는 중입니다. 아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 대표팀을 응원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10점을 쏘면 환호했고, 상대 팀 선수가 10점을 쏘면 아쉬워합니다. 우리 선수가 8점을 쏘면 상대 팀이 더 낮은 점수를 쏘기를 바라며 TV 모니터에 대고 쉴 새 없이 바람을 불어댑니다.
아이의 바람 때문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양국 대표팀은 5개의 금메달 중에 4개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아이도 기쁨도 4번이나 이어졌지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스포츠 종목에 이렇게 열심히 응원하는 것을 보면 올림픽은 정말 국가 홍보를 위한 최고의 이벤트입니다.
주말에 양궁처럼 활을 사용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아신전'을 아이와 함께 봤습니다. 주인공 아신은 자기 부족을 희생시킨 조선 군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선 군인들을 좀비로 만들었습니다. 도망치는 자는 활을 쏘아 좀비의 먹잇감으로 만들었죠.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는 아신이 나쁜 여자라고 말합니다.
"아신 입장에서는 충분히 저럴 수 있지. 아빠도 아신처럼 했을 거야!"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저렇게 좀비로 만드는 건 나쁘잖아?“
"우리나라가 아니고, 조선사람이지. 그리고 조선의 군인들이 아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부족 사람들을 몰살시켰잖아! 아신 입장에서는 복수하고 싶지!"
"아빠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아빠가 여진족이야?"
"아빠는 대한민국 사람이지. 여진족과 조선사람을 구분하지 말고 주인공의 처지를 생각해봐~"
"난 한국 사람이고, 한국이든 조선이든 우리나라 사람들을 해치는 사람들은 다 나쁘다고 생각해!"
아이는 올림픽 기간 동안 애국심이 넘쳐나서 영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기보다는 조선사람이라는 핏줄에 더 공감하는 듯했습니다.
"아신도 조선사람이다. 여진족 출시이지만 그 부족은 조선으로 귀화해 조선을 위해 일했던 부족이다. 그런 부족을 희생양으로 만든 조선 군인들이 잘못한 거다." 설명해도 조선의 군인들을 감싸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의 애국심은 그 누구보다 순수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아신전에서 조선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올림픽 종목을 보고 나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순수했던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지만 선명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도록, 정의롭고 깨끗한 대한민국이 되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희망찬 개복치 (2021년 8월)
‘희망찬 개복치, 희망찬 개복치….'
아이가 혼자서 무라 뭐라 중얼거렸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별명을 만들어 주는 앱이 있는데, 질문에 답을 적어주면 AI가 별명을 만들어 주는 거야"
"별명을 만들어 주는 앱도 있어. 재미있는 세상이네 ~~ "
"그 앱에서 내 별명이 '희망찬 개복치'래"
"으하하 어감은 좋네. 희망과 복이 다 들어 있네"
"나는 개복치가 마음에 안 들어."
"별명인데 어때. 희망찬 개복치, 좋은데 하하하!"
아이가 중얼거렸던 개복치가 뭔가 했는데 본인 별명으로 어떨까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개복치라는 게 물고기 종류인 것 같은데 본 적이 없어서 이미지 검색해 봤습니다. 입은 삐죽 나와 있고, 몸통은 퉁퉁합니다. 예쁘게 생긴 물고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미지를 검색하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고는 아이가 정색합니다.
"아빠. 검색하지 말라고~ "
"개복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보는 거야~"
"아 보지 말라고 나도 검색해 봤어…."
"예쁘지는 않네. 크크크"
"그래서 내가 '희망찬 개복치'를 안 좋아하는 거야!!"
"그래도 나름 귀여운 구석은 있어. 별명으로 괜찮아 희망찬 개복치~"
"하지 마라…."
"ㅋㅋㅋ 행복한 개복치야. 오늘은 어땠어?"
"행복한 아니고 희망찬 이야…."
아이는 개복치라는 물고기가 못생겨서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아무래도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소녀이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아빠로서 딸의 별명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하루를 지내고, 희망차게 내일을 준비하면서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 변성기. (2021년 9월)
“아빠~ 내 목소리가 이상해?”
"하나도 안 이상해. 누가 우리 딸 목소리를 이상하다고 말했어."
"내가 듣는 내 목소리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목소리가 달라?"
"응 다르지. 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달라"
"왜? 다른데?"
"음 일단 너는 네 목소리를 네 몸속에서 울리는 소리와 밖으로 나온 소리가 함께 들리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네가 입 밖으로 내보낸 소리를 공기를 통해 듣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어"
"그렇구나,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진 않지?"
"우리 딸 목소리 좋아. 누구나 자신의 녹음된 소리를 들으면 처음에는 다 이상하게 느껴, 그런데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져 아빠도 녹음된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서 당황했었어."
"아…."
요즘 아이는 변성기입니다. 가끔 낯선 목소리가 들리기도 해 놀랍기도 합니다.
여자아이들의 변성기는 남자아이의 변성기만큼 큰 변화는 없어 걱정은 덜 되지만
또래들끼리 변성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눈치입니다.
아이는 아빠의 목젖을 만져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왜 목젖이 없냐며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남자는 목젖이 생기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 인체는 너무 신비로워서 아빠도 모르는 게 많다고 말해줄 뿐이었지요.
아이 신체의 변화만큼 정신적인 변화도 클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슬기롭게 적응해 가기를 응원합니다.
#. 낙선 (2021년 9월)
아이는 몇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학급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표를 못 받을까 봐 걱정돼 출마를 고민했지만 결국 용기를 냈습니다.
"아빠! 아빠!. 회장 선거 연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가 아빠를 급하게 찾습니다.
"내일이 선거 날이야?
"응~ 출마 발표를 재치 있게 하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없어 도와줘."
"딸은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난 그냥 6학년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
"그 얘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아빠가 정리하는 것 좀 도와줘요~"
아이와 같이 회장 출마원고를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면서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 수 있는 반장이 되겠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어른이 돼서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반을 만들고 싶다”라는 등의 짧은 원고입니다.
아이는 연설문 원고를 연습하며 자기의 말을 추가했습니다. 선거 날 아침, 아이는 표를 받지 못할까 걱정을 한가득 안고 등교했습니다.
"우리 딸이랑 친한 친구들 ◇◇이, ☆☆이는 널 찍지 않겠어? 그럼 따님 표까지 최소 3표는 되네"
"3표가 끝이면 어떡하지?"
"회장 선거에서 떨어져도 괜찮아. 도전했다는 자체가 중요한 거야"
아이에게 용기를 줘서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이는 결국 낙선됐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습니다. 선거 뒷얘기를 들어보니 여학생회장 후보는 딸과 다른 친구 둘이서 경쟁했다고 합니다. 딸은 9표를 받아서 낙선했다고 합니다.
"회장에 당선된 애는 연설문을 파워포인트로 준비해 왔어. 한두 장도 아니고 무려 10장을 준비해서 발표하더라."
"그 친구는 정말 회장이 되고 싶었나 보네."
"응. 그래서 나도 개한테 표를 줬어. 다른 아이 찍었다고 엄마한테 혼났지!"
"하하하. 선거는 절박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후보로 나선 사람이 투표는 본인한테 했어야지…."
아이는 부회장이 됐습니다. 부회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용기가 있는 행동이라며 아이를 칭찬했고, 회장 당선된 아이들보다 부회장이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만족해합니다.
선거 결과야 어쨌든 아이의 표정이 밝아 보여 다행입니다. 회장으로서 공약을 실천할 부담도 사라졌겠지요. 비록 회장은 되지 못했지만, 6학년 마지막 학기는 즐거운 추억, 좋은 우정을 듬뿍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 약속은 글로 쓰자 (2021년 9월)
퇴근 후에 집에 들어서면 아이가 반겨줍니다. 옷 갈아입는 곳까지 쫓아와서 조잘대고 떠들다 어느새 사라집니다. 아직도 아빠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흐뭇해하는 순간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사라졌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방에서 아빠 휴대폰을 들고 게임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럼 그렇지.
아이는 휴대폰 때문에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납니다. 혼나서 눈물을 보인 적도 많습니다. 아빠가 봐도 아이의 핸드폰 이용 시간이 과합니다.
"딸 스스로 생각해도 종일 핸드폰만 보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되지 않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친구들 다 나랑 비슷해. 엄마가 책 많이 읽는다고 말하는 친구도 내가 직접 물어봤는데 개도 책 안 읽는데…."
"남이 책 읽고 안 읽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딸이 핸드폰을 너무 많이 보는 게 문제야!"
"조금만 더 하고 숙제하려고 했다고."
"그 조금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이어지는 건 문제지. 아빠가 수십 번 얘기했잖아. 너 스스로 핸드폰 보는 시간을 정한 후에 보라고, 핸드폰 보는 시간 정해서, 책상 위에 붙여 놔! 그때까지 아빠 핸드폰 못 봐!!:
"알았어요."
아이에게 다짐받았지만 아이는 다음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 딸 핸드폰 보는 시간 적어 놨어?"
"아직 이따가 할 거야."
"핸드폰 이리 내, 사용 시간 적어 놓을 때 까지 못 본다고 했잖아!"
아이가 순순히 핸드폰을 내놓습니다. 아이는 결국 핸드폰 이용 시간을 책상 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평일 하루 1~2시간, 주말 2~3시간' 글로 쓴 약속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핸드폰 몇 시간 봤어.?"
"지금 보기 시작한 거야…!"
"그래. 그럼 지금부터 한 시간이야…."
한 시간이 지나고 핸드폰을 달라고 하니 군말 없이 가져다줍니다.
"책 30분 읽으면 핸드폰 30분 더해도 되지?"
"그래 대신 흉내만 내지 말고 제대로 읽어!“
아이는 20여 분 동안 책을 읽고 핸드폰 이용 시간을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주말 3시간, 분명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는 자기가 정한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핸드폰을 더 보기 위해 책 읽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글로 써라' 교훈이 효과를 보고 있네요
#. 아이의 애착 인형 (2021년 9월)
“아빠, 분홍이는 언제 산 거야?”
“아마도 네가 서너 살 때쯤~”
“내가 사달라고 졸랐었어?”
“너는 떼쓰는 아기는 아니었어. 분홍이는 아주 많이 갖고 싶어 했지”
“분홍이를 내가 많이 좋아했었어?”
“많이 좋아했지, 너 입원했을 때도 분홍이 데리고 갔었잖아”
“분홍이를 요즘도 팔까?”
“글쎄. 요즘은 유아복 코너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네!"
분홍이는 아이의 애착 인형입니다. 요즘도 잠자리에 들 때 꼭 챙기고 있습니다.
분홍이는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토끼인형입니다. 아이가 3살 때 쇼핑몰에 갔다가 귀여운 표정에 반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샀습니다. 아이는 많은 인형 중에 분홍이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침대에 놓여 있는 인형을 치우느라 휙 던지면 분홍이를 함부로 대한다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아이에게 분홍이는 인형이자 반려동물입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은 7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는 있지만 떼를 쓰지는 않습니다. 상황이 되면 입양해주겠다는 엄마와 아빠의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분홍이에게 쏟는 애착은 아마도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과 유사할 것입니다. 동생도 없고 반려동물도 없다 보니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분홍이에게 더 많은 정을 주고 있을 것입니다.
반려동물이 키우면 사춘기를 무탈하게 넘길 수 있다는 지인들의 말이 자꾸 귀에 남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있는 아이가 행복해하는 얼굴도 상상이 됩니다.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네 거 해라. (2021년 10월)
“딸, 이번 명절에 용돈 받은 것 중에서 절반은 아빠 줘~”
“왜? 내 것을 아빠에게 주는데?”
“그게 다 아빠 지갑에서 나간 돈이야. 그러니까 아빠 줘”
“아니야. 5만 원은 큰엄마가 주셨고, 3만 원은 할아버지, 이모가 5만 원,
외할아버지가 5만 원 주신 거야. 왜 그게 아빠가 준 거야.”
“자, 이모한테 받은 5만 원을 예를 들어보자. 아빠가 네 사촌오빠한테 5만 원을 줬어, 그래서 이모가 네가 5만 원을 준 거야. ”
“그게 뭐, 난 오빠한테 받은 것이 아니라 이모한테 받은 건데…”
“그게 다 명절 용돈 품앗이라는 거야. 아! 됐다. 네 거 해라~”
추석 명절이 지났습니다. 아이에게 추석은 풍성한 수확이 있는 날들이지만, 아빠의 지갑은 홀쭉해졌습니다. 만나는 친척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의 지갑은 두둑해집니다. 이번 추석에도 아이는 시골 고향 집과 파주 외할머니댁을 오가며 용돈을 두둑이 챙겼습니다.
“시골에서 하룻밤 자야 해?”
“오래간만에 내려가는데 하룻밤 자야지. 왜 싫어?”
“싫지는 않아. 큰엄마도 오시려나? 흐흐흐”
아이는 누가 용돈을 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막내다 보니 고모, 이모, 할머니가 아이를 볼 때마다 용돈을 챙겨줍니다. 지갑에 보유한 현금으로만 따지면 아이가 아빠보다 부자일 수 있습니다.
추석날 받은 용돈을 정리하는 아이의 지갑을 보며 저 돈을 어떻게 훔쳐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받은 용돈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 용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가진 돈을 계획적으로 쓰고 모으는 일도 아이에겐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돈 있다고 펑펑 쓰지 않고, 현명한 소비를 하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아빠가 청소년기에 잘하지 못한 일이지만 아이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 긍정의 말 (2021년 10월)
“말은 씨앗이 되는 거야. 사람이 뱉은 말은 기운이 돼서 사람 주변에 떠돌아다니면서 말한 사람에게 영향을 준대.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씨앗이 돼서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나도 알아. 아빠가 예전부터 자주 얘기했었잖아!"
"알면서 왜 이상한 말을 하냐?“
아이가 노숙하면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 라는 말을 하길래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노숙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네가 노숙자가 되면 지금보다 맘이 편하겠냐? 몸이 편하겠냐? 그리고 '긍정의 말'을 써야 한다”라며 따님에게 훈계를 했습니다. 따님은 웃자고 한 말에 정색하는 아빠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노숙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웃고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이것저것 많았지. 그런데 대부분은 과학자였던 것 같아!"
"말이 씨가 된다면서 아빠는 왜 과학자가 안 됐어?"
"(헉!) 말 한 번으로 씨앗이 되고 그 말이 현실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말을 항상 생각하고 이루기 위해 행동하고 실천해야지 되는 거야"
"난 아주 큰 기업의 사장님이 될 거야!"
"사장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도 좀 읽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알았어. 알았어, 이제 나도 알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거."
아이에게 평소에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얘기합니다. '자기가 내뱉은 말은 씨앗이 되어 언제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좋을 때는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더 좋은 기운을 받고, 힘들 때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 인생네컷 (2021년 10월)
“아빠, 친구들이 오늘 노량진에 가서 인생네컷 찍자고 하는데.”
“인생네컷이 뭔데?”
“음 즉석 사진 같은 건데, 요즘 유행하는 거야….”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이랑 갈 수 있어?”
“태윤이랑 같이 가면 돼~”
“그럼 아빠가 차로 데려다줄게, 친구한테 4시에 만나자고 해”
“그런데 엄마가 허락할까?”
“네가 잘 설득해야지. 안전하게 다녀오겠다고….”
토요일 바이올린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같은 반 친구 4명이 함께 ‘인생4컷’을 찍으러 간다고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린아이들끼리 혼잡한 시내에 보내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아이 혼자서 동네 밖을 나가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간다고 하지만 초등학생끼리 번화가를 다니다가 사고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친구들 모임에 빠지는 것도 아이에겐 큰 후회로 남을 일이기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아빠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 친구들끼리 강릉 경포대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농사일도 바쁘고 위험하다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강릉으로 떠나는 날 아빠는 부모님의 밭일을 도우러 나갔습니다. 밭에서 마을을 보는데 친구들이 경운기를 몰고 출발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하염없이 쳐다보며 아쉬워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친구들은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때의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합니다. 경운기를 몰고 충북 음성에서 강원도까지 가면서 겪었던 일, 강릉 해수욕장에 경운기를 세우고 바다 구경을 한 일 등.
친구들의 무용담이 이어지는 동안 아빠는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도 그날의 일을 후회한다고 얘기하십니다. 친구들이 떠나는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식의 모습을 부모님도 곁에서 지켜보시며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으로 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와 같은 후회를 남겨주기 싫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아빠가 나서서 받아 줄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마눌님도 흔쾌히 허락을 해줬습니다. 아이를 보내놓고 몇 시간 동안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딸, 너네는 6학년이라서 학교에서는 너희가 다 컸다고 느끼겠지만 학교 밖에서는 아직 꼬맹이들이야. 그러니까 너무 으스대지 말고 조심히 놀다 와~”
“알았어. 조심할게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다 우리 밑이긴 하지. 흐흐흐”
아이에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몇 번을 당부하고 아이를 친구들에게 보내줬습니다. 아이는 약속 시간보다 한두 시간을 더 놀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친구들과 찍은 인생네컷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들과 보낸 일들을 조잘댑니다. 사진도 찍고,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도 먹고, 문구점에 가서 쇼핑도 했다며 즐거워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돼서 따님은 부모 도움 없이 첫 나들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아이는 아마도 성인이 돼서 이날을 기억하며 수다를 떠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된 겁니다. 아이의 행복하면 부모의 마음도 행복해집니다.
#. 말 잘하고, 밥도 잘 먹는 따님 (2021년 10월)
아이와 고향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있을래? 아빠랑 할머니 댁에 갈래? 네 편한 대로 해”
“아빠 맘대로 해, 그런데 시골에 가는 것도 좋아”
평상시 같지 않게 아이가 시골 방문길을 따라나섰습니다. 아이가 아빠의 고향 방문을 따라나선 의도는 적은 돈이라도 용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시골집에 도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점심 식사를 챙겨드리고, 집 안 청소하고 있는데 막내 고모네 식구들이 내려왔습니다. 조카들은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아이를 아기 때 본 기억만 갖고 있던 조카들은 훌쩍 자라있는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랍니다.
조카는 고향 집에 아이가 있다는 말에 고모에게 “수민이가 말은 잘하나?”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이가 곧 중학생이 된다는 말에 금세 컸다며 신기해합니다. 아빠도 조카가 벌써 서른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조카는 시골집에서 딸 벌인 동생을 살뜰히 챙겼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장어를 먹을 때도 아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챙겨줬습니다. 아이는 사촌 언니 옆에서 장어를 배부르게 먹었다며 흡족해합니다.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는 언니가 용돈을 5만 원이나 줬다며 자랑합니다. 진즉 알았다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했을 텐데, 조카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늦은 밤 집에 오는 길 아이 표정은 밝았습니다. 아이는 맛있는 장어에 밥도 잘 먹고 용돈도 챙기고 시골집에 내려온 목적을 100% 이상 달성했습니다.
아이도 빨리 자라서 조카들에게 용돈을 챙겨주는 날이 있겠지요. 언니들에게 받은 만큼 조카들에게 풍부하게 베풀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어쩔 TV (2021년 10월)
“너 핸드폰 언제까지 볼 거야? 엄마가 잔소리를 안 하면 온종일 볼 거야!!”
“어쩔 TV~~”
“숙제 다 했어? 내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숙제는 오늘 다 끝내야 할 거 아냐!!”
“어쩔 TV~~”
요즘 아이가 가장 쓰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어쩔 TV’입니다. 아빠랑 얘기할 때도 수시로 ‘어쩔 TV’를 꺼내 듭니다. 주로 아이가 수세에 몰릴 때나 대답하기 귀찮을 때 쓰는 것 같습니다.
“어쩔 TV가 무슨 뜻이야?”
“있어. 그냥 대화할 때 쓰는 말이야.”
“그 말은 신상도 유행어야?”
“신상도는 아니고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거의 다 써….”
“그러면 요즘 초등생 유행어인 거야?”
“초등학생도 쓰고 중학생들도 쓰고 그래.”
“그런데 그 말을 아빠는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
온라인 검색해보니 ‘어쩔 TV’는 한 유튜버가 만들어 내 말이라고 하네요. ‘어쩌라고, 가서 TV나 봐’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용도는 다양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줄임말 유행어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초등학생들의 유행어는 감을 잡을 수도 없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말도 생명이 있어서,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를 잡기도 한다고 하지요.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몰라서 따님과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따님이 사용하는 유행어를 뒤처지지 않게 따라 익혀야겠습니다.
* 아빠의 유년 시절에도 ‘무지개 반사’ ‘네 똥 컬러’ 등의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가끔 아이가 ‘어쩔 TV’ ‘저쩔 TV’ 등등 얘기하면 ‘거울반사!’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 유전자는 못 속여! (2021년 11월)
“아빠! 성질이 아주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과 착한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어떤 성격을 가질까?”
“너 같은 아이가 나오겠지!”
“ㅋㅋㅋㅋㅋ 그럼 엄마가 못된 성격이고 아빠가 착한 성격이라는 얘기야?”
“아니. 엄마가 착한 사람이고 아빠가 못된 사람이야….”
“ㅎㅎㅎ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의 몸 속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무수히 많은 유전자가 있어. 그중에 어떤 것이 자식에게 전달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래서 형제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누구는 공부가 보통인 사람도 있고, 외모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있고, 개성이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못생긴 사람은 슬프겠다.”
“세상에 못생긴 사람은 없어. 개성과 선호하는 외모가 다를 뿐이지”
“난 못생겼어!”
“넌 잘 생겼어...”
“뭐야 예쁘지 않고 잘 생겼다는 말은 내가 남자답다는 거야?”
“여자도 잘 쟁길 수 있지. 예쁜 외모가 나은 게 아니야..”
대화는 유전자 얘기로 시작해서 결국 아이의 외모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이는 성격적인 면에서는 엄마의 유전자를 더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아빠는 표현이 서툴고 원하는 것을 명확히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아이는 자신의 호불호를 비교적 확실하게 표현합니다. 외향적인 성격도 아빠와 다릅니다.
아이가 아빠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밀자라고 불리운 아이 (2021년 12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방학식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 크리스마스라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12월 23일, 학교에 간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간 흥분한 목소리입니다.
"아빠 나 지금 친구들이랑 보건소에 가"
"갑자기 보건소에는 무슨 이유로 가는 거야?"(현장수업인가? 생각했었습니다)
"반 친구 한 명이 학원에서 코로나 감염돼서 확진됐대. 어제 검사 받았는데 아침에 확진이라고 통보 받았대. 그래서 우리반 지금 다같이 검사받으러 보건소에 가"
"(아 이런). 마스크 잘 쓰고, 조심해서 다녀와"
아이가 어릴 때 독감에 자주걸렸던 터라 걱정이 됐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2년 동안 주변에서 확진자는 없었습니다. 그 어려운 걸 아이가 해냅니다. 집에 온 아이는 검사받은 얘기를 해줍니다.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다. 코에 면봉 같은 걸 넣을 때는 아팠다. 왜 꼭 콧구멍에 넣어야 되냐?” 등등. 아이는 확진자와 같은 반이라서 방학식도 없이 바로 집안에 격리가 됐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녁 방안에서 친구들 여럿이서 온라인 채팅으로 그날의 무용담을 얘기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방안이 날아갈 듯 시끄럽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확진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한가득 인데 아이들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아이의 PCR 검사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밀자야 밥먹어라"
"밀자들 이제 그만 놀고 공부도 해야지?"
자가격리가 되면서 아이의 별명이 하나 늘었습니다. ‘밀자’는 밀접 접촉자의 줄임말로 아빠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밀자야!”라고 부르면 아이도 “네” 곧잘 대답합니다. 별명이 싫지 않은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입니다. 밀자는 조용히 자기 방에 있습니다. 아이의 초등학교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아주 조용히 지나갑니다. 산타도 바이러스가 무서워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밀자라는 별명만 하나 얻고 아이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