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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2. 2023

____은 끔찍해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6 1화 리뷰 / 오타쿠일기 2호 백업


 「블랙 미러」 시리즈의 시즌6 돌아왔다. 넷플릭스의 간판격인 작품이다. 오랜 구독자라면 한 번쯤 찍먹해봤을 드라마다. 물론 시즌1 1화의 불쾌함 탓에 하차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블랙 미러」는 옴니버스 형식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는 대체로 근미래 혹은 충분히 가능한 대체 현실 속에서 전개된다. 지금 수준의 과학과 기술에서 조금 더 나아간 세계,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시즌6의 첫 화를 장식하는 건 존이다. 존은 겉보기에 선방한 전문직 여성에, 다정한 약혼자가 있다. 물론 좀 잘나간다고 해서 출근이 다 기쁜 건 아니다. 존은 출근하자마자 부하직원이 내린 커피에 점잖게 핀잔을 주고, 해고 통보를 위한 일대일 직원 면담을 한다. 엊그제 아파트 보증금 넣었다고 싹싹 빌어도 안 봐준다. 존은 자기가 아닌 이사회가 자르라 했다며 말을 돌린다. 언놈이 자르든 간에 직원 입장에서 잘린 건 잘린 거다. 말이 면담이지, 아주 정떨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상사와의 면담은 이런 식이다.)


 존도 나름대로 생각이 없는건 아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껴서 해고통보를 하는 것도 괴롭고, 자상하지만 영 밋밋한 약혼자도 괴롭다. 그래서 (때마침 연락이 온) 헤어진 전 남자 친구를 만난다. 여기까진 그래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이 모든 상황이 '존은 끔찍해'라는 드라마로 스트리밍된 후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온 밤, 존은 약혼자와 함께 스트림베리(넷플릭스와 같은)로 드라마를 보기로 한다. "Joan Is Awful". 이게 뭐야? 존과 똑 닮은 여배우가 메인에 떡하니 걸려있다. 헤어스타일도, 옷도 똑같이 차려입은 그 여자는 존이 보낸 하루를 똑같이 반복한다. 만남, 대화 모두. 다만 조금 과장해서.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은 있을 거다. 샴푸가 떨어져서 인기 있는 샴푸를 검색했더니 샴푸광고가 웹사이트에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경험. 친구들과 떡볶이의 맵찔이 수용가능 정도에 대한 대화를 했더니, 해당 떡볶이 브랜드의 배달 광고가 스마트폰 광고에 뜨던 경험. 특정 장르에 대한 내용을 트위터에서 딱 한 번 리트윗했더니(이젠 X에서 재게시하는 게 되어버렸지만), 자꾸만 관련 이슈가 추천 탭에 줄줄이 뜨던 경험. 


 "역시 구글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아무리 스마트폰이 우리가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고 해도 이는 그저 웃기고 무서운 하나의 경험으로 치부된다. 마치 우리 삶과는 실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이 이메일이 발송되고 나면 여러분에게 넷플릭스 광고가 뜨겠지?



쓰고 있는 기기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컴퓨터의 웹사이트 엔진에는 내가 들락거렸던 모든 웹사이트가 기록되어 있으며, 하루 종일 틀어놓는 스마트TV가 있고, 통신사의 권유로 들여놓은 AI 인공지능 스피커, 사진부터 비밀번호까지 연동된 아이패드와 노트북도 있다. 그 밖에 온갖 새로운 기계에는 '스마트'가 붙는다. 반대로 나는 멍청해지고 있는데도. 


게다가 스마트폰에 앱 하나 설치하는데도 수많은 개인정보 동의서를 체크해야 한다. 광고성 정보 수신만 비동의한다고 해서, 그 위의 모든 약관을 꼼꼼하게 읽지는 않는다. 얼른 이 지루한 가입 절차를 모면해야 한다. 금융사나 은행 애플리케이션은 또 어떤가. 내가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디다 쓰는지 그들의 데이터는 이미 다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거 뭐, 실제로 벗고 다니지 않았을 뿐 나의 하루가 존처럼 전 세계에 스트리밍 되도 할 말이 없다. 나도 모르게 동의했을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직장동료의 청첩장에 한숨을 쉬고(사실), 근무 시간에 몰래 글을 쓰고(사실), SNS에 상사 뒷담을 까고(사실), 비엘 동인지에 돈을 쓰며(사실), 만나기 싫은 약속을 일이 생겼다며 취소하고(아주 가끔 사실), 몰래 틴더를 깔아 스와이프하며 절규하는(비슷한 맥락은 가진 적 있으나 이건 사실이 아님) 나의 하루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갑자기 친구들과 직장동료에게 죄송해진다.)


 스마트폰을 가지게 된 지 십여 년 정도가 흘렀다. 상용화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느낌이다. 적어도 내 대학 입시 때는 또래들이 일부러 2G 폴더폰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이제 막 걸어 다니는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나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며 우는 걸 달랜 지 채 10년이 안 된 셈이다. 근간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10년 만에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과연 '리터러시'리고 부를만한 태도가 남아있기는 한건지. 


    최근 <나 혼자 산다>에서는 코드 쿤스트가 스마트폰 없이 살기를 도전했다. 이전엔 여행도 구글맵 없이 다녔고, 버스도 정류장에 붙은 버스 시간표를 봐가며 탔고, 종이통장에 월급이 찍혀 나왔고, 영상 대신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살았다지만 이제 스마트폰 없이 살 수는 없다. 코드 쿤스트처럼 금고에 스마트폰을 가두어 놓고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실천에 옮길 수야 있지만... 사이버 친구들이 SNS 안에 있잖아. 내 지갑이랑 신분증이 스마트폰에 있잖아악. 


 당장 기술을 쓰지 않으면 고립되고 마는 시대다.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의 모든 말, 판단 능력과 지식과 시간을 스마트폰에 위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아름다운 유튜브, 네이버, 구글, 트위터, 기타 등등님이시여. 제 모든 하루를 가져가소서.


 지금, 이 선례를 만들고 있는 끔찍한 존의 말로를 끝까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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