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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5. 2023

소설이 되려는 허상의 일기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 오타쿠일기 8호 백업


2023년이 넉 달 조금 넘게 남은 시점에서,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펼쳐본다. 이전엔 문예지도 구독하고 문학상 수상작도 자주 읽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소설에 영 손이 가질 않는다. 드라마며 영화, 웹툰, 웹소설, 게임, 콘텐츠가 끝도 없이 차고 넘쳐서 그렇겠지. 그래도 서사 중독인 인류에게는 결국 소설만 한 게 없다. 


 이번 해의 대상작은 이미상 작가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다. 제목을 읽으며 어물어물 거리는게, 자음'ㅁ'이 많아서인지 두 글자의 명사가 많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소설도 그런 식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 유쾌하고 통쾌한 전개, 강력한 '한 방' 없이 중얼거리듯이 흘러간다. (당연히 그런 전형적이고 서사성이 강한 소설이라면 작가상의 후보가 될 수 없었겠지만.) 살다 보니 올해가 어물쩍 넘어가는 것처럼 모래 고모의 주변인 목경의 이야기도 그렇다. 


 일곱 개의 소설 중에 솔직하게 좋아하는 순위를 매겨보자면 단연 1위는 성혜림 작가의 「버섯농장」이다. 그다음은 김멜라 작가의 「제 꿈 꾸세요」, 이서수 작가의 「젊은 근희의 행진」. 「버섯농장」은 어딘가 페이크 다큐 같은 느낌이 있다. 음울하고, 답답하고, 의문스럽다. 「제 꿈 꾸세요」는 결말이 불행하지만 결말 이후가 환상적이고, 「젊은 근희의 행진」은 2023 현재진행형 인생의 변주다. 


 오늘은 대상작보다 다른 수상작에 관해 얘기를 해보려 한다. 「버섯농장」의 진화에게 일어난 일은 어디선가 타고 들은 기막힌 이야기 같다. 독립영화의 느낌도 다소 있다. 아니 진화 걔가 전 남친 아는 동생한테 휴대폰을 개통했는데, 자기 명의로 대포폰이 하나 더 있었대. 뭐? 그래서. 몰라, 휴대폰 결제까지 해서 몇백 쌓였다나. 그래서? 걔가 갚았대? 글쎄, 고소해야 하지 않을까? 상황을 들으니 심각하긴 한데 결국 남 일이다. 에구, 이래서 폰팔이는 안 된다니까. (라고 답할지도.) 


 사기를 당해본 경험이 있으면 알겠지만(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게 당한 돈은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순진한 사람에게 당했다면 고소하겠다는 협박 끝에 한 푼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고, 고소장을 내도 수사가 한없이 지체돼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차가운 현실이다.) 진화는 자신이 갚거나 고소하는 대신 상황을 직접 타개하려 한다.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전남자친구의 아는 동생 대신 그 동생의 아버지되는 사람을 찾는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과 연을 끊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는 이유로 진화가 진 부채를 진화 쪽으로 슬그머니 밀어놓는다. 책임질 당사자는 그 사람의 아들인 건 분명하지만, 나 몰라라 하면서 '아가씨가 이해해라'는 식의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약이 오르게 만든다. 이 중년 남성은 '아가씨들'에게 자기 인생사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미안해요. 진실로 '미안함'은 눈곱만큼도 있지 않은 책임 회피에 불과한 말이다.  


 '아가씨'라는 호칭에 따라붙는 불쾌함과 더불어 진화는 의도치 않게 빚보다 더욱 큰 기만을 느낀다. 음습한 버섯농장을 가진 중년 남성에게서, 동시에 아무런 책임과 연대를 지려 하지 않는 제 친구인 기진에게서. 


 끝내 누가 빚을 갚았다는 결론은 나지 않고, 진화와 기진은 버섯농장을 떠난다. 이래서 한국 소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되는 이유도 있다. 분명 좋은 소설들은 많지만, 문단의 소설은 종종 우울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소화하기 편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불편한 편의점이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가?) 매년 등장하는 문학상과 문예지 소설은 주로 여성, 젠더, 차별, 시대, 역사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서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실을 전달한다는 뉴스도 이념에 좌우되고, 온갖 곳에 널려있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언어를 상대로 무력한 사람들은 어디에 자신의 언어를 외칠 수 있을까. 사회 밑바닥에 침잠한 개인들의 갈등은 소설에서나 겨우 말을 꺼낸다. 아무도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고, 이 사연을 구성하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 세상 때문이라고. 


 우리의 일기도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처량하고 외롭고 우습고 자조적이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사기도 당하고 마음을 잃는 매일의 일들. 얼기설기 시간을 엮어가며 살아가는 일기 속에서 허상이 아니라 진실이 되고자 하는 것은 소설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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