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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 28. 2024

쪼그라든 마음_나의 엄마는 (1)

엄마는 10년 동안 꼬빡 한 자리에 앉아서 닥종이 인형을 빚었다. 작품을 만드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느다란 뼈대 위로 빛이 투과하는 얇은 종이를 한 장씩 붙여 부피감 있게 만든다. 젖은 종이로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은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이 정해져 있다.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작업할 시간이 있다고 한번에 후루룩 완성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넘치면 형태가 무너지고,  모자라면 속도가 더디어졌다. 엄마는 작업하는 내내 작품의 작은 얼굴에 완벽하게 빠져들곤 했다. 작은 인간의 표정을 종종 따라 지었고, 작품들은 하나 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낱장으로 존재하던 얇은 종이는 긴 시간이 켜켜이 쌓일 때 인간사의 한 장면으로 거듭난다. “작품 각각에 내가 했던 당시의 고민과 한이 담겨 있어.” 엄마는 엉덩이뼈가 욱신거리도록 꼬빡 앉아 시절의 고민과 바람을 한 자리에 앉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하나둘 완성된 작품들은 집안 곳곳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이다 몇 번이고 닦이다 이내 치워졌다. 엄마가 자신의 손이 닿을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화초를 갑자기 내다 버린 것처럼. 작품들을 모두 박스에 눌러 담아 창고에 넣었다. 혼자서 다잡았던 빛바랜 마음들이 이제 모두 짐 덩어리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며칠 전 엄마에게 불쑥 전화가 왔다. 당신의 작품을 폴란드에서 전시해 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폴란드에 사는 친구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닥종이 인형 만드는 걸 배웠고 그때의 감흥을 잊지 못해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갤러리는 작가가 직접 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했으면 좋겠다며 엄마를 초대했다. 이국적인 땅 폴란드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엄마라니. 머릿속에 유럽의 작은 도시를 거니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갈 생각은 없고. 작품들을 한 번에 싸게 팔아 버리면 어떨까 해서”


마음이 덜컹거렸다. 엄마의 시간이, 삶이.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팔려 휴지 쪼가리처럼 단숨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만약에 아주 만약에. 엄마가 평소 세계를 누비며 다채로운 여행을 많이 해봤으면 어땠을까.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소소한 재미를 붙이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기회를 맞이할 배움의 잔근육까지 쏟아내 버렸다. 이미 겨울이었다. 반짝이던 찰나의 가능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주 보통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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