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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Feb 18. 2024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지 않으면 5천 원을 내시오

오늘도 마주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

20대 때는 토해내 듯 글을 썼다. 일상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문장 형태로 떠올랐고, 잦은 빈도로 이를 어딘가에 게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10년 전 글을 읽으며 생경한 기분이 든다. '내가 쓴 글이 맞나' 하고. 오래전 감정들이 낯선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라진 게 더 크다. 키보드를 통해 마음을 끄집어내는 것이 익숙했고, 빈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지껄였을 때만 안도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쓸 거라 확신했다. 쓰지 않는 삶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떠한 확신이라도 언제고 희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땐 믿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 글로 밥벌이를 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다수가 공감할 수 없는 감상적인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형용사를 뺐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단문으로 잘라냈다. 인과가 정확하고, 상사의 기준을 통과한 글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하루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직장 상사가 빨간 펜을 그어주는 대로 모든 걸 수정했고, 정확하게 쓰기 위해 나를 깎아냈다. 어쩌면 한 사람이 하루에 같은 행위를 반복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글을 쓰는 일이 밥벌이가 되니 스스로를 위해 쓸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겨우 빈 시간이 생기면 병원에 가고, 밀린 집안일을 하며 부대끼게 살았다.


그토록 잘 해내고 싶던 밥벌이도 10년이 지나니 시들해졌다. 물론 완벽한 글쓰기 스킬을 습득해 이제 더는 성장할 공간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계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나가떨어졌다는 말과 더 닮아 있다. 상사가 바뀔 때마다 그어지는 빨간 펜의 이유가 달라졌고, 그때마다 그의 취향과 감각에 맞춰 쓰는 일이 지겨워졌다. 2024년은 자발적 퇴사를 선택하고 빈 시간에 키보드 앞에 앉기 위해 친구와 내기를 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고, 이를 완수하지 않을 시 공동 계좌에 5천 원씩 입금할 것.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등 어떤 채널도 다 괜찮다. 어떤 글을 써서 빈 공간을 채울지는 각자의 몫에 달렸다. 빈도 말고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최소한의 바운더리만 주어진 이 약속은 어떤 걸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오늘 같은 날에도 나를 끌어 앉힌다. 의식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써내려간다. 누군가의 인정과 커다란 행운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오래전 집 나간 글쓰기 욕망은 슬그머니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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