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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시간표 짜기

by BYEOT

부산국제영화제가 다가온다. 영화제를 가기 전 시간을 많이 내서 시간표를 짜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번에도 노트를 펴서 불규칙하게 적기 시작했고, 기어코 이것은 정확한 선호 순으로 정리될 것이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꽤나 즉흥적이다. 제목에 이끌려 들어간 상세 페이지에서 스틸컷을 보고, 줄거리를 읽고, 감독의 약력을 읽는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티저를 찾아보거나 영화에 대해 검색한다.


영화제에서 하루 동안 보는 영화로 그날의 감정을 디자인해 보곤 하는데 예를 들면 지나치게 무거운 영화는 이른 아침보다는 점심쯤으로, 그리고 하루에 보는 영화 중 한 편 정도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이거나 코미디로 배치한다. 그리고 영화제를 즐기는 기간 동안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 한국 독립 영화 등을 섞는다. 올해도 고심해 스케줄을 짤 테지만 영화가 내가 예측했던 감동을 건넬 확률은 반이다. 그럼에도 영화제 시간표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내년 한 해 동안 극장에서 만나게 될 영화들의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란 게 세상에 등장하면서 자극적이고 신선한 소재의 알맹이가 없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거나 의아한 감정에 휩싸이는 씬이 그저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로 쓰인다. 꾹 참고 영화 끄트머리까지 달려가 봤자다. 궁극적인 해소도 없고 질문도 없다. 지나치게 잔혹했던 장면마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 후 차갑게 버려진다. 물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착한 영화'도 많다. 영화가 무조건적인 선의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열하게 고민한 것들을 건네주기를 기대한다.


연애가 끝난 뒤에 의도적으로 사랑 노래를 듣지 않는 것처럼. 내 무의식을 건드는 것들에 촉수를 세우고 있다. 보고 듣는 것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 해야 하는 일이 결국 내 삶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점 역시 감각하고 있다. 극장 밖을 나설 때 울적함에 휩싸인 채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마음이 따뜻하고 커다래질 수 있는 영화를 골라볼 셈이다. 살뜰하게 계획할 테지만 아마 이번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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