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살았던 동네에 남편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열 살이 훌쩍 넘게 나이를 먹었는데 살던 동네는 그때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어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프랑스가 정말 잘하는 것.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일. 우리가 2년을 머물렀던 곳은 Cite Universitaire 씨떼 유니베흐씨떼 라고 불리는 곳으로 파리 남쪽 13구에 있다.
학생이나 젊은 연구원들을 위해 거주와 생활공간을 나라에서 보조해 주는 멋진 공간이다. 물론 공짜도 아니고, 저렴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갖추어야 살 수 있는 곳이니 기억에 남을 특별한 파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곳이다. 도서관도 있고, 파티도 하고, 테니스 코트도 있고 등등 이용할 수 있는 혜택들이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자신이 자란 동네를 찾아가 뭐가 변했나 둘러보던 심정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젊은 시절의 내가 살던 곳을 둘러보며 그때로 돌아가 잠시나마 추억해 보는 일. 그때의 나를 만나는 일. 내가 이용하던 지하철역, 건너던 횡단보도, 장을 보던 마켓, 산책하던 공원 등을 보며 빠르게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들었던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감사했다. 우리가 살던 건물의 외관이 시간의 흔적으로 조금 바래기는 했지만 그때와 똑같이 그곳에 있었다. 낡았다고 부수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와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살던 곳을 찾아가면서 기대하던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품어주고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생생한 추억여행을 할 수 있었다. 추억할 것이 많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행복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추억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한국도 옛날 동네가 많이 변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추억하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어린 시절의 풍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면....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개발되어 버렸다면... 아주 많이 안타깝고 슬플 것 같다. 찾아갈 추억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외국에 머물면서 잠시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길어봤자 겨우 1,2년 또는 2,3년이었는데 많은 것들이 변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자주 가던 식당이 있던 자리에 다른 업종이 새롭게 오픈하거나, 있던 건물은 부서지고 어느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곤 했다. 한참 청계천 복원 사업을 하던 때이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또 외국에 있을 때 버스전용차로가 생기는 바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전에 이용하던 버스들의 노선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때는 거리에 못 보던 "카페베네"가 촘촘하게 생겨 있는 서울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얼핏 보고 커피빈인가 했는데 처음 보는 신생 카페 프랜차이즈였고 짧은 시간에 서울 어디를 가든 카페베네가 없는 곳이 없는 것만 같은 놀라운 풍경이란.... 한국은, 서울은 정말 많은 것이 단시간에 변하고 발전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파리는 시간이 멈춘 듯 십여 년 전 풍경 그대로다. 버스, 트램, 메트로 노선도 그대 로고, 마켓이나 빵집도 그대로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삐걱거리는 마루 바닥, 좁은 나선형으로 경사진 계단 등 오래돼서 불편한 것이 많은 파리인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복원하고 지켜 내고 있는 프랑스 파리. 대단하고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노력들이 더해져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파리가 1위를 차지하는 거겠지...
세월이 언제 이렇게나 많이 흘러 버렸나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하게 된다. 나와 남편이 파리에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주 그런 생각이 들겠다 싶다. 우리는 아이가 없어서 실감을 못하다가, 십여 년 전 신생아로 봤던 아이가 어느새 틴에이져가 되어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으악! 그만큼 우리는 늙어버렸다는 사실!
태어난 순간부터 어쩌면, 사실은, 종말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겠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왠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그러다 결론을 내린다. 결론은 늘 똑같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삶을 보다 간결하게 정리 정돈 하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나의 가장 젊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