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단편영화 <출제오류>
2014년 대학 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세계지리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불이익을 받은 수험생은 평가원을 상대로 해당 문제 관련 소송을 냈고, 평가원은 항소심 판결이 받아들여 오답 처리되었던 수험생들의 성적 재산정, 추가 합격과 같은 구제조치를 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청소년 단편영화 <출제오류>는 2016년 안양청소년영화제를 비롯 다양한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청소년 단편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지연아, 다른 친구들은 취직 생각해서 경영이나 경제 뭐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데,
지리는 네가 고등학교 과목으로 좋아하는 거지, 선생님이 봤을 땐 지리는 별로 비전이 없어.”
지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지리학과로의 진학을 원하는 지연이에게 담임선생님은 취업이 잘되는 ‘경영/경제’ 학과를 권한다. 남부럽지 않은 상위권 성적에 좋아하는 것까지 뚜렷이 있는 ‘이상적인’ 청소년인 지연에게도 학과 선정에 있어서 자유로운 선택권이 없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청소년 개인의 비전을 꿈꿔 볼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회의 비전이 없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담임선생님의 태도에 영화 초반부터 학교라는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양성하여 사회로 배출하고 있는지 설명해준다.
“근데 이게 무효처리되면 지금 일 등급인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지연은 출제오류를 밝히기 위해 불이익을 받았던 몇몇의 친구들과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되는 사항은 없고 함께 싸우던 친구들은 하나, 둘 등을 돌린다. 학생들에겐 다음 시험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현재 진전 없는 이 과정에 쓰고 있는 시간과 노력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혼자가 된 지연은 결국 학교 선생님은 물론 학급 친구들에게까지 ‘골칫거리’의 대상이 된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에선 단지 점수 몇 점을 높이기 위한 이기적인 발버둥으로 치부되고 만다. 공공의 이익이 아닌 당장 눈앞에 있는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되어버린 학생들. 입시위주의 경쟁시스템은 결국 모두를 외롭게 만든다.
“결과가 나온다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넌 그동안 시간낭비를 한 거야.
내 문제에는 오류가 없어.”
학생인권, 소수자의 인권 등 권리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지지만 학교에선 각 권리의 보장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고를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모든 교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학교장의 권한으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의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 속 교육청 협의회에선 해당 문제에 명백한 출제오류가 있음이 결과로 발표된다. 하지만 내신에 관한 문제와 그에 대한 사후조치는 교육조례에 의거하여 학교장과 해당 출제교사의 판단과 절차를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오류 시정은 강제할 수 없다는 부연을 덧붙인다. 결국 ‘오류가 있지만 시정문제는 학교 측 마음대로’라는 식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결과를 듣고 난 뒤의 지연이의 표정에서 분노와 원망 대신 체념을 읽어낼 수 있다.
영화는 시험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음에도 학생이기 때문에 권력에 의해 정해진 결정에 순응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초반 국정화 교과서 반대 시위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지연이가 출제오류라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지리학과 통폐합 시위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는 이와 같은 수많은 오류들이 존재하며, 권력이 만들어 낸 오류를 바로잡는 데에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연대임을 알린다. 지연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영화를 보며 우리는 주체적인 관점으로 세상의 오류들을 발견하는 청소년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