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크다스 Jul 11. 2022

1인 가구 확진자의 삼시세끼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자가 격리 일주일  






양성이세요.
네? 양성이라고요?
오늘부터 격리하시면 돼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40만 명을 기록하며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던 2022년 3월 17일. 매일 마주치는 회사 동료들이 하나둘씩 확진돼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코로나가 내 일이 되었다. 회사 가기 싫을 때 코로나 걸려서 잠깐 쉬고 싶다고 투정 부렸던 농담이 진담이 되어 버리다니. 병원에서 착각하고 내 이름을 잘못 부른 줄 알았다.


확진 판정을 받고 처음 밀려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더 조심하고 회의가 있어도 재택했어야 했는데. 이틀 전에 음성 받았으니까, 약 먹고 목 통증이 없어졌으니까 괜찮겠지. 감기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출근했던 나야, 이제 너 때문에 출근했던 팀원들은 또 집으로 가야겠구나. 2시간 사이에 나한테 옮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두 번째로 찾아온 감정은 '고독함'이었다. 병원에서 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 문밖에 서서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자 약사님은 "아유 그래도 매너가 있으시네."라며 처방전을 받아주셨다. 세상과 접촉하면 안 되는 격리자가 되었음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1인 가구는 확진되면 누군가 대신 약을 사다 줄 때까지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을 받아 집에 가는 길에 세 번째 감정인 '불안함'이 덜컥 찾아왔다.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하기 직전에 폐렴을 심하게 앓은 후 후유증이 남아 안 그래도 기침을 달고 살았는데 코로나까지 걸리다니.


평생 기침하며 살아야 하면 어쩌지. 혼자 격리 중에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서 폐렴 걸렸을 때처럼 열이 펄펄 나고 아프면 어쩌지. 코로나 확진됐을 때 대처법이라도 미리 알아 둘걸.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집에 가는 내내 유튜브와 네이버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부정적인 감정은 자취를 감추고 묘한 해방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화상으로 참석한 회의가 끝나고 회사 일에서 로그아웃하는 순간 가벼워진 기분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주어진 일주일의 자유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일단은 잘 먹자'

아무리 증상이 가벼워도 바이러스를 이겨내려면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고 했다. 갈 곳도 할 일도 없고 남는 건 시간뿐이니 이보다 더 삼시세끼를 정성스레 차려 먹기 좋은 때는 없었다. 게다가 냉장고에는 지난 주말 마르쉐에서 장 본 재료들이 가득했다.



남은 양배추와 베이컨으로는 노릇노릇한 오코노미야키를, 베짱이 농부님의 경수채는 프릳츠 미니 바게트에 참치 샐러드와 함께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대충 간단한 재료만 넣고 만들었지만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이것저것 풍성하게 재료를 써서 어느 때보다 요리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강낭콩, 완두콩에 하몽, 바질, 토마토, 양파, 오이, 삶은 계란까지 얹은 이 콩 샐러드를 보면 이때 내게 얼마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흘러넘쳤는지를 알 수 있다.



요리 사진만 보면 '멀쩡했네?' 싶지만 격리 후 처음 3일은 아플 만큼 아팠다. 기침 가래도 심하고 바이러스 때문인지 약 기운 때문인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피곤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의 연속이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몸이 침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부엌에 서게 만든 힘은 농부님들이 정성껏 키운 식재료를 썩힐 수 없다는 이상한 책임감 + 아프니까 배달 음식보다는 내 몸에 더 좋은 걸 먹이고 싶다는 정체 모를 욕망이었다. (평소엔 비타민도 귀찮아서 잘 안 챙겨 먹으면서...)


친구는 내 요리 사진을 보고 제발 그냥 좀 쉬라고 걱정했지만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 내가 너무나 대견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엄마의 구호 식량이 도착해 엄마표 갈비탕과 반찬으로 몇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집밥을 해 먹었고, 일주일 격리 기간 동안 배달 음식은 두 번밖에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자랑스러웠다.


격리 마지막 날 소독 물티슈로 집 안 구석구석을 말끔히 닦아 내고, 새벽에 아무도 없는 지하 세탁실에 내려가 침구 향균 세탁까지 마치고 나자 내 자존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버틴 나 자신 잘했다, 우쭈쭈, 최고야!


평소의 나는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어서 남과 비교도 많이 하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말도 자주 하는 편인데, 코로나 격리 일주일만큼은 셀프 칭찬도 많이 하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게  기분이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이라곤 요리하고 먹은 일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저절로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이다. 누군가에게 칭찬받으려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나를 예뻐하려면 나에게 예쁜 짓을 해줘야 한다. 그 예쁜 짓이 나에게는 요리다. 아플 때 말고 평소에도 잘하자 좀.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