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을 줘야만 하는 식당의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남편이 내 남편이 아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딸아이의 멘토이자 선생님이었던 그는, 단순히 돈 받고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 이상이었다. 딸아이의 가치관을 구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으며, 홈스쿨링을 하던 아이에게 아주 든든한 전 과목 선생님이 되어주신 분이었다.
아이의 대학 입학이 결정된 후, 아이의 소원대로 캐나다를 방문하여 이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신용카드를 주고는, 선생님을 모시고 나가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라고 했다. 학부모와 놀고 싶어 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자리에 주책맞게 끼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스카이프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만난다니 완전히 신이 난 딸아이는 몹시 기대에 차 있었고, 나 역시 딸이 그렇게 좋아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같이 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두 사람이 생글생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그 자체로 즐거웠고, 또한, 딸이 가져올 이야기보따리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깔깔 웃으면 선생님과의 저녁식사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나눴다. 그중 한 이야기다.
아이는 선생님을 모시고 한식집을 갔다. 흔히들 코리안 바비큐라 불리는 갈비나 불고기 같은 고기류를 접대용으로 선호하지만, 선생님은 그보다 더 한국적인 한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메뉴판을 보고 선택한 것이 된장찌개 백반과 비빔밥이었다. 소박하기도 한 이 사제간이라니!
격식을 잘 따르는 성격의 그는, 한식을 보다 진짜 한식같이 먹고 싶었고, 딸아이의 지침에 따라 식사를 하기로 했다.
준비된 음식이 나왔는데, 아이는 집에서 하던 대로, 된장찌개에 선생님과 함께 숟가락을 담갔고, 선생님도 그것을 함께 따라줬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식당에 가면 알아서 앞접시를 주고 덜어서 먹는데, 왜 그랬느냐고 물었으나, 아이는 엄마랑 다니던 것 같은 편한 마음으로 별 생각이 없이 행동한 것이었다고 대답했고, 반면에 선생님은 아이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비빔밥을 덜어먹기 위해서 앞접시가 필요했기에, 아이는 손을 들어서 종업원을 불렀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도대체 왜 그러냐며 사색이 되었다.
아이가 오히려 놀라서 뭐가 문제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보니, 서양에서는 종업원을 손짓으로 부르는 것이 큰 결례라고 가르쳐주셨다. 그 식당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전형적인 한식당이었고, 거기서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는 일은 사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한국에서는 다 그렇게 하니 걱정 마시라고 알려드렸고,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추가 주문을 하거나 필요한 것을 요청하냐고 물었다. 사실 우리 모녀가 캐나다에 2년 살던 시절에는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외식은 거의 하지 못했고, 그런 문화를 배울 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냥 기다리다가, 종업원이 지나가면 쳐다봐서 눈이 마주쳐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렇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손짓해서 부르는 것은 결례이다. 아시아권 식당에서는 괜찮지만, 양식당에서는 절대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더구나 제대로 서빙하는 고급 식당에서 그랬다가는 눈 흘김을 당하기도 한다. "뭐 저런 무례한 인간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 더 덧 붙여서 알아두자면, 서양의 식당에서는 자리에 안내해 주는 사람과 주문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 처음에 식당에 들어가면 무조건 아무 자리나 골라서 앉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지정해 주는 곳에 앉아야 하는데, 좋은 식당일수록 그런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런 사람을 보통 호스트(Host)라고 부르고, 더 비싼 식당에서는 메이트르디(Maitre D')라고 한다.
그들은 식당의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적절한 자리로 배치하는 일을 한다. 메뉴판을 갖다주고, 오늘의 메뉴는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주문은 받지 않는다. 잘 모르고 바로 주문을 하려고 하면, 서버(server)를 불러주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뜬다. 고급 식당에서는 이 사람들이 식당 전체를 다 관리하기도 하는 높은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벨이 있어서 신속하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다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서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문화를 접하면 참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에 사는 북미인들이 티브이에 나와서 하는, 한국에 와서 제일 탐나는 것 중 하나가, 식당의 벨이라고 해서 웃은 기억이 있다. 그들도 때로는 종업원과 눈 마주치기가 쉽지 않아서 원하는 것을 빠르게 제공받지 못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양식당에서는 자꾸만 와서 물어보는 것이다.
"Is everything okay?" (다 괜찮은 가요?)
"Do you need anything else?" (뭐 더 필요한 것은 없나요?)
한국의 외국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이런 일을 처음 겪던 시절에, 우리는 종종 불편했다.
'아 쫌! 그만 좀 오지! 밥 좀 편하게 먹게...'
우리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와서 자꾸 말 거는 그들이 귀찮은 것이 보통이다. 그냥 필요할 때 부르면 그때 오면 되는데 자꾸 와서 참견을 한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캐나다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이 이걸 잘해야만 팁이 잘 나오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필요한 것이 있는데 제때에 종업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기다리다가 기분 상한 고객이 팁을 제대로 안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미 쪽에서의 팁은 사실 선택이라기보다는 거의 의무사항에 가깝다.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식당에서는 팁을 받을 것을 감안하고 급료를 주기 때문에 팁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종업원은 팁을 받지 않으면 수입이 너무 형편없어진다.
요새 물가가 급상승하면서, 덩달아 팁까지 올라서 여론이 좀 뒤숭숭하긴 하다. 예전에는 보통 식대의 10%~12% 정도 주면 적당하다 했고, 15% 정도 주면 잘 주는 팁이라고 생각했다면, 요새는 15%는 최소의 팁으로 여겨지고, 18%를 줘도 그저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추세이다.
일부 한식당에서는 팁이 적다며 손님을 쫓아 나와 따지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는데, 그건 좀 씁쓸한 일이다. 우리는 외식을 거의 안 하는데, 사실 캐나다에서의 외식비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음식 값도 비싼데, 거기에 세금과 팁까지 얹어지고 나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지출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팁 문화는, 처음에는 분명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을 함부로 손짓으로 부르거나 하는 식의 구시대적 접근을 피해서 그들을 종처럼 취급하지 않고 존중하며, 또 팁을 남겨서 정성껏 음식을 서빙한 것을 감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분명히 하인들이 그런 일들을 했을 테니 말이다.
팁 문화나 눈짓으로 종업원을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이 아니지만, 어디서든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든,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매너 있게 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비록 한국에서는 벨을 눌러서 사람을 부르기는 하지만, 그럴 때에도 웃으면서 예의 바르게 주문한다면, 꼭 눈을 마주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서로가 즐거울 것이다.
표지사진: Unsplash의 Louis Han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