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달다가 기진맥진 하다
유튜브 그리 손 많이 안 간다고 나를 꼬신 그 지인분은 정말 쿨하게 즉흥적으로 말씀도 잘 하시고, 진짜 편집 별로 없게 부드러운 진행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 레벨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다.
일단 되는대로 영상을 찍고 나면, 필요한 것은 없고 쓸게 없는 것은 많다. 자르고 잘라서 대충 편집이 끝나면 거기에 녹음을 얹게 되는데, 대본을 먼저 짠 것이 아니니, 하고싶은 말을 다 못했는데 화면이 넘어가면 허둥지둥 말을 바꿔야한다.
레시피 동영상은 좀 쉬울까 싶어서 덤볐으나, 아마도 그런 유튜버들은 먹으려고 요리하는 김에 영상도 찍는 것은 절대 아닐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었다. 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영상 찍는 것도 역시 마음 같지 않다.
그렇다면 대본을 미리 만들어놓고 영상을 찍어야하나?
하지만 나처럼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경우 자연스러운 상황이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영상은 쭉쭉 찍고, 편집은 일주일 넘게 걸리니 이건 분명히 내가 뭔가 잘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녹음이 끝나면 영어대화의 자막이 들어가야하는데, 그게 또 시간을 엄청 잡아 먹는다. 그런데 결과물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해서 영상을 올리려면 썸네일도 만들어야하고, 또 이것 저것 손이 간다.
전체 자막을 깔지는 않지만 자막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서 자동 자막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이상한 단어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을 손을 대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남편이 이걸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동 번역 자막이라도 돌리려면, 기본 자막이 일단 받쳐줘야하는데, 거기서부터 딴소리가 나오면 안 그래도 후진 번역이 산으로 가게 되어있다. 물론, 한글 자막을 손 봐도, 영어로 번역이 들어가면, 그의 생일은 나의 생일이 되고, 그가 열은 선물상자는 내가 열은 선물상자로 바뀌는 번역의 오류는 계속 발생하니 자동 번역에 의존하기에는 그 수준이 여전히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남편의 생일 영상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동부에 있는 누님께 이걸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다. 흠, 그렇다면, 영자막도 넣어볼까?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토요일 내내 나는 자막과 씨름을 했다. 일단 한글 자막을 먼저 손을 보았고, 그 다음에 영문 번역을 했다. 이번 영상이 자그마치 20분이나 되어서 작업 시간이 진짜 오래 걸렸다.
문제는 짧은 시간 내에 들어가야할 글자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한글은 그렇다고 쳐도 영문은 더 길었다. 뭔가 추가 설명이 필요한 일도 있었다.
그럭저럭 영문 자막을 만든 후에, 남편에게 점검을 한 번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엄청나게 허덕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말 안 하더니, 나중에는 날더러 진짜 이렇게 빨리 말을 하는 것이냐고 묻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나서, 남편이 돌려보는 영상을 옆에서 보니 내 말이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안다. 나 원래 말이 빠르다. 성질이 급해서, 정신줄 놓으면 진짜 빨라지기 때문에 늘 정신줄을 부여잡고 말의 속도를 조절하곤 하는데, 긴 영상을 최대한 짧게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유튜브에서만큼은 상당히 천천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남편이 보고 있는 영상을 잠시 멈추게 하고, 혹시 이게 실수로 1.2배속이나 1.5배속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확인을 해보았다.
결국 내가 상당히 빠르게 녹음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다. 내가 듣기에도 빨랐다. 물론 평소 내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나 내 친구들은 빠르다고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미 나에게 익숙해졌을테니까. 하지만 객관적으로 들어보니 내 말이 빠르긴 하구나. 어쩐지 한글 자막도 맞추기가 참 바쁘다 싶었다.
내가 속도에 대해서 시인을 하자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늙어서 총기가 떨어져서 이 자막을 읽느라 허덕이나 했단다. 그러고는 둘이 얼굴을 마주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이후로 계속 점검을 하는데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그래도 빠른 말에, 영자막은 자꾸만 정말 너무 길게 나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음 것으로 넘어간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고 하지만, 수시로 속도에 제압당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이후로 편집 내내 웃었다. 나의 시청자들은 내 영상에 적응이 되려나? 아니면 내가 속도를 바꿔야하나? 갈등의 시간이로구나!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영자막을 달면서 또다른 문제가 나왔다.
내가 딸아이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my daughter로 들어가는데 남편이 그 부분을 아주 싫어했다. 이걸 our daughter 라고 넣으면, 시청자들은 이 딸램이, 현재 남편과의 결실로 낳은 아이로 착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이유로 my로 쓰는데, 사실 딸아이를 우리의 딸로 진작에 합의를 봤기 때문에 남편은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가슴속이 허전한 것이었다.
일단 웬만한 my daughter 부분은 she, her 이런 식으로 많이 바꿨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그냥 뒀다. 그러나 이것 역시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뭐, 딸 이야기가 유튜브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근데, 나 언젠가는 진정한 유튜버가 되는걸까?
* 지난 글에 이미 이 링크 달아서 생략할까 하다가, 제 말 속도를 확인해보고 싶으신 분이 계실까 싶어서, 같은 영상의 링크 살짝 걸어봅니다, 생일 영상 보셨던 분들은 패스하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t19vTCuKdm0
* 결국 내 영상이 동부에 있는 남편의 누님과 형수님께 전달되었고, 두분이 함께 이 영상을 보셨다는 소식이 왔다. 재미있게 잘 봤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좀 빨라 되는 것이라고 혼자 위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