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16. 2024

남편 생일을 종일 즐기다

그저 나이를 먹는 날일까?

6월 초에는 남편 생일이 들어있다. 내 브런치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우리는 생일을 즐기는 데에 진심이다. 생일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저 태어난 날짜를 챙기는 것에 불과하고, 그날이 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외에는 사실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오히려 나이를 한 살 먹었다는 이유로 시무룩해질 수도 있는 이 날이 뭐 그리 좋다고 우리는 늘 즐기는 것일까? 뭐 그렇게 따지기 시작한다면 그 어느 날에도 의미는 없다. 의미는 결국 부여해서 생기는 것이니까.


나는 한때 내 생일에 어머니께 선물을 하기도 했고, 여동생이 자기 생일에 내게 선물을 한 적도 있다. 생일은 생각해 보면 자신이 태어난 날이니, 태어났음에 감사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생일 즐기기에 진심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하루 종일 생일 축하의 말을 하고, 가능한 한 즐거운 일들을 많이 만들고자 한다. 


이번 남편의 생일은 사실 좀 조마조마했다. 내가 심하게 몸살을 했고 그 여파가 오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딱 생일날이 되자 증세가 많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생일날 미역국도 챙길 수 있었다.


남편 생일에는 꽃다발을 꼭 챙기는데, 이번에는 아파서 넋을 놓고 있느라 미리 준비도 못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일 전날이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꽃집에 부랴부랴 문자를 넣었는데, 흔쾌히 다음날 아침까지 해서 배달해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휴!


내 마음 같아서는 남편이 직접 현관에서 배달을 받기 원했지만, 그 시각에 남편이 뒤뜰에서 일하고 있는 바람에 내가 받아서 전해주었다. 역시나 남편은 아주 기뻐했다. 이 사람은 꽃을 진짜 좋아하기 때문에 꽃다발을 빼먹으면 안 된다.



딸아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새아빠의 생일을 챙겼다.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와서 이미 포장까지 하고 준비를 해놓고 갔는데, 또 주고 싶은 것이 생겼는지 우편물로 추가로 보내왔다. 


진짜 근사한 생일상은 남편의 자식들이 챙겨준다고 했으니 그건 주말로 미뤄두고, 우리는 둘만의 생일상을 장만했다. 점심때는 미역국과 멸치볶음, 동태 전을 부쳐서 단출하게 먹었고, 저녁때는 엘에이 갈비와 잡채, 상추 겉절이로 또 배부르게 먹었다.



선물도 다양했다. 동부에 사시는 누님은 와인과 잼 등을 보내면서, 샴페인 사라고 수표를 넣어주셨고, 딸내미는 선물을 네 가지나 준비했다. 바비 티셔츠, 넥타이핀, 애플워치 밴드... 그리고, 이 불 들어오는 야외 장식품! 정말 남편이 딱 좋아할 선물들만 어찌 그리 잘 골랐는지!



나는 애플워치를 선물했다. 작년에 한국 갔다가 5만 원짜리 미밴드를 두 개 사 와서 남편과 나눠가졌다. 그런데 나는 손목에 전자기기 차는 것이 영 성가셔서 결국은 치워버리고 말았건만, 남편은 꾸준히 열심히 차고 다녔다. 사실 정밀도도 떨어지고 그다지 별다른 기능이 없는 물건인지라, 그렇게 좋아한다면 차라리 애플워치가 낫겠다 싶어서 그걸로 결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깜짝 선물로 해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직접 고르는 재미도 선물하기 위해서 같이 애플 온라인 스토어에서 결정을 했다.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 어찌나 열심히 즐기는지! 귀여울 지경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밴쿠버에 있는 큰 딸네 집에 가서 잔치상을 받았다. 남편이 해산물을 좋아하니 각종 해산물 잔치가 되었다. 



자식들이 모두 요리사 뺨치는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각자 요리를 이것저것 맡아서 크게 한 상을 차렸다. 여기에 가 있으면 왁자지껄하는 것이 잔칫집 온 기분이 물씬 풍긴다. 


재미난 것은, 남편의 큰딸과 사위가 요리를 좋아하니 그들이 선두에서 지휘를 한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인 아들들도 요리를 하나씩 맡아서 제대로 한다. 반면에 두 며느리는 그냥 앉아서 수다 떨면서 차려주는 거 먹는다. 요리에는 거의 관여를 안 하는 편이다. 한국 같으면 이런 일들은 전부 며느리 차지일 텐데,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 또 한 살을 더 먹은 남편은 자기의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라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생일을 듬뿍 즐겼고, 내 생애 최고의 생일이라는 말을 하면서 엄지를 쳐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최고라는 표현을 우리 한국인들은 좀 조심스럽게 쓰는 것 같은데, 서양 사람들은 아주 좋다는 말에, 서슴지 않고 Best ever! 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매번 최고를 경신하는 삶이라면 그 또한 최고 아닐까 싶다.



이번 생일은 동영상을 찍느라 사진은 사실 거의 못 찍었습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도 거의 스크린샷이예요. 그대신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늘 글로만 접하던 저희 부부의 닭살 행각을 직접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유튜브를 보시면서 닭살을 긁어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t19vTCuKdm0?si=dBj1-y_sW_K-nkH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