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30. 2024

자식이 다 컸다고 느낄 때

아니면 아직 품 안에 있다고 느낄 때

딸네 집에 다녀왔다. 


결혼하거나 해서 따로 가정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부모가 돈을 대주지 않고, 자기의 공간을 오롯이 가지고 사는지라 딸네 집이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예전엔 딸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니러 온다는 말이 더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깐 와서 부모를 만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되면서, 아이가 독립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 품 안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참 고맙다. 어른이 되기까지 더 많이 도와주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쉽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 감당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고마우면서도 짠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아이는 어쩌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아빠에게는 손 벌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엄마에게는 손 벌려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악착같이 살았다는 것을 잘 안다.


대학원 3년을 자전거로만 다니고,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유명 메이커 옷 같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아이는, 대학원 내내 생활비 지원을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조교나 피디 같은 일을 했고, 과외도 가르쳤으며, 웹툰사의 외주 각색도 했다. 


그런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확실하게 독립을 했다. 기숙사 형 학생 숙소에 살다가 아파트를 구해서 나갔고, 차도 구입을 했다. 


아이가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때는 입이 떡 벌어지기도 한다. 나 같은 새가슴은 꿈도 못 꿀 거금을 척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투자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이 참 크다고 느낀다.


저렴한 중고차 구입을 추천했으나, 요새 중고차 값이 하도 올라서 이미 저렴하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한 딸은 화끈하게 새 차를 샀다. 어떤 차를 사던 상당히 큰 금액인데 전혀 갖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것이다. 이 돈을 주고 이 물건을 사는 게 맞을까를 갈등하던 딸은, 차라리 품질 좋은 새 차를 구입해서, 초보운전이 보다 안전하게 운전하고, 그만큼 능률을 올리는 쪽으로 선택했다. 


요새 차들은 각종 센서가 많으니 아무래도 자잘한 접촉사고 실수를 좀 보완해 줄 수 있고, 크루즈 기능도 훨씬 좋아서, 결국 계속 외근하고 고속도로 타야 하는 직업에 아주 효율적인 차를 구매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다 큰 딸이, 그래도 엄마를 원하는 마음은 때로 아기 같다.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은 줄어들지 않는가 보다. 


코로나 때문에 대학원 자리 잡을 때에는 내가 가보지 못했고, 3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졸업식 때야 찾아갔으니 내가 좀 무정하다 싶긴 하다. 이번에 이사하고 차도 샀는데 엄마가 다녀갔으면 하는 바람이 통화에서 비쳤다.


하지만 그러니까 오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도와줄 테니 오라고 했다. 내가 유튜브 하면서, 작은 전화기 화면으로 편집하느라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면 자기가 서브 랩탑도 주고, 편집 앱도 깔아서 쓰는 법 알려주겠다고 꼬셨다.


그래서 "추석 때 잠깐 갈까?" 했더니, 어느 날짜가 좋으냐 묻더니 비행기표를 자기가 덜컥 사버렸다. 어차피 24시간 환불되니, 가격 뛰기 전에 일단 샀다고 하면서 헤헤 웃는데, 나도 웃음이 나왔다. 


공항에 도착하니 데리러 나온 딸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딸 보러 미국 가면 늘 내가 렌트하고, 그동안 무거워서 못 산 물건들 같이 사러 다녀주고, 구경하고 싶은 곳 있으면 데려가기도 했었는데, 이제 딸이 나를 데리고 다니게 된 것이다.


같이 일주일을 보내면서 지켜본 딸은, 자기가 가진 시간을 최대로 알뜰하게 쓰면서 부지런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실제로 뭘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정신적 서포트만 해주면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는 것 같았다.


이삿짐 정리해 준다고 해도 마다했고,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해준다고 해도 됐다고 하고, 그냥 잘 놀다 가라는 말만 했다.


노트북 포맷해서 화끈하게 프리미어 프로도 깔아주었다. 무료 프로그램 찾느라 소중한 시간을 쓰지 말고, 좋은 거 써서 편하게 하라고 했다. 모르는 거는 언제든 자기한테 물어보면 된다 했다. 


그리고 깜짝 선물로 미러리스 카메라도 내놓았다. 자기가 회사 일 때문에 급히 필요해서 샀는데, 사면서 이왕이면 엄마가 쓸 수 있는 것으로 골라서 샀다고 했다.


도대체 엄마 왔다고 돈을 얼마나 쓰던지! 하지만 딸은 계속 신이 나서 헤헤거렸고 나는 그런 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의 모토는, "내년이 없는 같은 삶"이기에,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는 선택지 하나가, 엄마한테 잘하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어른스럽게 구는 딸이 아기 같을 때는 딱 밤에 잘 때였다. 딸이랑 같이 자는 게 얼마만인지! 아이는 엄마 품속으로 들어와서 충전을 했다. 


자기가 무엇을 하든 언제나 품어주는 엄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딸은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품을 만끽하고자 했으리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린 일주일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이별은 언제나 참 어렵구나.


그래도 차근차근 어른이 되어주어서 고맙다.



딸네집 다녀온 이야기를 영상으로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로 글 쓰러 왔더니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제가 글과 영상의 표현방법이 정말 많이 다른가 봐요. 영상으로 가볍게 보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로 오세요. ^^

https://youtu.be/DOThE3kngGk?si=zYLihPA_ErHceVdb


 

매거진의 이전글 딸의 마지막 졸업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