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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잔치를 세 번 하고...

나이를 세 번 먹은 것은 아니지만!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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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은 신년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겹쳐서 분주하다. 결혼기념일도 이 기간이라서 이때는 보통 간단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올해 생일은 평소보다 유난스럽게 치렀다. 


보통은 연말에 딸이 와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송년의 밤도 함께 보내고, 좀 더 머물다가 엄마 생일까지 챙기고 가는데, 올해에는 딸이 크리스마스 때 오지 못했다. 대신 우리가 방문했는데, 우리가 마냥 머물 수가 없어서 내 생일이 되기 전에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딸네 집에서 떠나기 전날 밤에 같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딸네 집에 부엌이 있기는 하지만 환풍이 전혀 안 되어서 진지한 요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집에서 차리는 것은 포기했고, 선물만 집에 와서 열었다.


내 유튜브에 도움이 될만한 녹음기를 받았다. 전부터 녹음기나 마이크를 하나 장만해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이 심사숙고해서 구매한 것을 건네주다니 너무 좋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리고 뽀드 크렘(Pot de Creme) 만드는 전용 디저트 그릇도 선물해 줬다. 이걸 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캐나다에서는 팔지 않아서 애쓰고 있던 것을 알고 구입해 준 것이었다. 4개가 한 세트인데, 무려 3세트를 사줬다. 우리 집은, 자식들과 그 짝들까지 다 모이면 우리 가족이 열명이 되기에 남편은 무엇이든 10개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 그걸 잘 아는 딸은 역시 확실하게 맞춰 줬다!


내 생일을 딸이 못 해주니 딸이 내심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런데 남편의 자식들 삼 남매가 내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했단다. 처음에는 한식을 해줄까 했는데, 캐나다인들에게 한식을 해달라는 것보다는 내가 평소 해 먹기 어렵고, 그들이 잘하는 것을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멕시칸 푸드로 먹고 싶다고 했다. 내 처음 생각은 그냥 각자 한 접시씩 만들어서 우리 집에 모이는 거였는데, 그게 큰 딸네 집에 모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생일 상 받으러 가게 된 것이었다. 남편은 나 몰래 자식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눈치였다.


딸도 빠지고 싶지 않아 하더니, 디저트를 만들어서 보내겠다며 레몬바를 굽기 시작했다. 멕시칸에 어울리게 레몬 대신 라임을 이용한 것이 달랐다. 결국 그렇게 구워서 캐나다까지 들고 왔다.


안전하게 가져오기 위해서 꽁꽁 싸맸더니, 비행기 보안대에서 걸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보안요원도 그 싸맨 모양을 보더니 만사 귀찮은 표정이 되더니, 뭐냐 물어보고는 그냥 보내줬다! 하하!




남편 자식들이 차린 생일상은 정말 근사했다! 큰사위는 손 반죽을 해서 또띠아도 직접 만들었고,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세비체는 아주 맛있었다! 두 아들도 각자 집에서 돼지고기와 콩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왔다. 부엌에서 북적거리며 즐겁게 음식 하는 그들을 보면서, 가족이 된다는 것의 따뜻함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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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인이었던 자식들에게, 아빠의 여자가 어떻게 느껴졌을까? 믿을만한 사람인건지, 왜 아빠는 그렇게 갑자기 사랑에 빠진 것인지 경계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텐데, 몇 년을 거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가까워져서 이제 서로를 편히 대하고 아끼는 것에 서먹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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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문화와 다르니, 우리는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관계이지만, 그래서 서로 수직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더 스스럼없이 가까워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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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에 정성껏 한국어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남겨주고, 초를 켜고 노래를 불러주는 그들의 따뜻함에 내 가슴속도 한가득 따뜻해졌다.




그리고 막상 생일 당일은 주중이었고, 나와 남편이 둘이서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미역국을 끓이겠다며, 예전에 내가 시누님께 만들어드린 영어 레시피를 펼쳐놓고 진지하게 작업했다. 


조리할 때 늘 함께 하는 남편이지만, 한식은 돕는 입장에만 있다가 이렇게 스스로 하려니 망설임도 갈등도 보였다. "나 맞게 하고 있나?" 하는 조심스러움과, 한 단계 한 단계 정성껏 풀어나가는 성실함을 옆에서 보고 있으니, 매사에 공을 들이는 남편이 새삼 더 커 보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미역국과 대구전, 숙주나물을 요리한 남편의 생일 상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 어느 식사보다 럭셔리한 생일상이었다.


남편이 차린 상이라는 이유 만으로도 충분히 럭셔리하겠지만, 실제로 맛도 참으로 좋았다. 미역국은 오래 끓여서 깊은 맛이 났고, 숙주나물은 딱 맞게 익었고, 대구전은 겉바속촉이었다.


남편의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참 행운아야, 당신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할 수 있으니...

I am so lucky to celebrate your 60th birthday.


누가 누구더러 할 소리인 것인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이고 행운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누구랑 사느냐에 따라서 이렇게까지 삶의 질이 달라질지 나는 평생 몰랐다. 세상살이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혼자만 수 없다. 삶은 결국 세상의 도움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남편의 생일 선물은 무엇이냐고?


하와이 2주 여행이 남편의 선물이었다. 이미 거의 일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아내의 환갑 선물. 남편은 그렇게 기쁘게 차곡차곡 준비해 왔고, 생일 이틀 후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났다.


To be continued...


관련영상 : https://youtu.be/qSndCSXM7LA?si=gb7sLfJrUkD5P2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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