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25년 만에 열린 체리였는데!
우리 집에는 별거 별거 다 열린다며 신기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체리 나무가 있다는 것은 다들 몰랐다. 사실 우리도 그걸 체리나무라고 부르지만, 한 번도 체리가 제대로 달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몇 개 달려도 익기 전에 이미 청설모가 쓱싹하기에 작년에 두 개 따 먹은 것이 전부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시기에는 의욕에 차서 비료를 줘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써봤지만 아무 방법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분명히 남편은 체리를 듬뿍 수확한 기억이 있었다. 그게 25년 전이라는 함정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이 나무를 그냥 베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가을에 낙엽이 엄청나게 생기는 불편함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인데... 나는 계속, 꽃 피거든, 여름 지나거든... 이러면서 미루고자 하였고, 남편도 결국 그냥 마음을 비웠다.
사실 남편이 원하는 것은 이 나무에 끼어버린 큰 돌멩이를 꺼내고 싶은 것이었다. 아들이 어릴 때 애지중지하며 냇물가에서 들고 온 돌을 이 체리나무에 끼워놓았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 돌은 나무에 점점 덮여 사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이 나무는 올해 보은을 하기로 결심했나 보다.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나무에 가득 루비 빛깔의 체리가 자리를 잡았다.
축복처럼 예쁜 체리는 너무나 달고 맛있었다. 사 먹는 그 어떤 체리도 당할 수가 없는 맛이었다. 문제는 저 높이 달린 것들을 어떻게 수확할까 하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따는 것이겠지만, 몇 년 전 남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과부 될뻔한 이후로, 우리는 이제 높은 사다리는 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균형 감각도 크게 믿지 않는다.
그래서 체리 따는 도구를 구입해보기도 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톱으로 가지치기를 해서 따기로 했다
산지 몇 년 안 된 거 같은데 톱이 의외로 무뎌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지를 치고, 체리를 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금방 통 하나 가득 딸 수 있었다.
신이 나서 친구에게도 좀 나눠주고, 좀 더 주변에 넉넉히 나눌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무딘 톱으로 자르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새 톱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톱이 자꾸 배달 날짜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곰들이 염탐을 시작했다. 아마 단내가 심하게 풍기기 시작했나 보다.
밤이고 낮이고 올 때마다 확인하고 쫓아버렸는데, 결국은 어느 날 아침에 다 털렸다.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로 들어와서 싹 털어갔다. 곰은 그 덩치에 맞게 식욕이 왕성해서, 거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이 완전 흡수해 버린다.
무척 속이 쓰렸지만, 또 이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겠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하게 배웠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정말 많이 실감한다. 내가 열심히 가꾼다고 농작물이 꼭 더 많이 열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차라리 농사가 더 쉬워졌다.
어차피 수확물을 내다 팔아야 하는 농부가 아니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가능한 만큼 즐기자는 마음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아예 맛을 못 봤다면 정말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도 먹었고, 친구들에게도 나눌 수 있었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련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열리기를 꿈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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