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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Mar 18. 2024

엄마랑 수영 다니는 중학생

십여 년 만에 수영강습을 시작했다. 이유는 중학생에 올라간 첫째 딸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즐겁게 어린이 수영을 다녔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 더 이상 어린이 수영강습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중고생을 위한 수영강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저녁 성인수영반에서 수영 수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다양한 연령이 모이는 성인수영강습을 아이 혼자서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것. 물론 지금까지 어린이 수영강습에서는 맘도 맞고 시간도 맞는 같은 유치원을 나온 동네 친구와 함께 했는데,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다 보니 학원 시간, 학교 수업시간이 늘어나나 보디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엄마 수영이 제일 재미있어요. 수영하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평소 이렇게 얘기하는 딸을 두고 수영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딸을 따라서 수영강습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이다.

'월, 수, 금 저녁 7시부터 50분간 진행되는 수영강습에 약 15년 만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수영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없는 깊은 수영장에서도 왕복 수영을 무리 없이 몇 번에 걸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나큰 약점이 있으니 바로 자유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자유형-배영-평영을 거쳐서 접영을 조금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어느 순간 자유형 기술은 증발하고 그 자리에는 평영만이 채우고 있다.


'물에 빠져도 평영과 배영만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들은 이후로 자유형을 못하는 상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수영강습을 시작하게 되면서 첫날에 수영강사님께서 실력을 물어보실 게 뻔하고, 그때는 '평영만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리라고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아이는 어린이수영수업에서 이미 오리발을 사용하는 상급반에 있었으니 그대로 얘기하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영보다 옷을 갈아입고, 매번 샤워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맨몸으로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다른 종목(예를 들어 걷기)에 비해서 상당히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같이 수영장에 다닐 요량으로 몇 달 전부터 라인이 매력적인 수영복과 수경은 구비해 두었다. 집에서 입어본 수영복은 너무 꽉 끼고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내서 도저히 입을 수 없겠다 싶었는데, 막상 수영장에 가니 나보다 몸집이 큰 사람도 많고 각자 수영복 차림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분위기라 수영복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샤워기 밑에서 마음을 가다듬은 후 수영장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준비 체조를 하고, 익숙한 양팔 벌려 뛰기를 10회까지 마친 후 드디어 수영장 레일로 향할 차례가 왔다. 사실 1회 차, 2회 차 수업은 사정이 있어서 따로 가지 못하고 3회 차 수업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이미 수업, 번째 수업이 지난 터라 수강생들은 모두 익숙하게 본인이 속한 레일로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하지' 고민하던 찰나에 자유형도 못하는 나의 실력을 알기에, 첫 번째 레인(초급 레인)으로 향했다.

"처음 왔는데요."

"어디까지 배우셨어요?

"저는 평영만 할 수 있고, 얘는 어린이수영 상급반에 있었어요."

"네, 이 쪽으로 오세요."


지난달까지 어린이수영 상급반에 있었던 아이와 십여 년간 수영을 하지 않았던 나도 함께 초급반에 배정되었다.

"한 바퀴 걷고 오세요"

'후훗. 시작은 쉽네'

어리둥절한 마음을 갖고 수영장을 한 바퀴 걷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끝에 갈수록 수영장 물높이가 1.4M로 깊어져서 160cm가 못 미치는 키를 가진 나에게는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후에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문제는 키판을 안 잡고 자유형을 해야 하는 순서가 왔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키판을 잡고 팔 돌리기를 해서 자유형을 시도했다. '으으음, 파아 아아아' 숨쉬기를 애써서 했지만 팔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힘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니 대망의 평영차례가 왔다. '평영은 자신 있지'를 외치며 키판을 잡고 평영 발차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강사님은 나의 자세가 이상한지 다리 모양을 교정해 주셨는데, 이해도 되지 않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음은 키판 없는 평영으로 이어지는데, 키판을 잘았을 때보다 차라리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한 팔 접영과 접영까지 시키셨다. 접영을 배운 지는 30여 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할 수 있을 턱이 없으므로 익숙한 평영을 흡족한 마으므로 이어서 한다. 어린이 수영 상급반답게 아이는 힘차게 두 팔을 내저으며 초급반 첫 번째 순서로 접영을 선보인다.


'모야. 초급반 전교 1등 포스네.'


능숙하게 접영을 해내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괜히 입이 쌜쭉해지고 조금 질투도 난다.


중간에 잘하지도 못하는 자유형을 할 때는 숨도 막히고 죽을 것 같았는데, 좋아하는 평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시간 50분이 다 지나간다. 수업 시간이 짧아서 조금 아쉽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빠르게 샤워장으로 이동한다. 어느 수영장이나 샤워실이나 드라이기를 이용하려는 사람의 수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재빨리 샤워기에 자리를 잡고, 몇 주전 숏단발로 바꾼 머리를 빠르게 씻고 샤워장을 나선다.


'머리 자르길 잘했네'


아이의 수영복까지 챙겨서 탈수기에 넣고, 아무도 없는 드라이기에서 머리를 말린다. 빨리하고 엄마와 언니 없이 홀로 집을 지키는 둘째가 있는 집에 가려는 마음이 많은 나와 달리 아이는 아직 샤워장에서 무소식이다. 머리를 거의 다 말릴 즈음 그제야 아이가 밖에 나온다.

"빨리빨리 해!"

 

머리를 대충 말리고 집에 걸어오는 길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까지 아이와 이렇게 수영을 다닐 수 있을까.' 혼자라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수영을 십여 년 만에 아이 때문에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물에 둥둥 떠있었다 순간의 기분이 청량하고 시원하다.


P.S 아이와 함께 다니기로 한 월, 수, 금 수영이 아이의 새로운 영어학원 등록으로 다음 주부터 주 1회 수요일 수업밖에 못 가게 되었다. 수영 다니기 귀찮았던 마음이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바뀐다. 티격태격하며 같이 수영 다니던 이 순간이 언젠가는 몹시 그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중학생 #사춘기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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