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잠드는 아이들
피곤한 중학생의 짧은 호흡
학군지 중학교를 다니는 중학교 1학년 딸은 최근 취침시간이 늦어졌다. 원래 다니던 영어학원은 쉬고 있지만, 새로 시작한 수학학원의 수업이 밤 10시 20분에 끝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씻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라도 조금 쓰다 보면 11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초등학교보다 조금 빨라진 등교시간에 아침 7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8시간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딸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나온다.
"엄마 내가 친구들 중에서 제일 일찍 자."
열한 시 넘어서 잠드는 아이가 제일 일찍 자는 거라니. 고등수학, 중등 수학을 배우는 수학 학원을 2개 다니는 친구도 1시에 자고, 외고 준비반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는 2시에 자고, 영재고를 준비해서 이미 수학의 정석을 5번 봤다는 친구의 수학 학원의 수업 시간은 4시부터 밤 12시라고 한다. 위 3명의 친구들이 모두 30명 남짓한 같은 반 친구들이니 전체 중학생 가운데 새벽 1,2시까지 학원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느라 잠자지 못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저출산이라고 각종 출산 장려책을 내놓은 현재의 실태를 보면 중학생을 키우는 학부형의 입장에는 코웃음이 나온다. 초등학교 때까지 즐겁게 자라면 뭐 하나. 중학생이 되면 수학, 영어학원 다닌다고 새벽 1~2시까지 잠 못 드는데, 자유학기제라고 아이들의 진로 탐색 기간을 학교에서 보장해 주는 것도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반대로 학교에서라도 학업 부담을 벗어나 국, 영, 수가 아닌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수업을 들어보고 탐색하는 것도 좋겠지만, 학업 부담이 적은 시기를 노려 학원의 학습 강도를 올리는 것을 보면 비인간적이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 내 아이도 안 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 평소 동물을 좋아해, 장래희망에 수의사를 적어 넣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둘째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만약에 커서 공부를 못하면 어떤 직업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봤는데, 제빵사를 하면 되겠어요."
갑자기 이런 말을 한 아이를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서 공부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며칠 전 집에서 함께 수학 문제집을 풀 때 이것도 모르냐고 상식 적인 수준에서 답이 아닌 건 재차 문제를 읽고 풀어야 한다고 했다고 아이를 잡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제지 잘 푸는 기술을 길러주는 학원 교육은 사실 많은 부분 AI로 대체될 수 있다. 그래도 글을 읽고 이해하고 나의 언어로 정리하고 기억하는 일례의 과정이 다 소용없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고, 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각자 하고 싶은 것도 잘하고 싶은 것도 다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빠지고 자연과 숲에 가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유급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제발 졸업은 꼭 해야 한다고 학교에 가라고 했다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숲에 가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평생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사유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다.
메리 올리버가 쓴 책 <긴 호흡>의 시와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대치동 학원과 과도한 선행과 학습량이 다 무의미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이가 학습에 뒤쳐져서 학교 생활의 누군가의 들러리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
AI의 시대, 개인이 크리에이터로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서 공부 말고도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에 아이가 공부 말고도 딴짓을 할 여유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마음속에 명심하고 아이를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중학생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