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인 Apr 09. 2024

중학생도 꽃구경은 필요하다

벚꽃 구경 갈래? 영어 학원 갈래?

새 학기로 바빴던 3월이 지나고 4월이 다가왔다. 새 학년, 새 학기로 정신없던 시기에 적당히 마무리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사이 중학생인 첫째 아이는 새롭게 시작한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기존에 다니던 영어학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의욕에 앞서서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숙제가 많기로 유명한 영어학원에 가장 높은 반에 등록했다가 중도 탈락하고 만 것이다.


엄마로서 학원을 그만두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학원 데스크에 전화해서 그만둔다고 얘기하니 그 반을 담당하시는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로 이어졌다. 그분은 아이가 총명하고 잘할 수 있는데 적응 기간에 많은 숙제 양의 부담으로 그만두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래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기셨다.


2주간의 짧은 시간, 새로 옮긴 영어학원을 다니는 동안 아이는 내내 괴로워했다. 수업 시간도 가르치는 방식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싫어했고, 과제를 하는 내내 과도한 숙제량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전에 다니던 영어학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얘기했다. 돌아가면 이제는 열심히 하겠다고. 그런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 준 것은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학원이라도 마음이 닫혀있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니까.


학원 가는 첫날, 학원비 결제를 하기 위해 동행했던 학원 가는 길은 괴로움의 극치였다. 대치동으로 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같은 시간 학원으로 향하는 초, 중, 고생들이 앉을자리 없이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서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괴로운 시간을 가져야 할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난 지 이미 십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만원 버스 안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유독 힘들었다.


학원에 퇴원을 통보한 날, 아이와 함께 양재천 벚꽃 구경을 나섰다. 일주일 남짓한 벚꽃이 개화한 시기에 가장 아름다울 때를 보기 위해서 주말을 기다리지 못하고 평일이지만 꽃구경에 나선 것이다. 만약 학원에 그대로 다녔더라면 벚꽃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다행히 학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하루 여유가 생겨서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방과 후 수업을 끝낸 초등학생 둘째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꽃놀이에 합류했다.


아직은 수줍은 듯 꽃봉오리가 더 매력적인 벚꽃길을 배경으로 아이는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진 시각이라 아쉽긴 했어도 그럭저럭 짧은 시간 꽃구경을 할 수 있었다. 둘째의 수영 수업으로 인해서 꽃구경 시간은 20여 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평일에 이렇게 함께 한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집에 돌아가려고 다시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들렀더니 버스가 한참 지나서야 도착 예정이었다. 걸어가는 것과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는 상황. 세 사람의 차비도 아낄 겸 걸어가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시선에 햄버거 전문 패스트푸드점이 눈에 밟힌다.


“00아, 햄버거 먹을래? 수영 갈래?”

“햄버거도 먹고, 수영도 갈래요.”


결국 두 가지를 다 선택한 아이와 함께 햄버거,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가볍게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걸어왔다. 햄버거를 먹는 바람에 둘째 아이는 수영에 30분이나 늦었지만 그래도 평영, 배영을 여러 번 했다고 하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중학생도 꽃구경은 필요하다. 당장 고등학교 생활을 위해서 영어를 해야 하고, 수학도 진도를 빼며 수학에 올인해야 하지만 일 년에 일주일 남짓한 벚꽃 구경도 놓칠 수는 없다. 열세 살의 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벚꽃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사진을 배우시던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서보라고 하면 왜 그렇게 성을 내고 협조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지금의 중학생인 딸은 나와 다르게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하니 사실 얼마나 고마운 노릇일지 모른다. 비록 초점이 어긋났지만, 벚꽃을 배경으로 열세 살의 딸 사진을 남겼으니 올해 봄에 수확은 있는 셈이다.




주말에는 남편이 있는 충주에 본격적으로 꽃놀이를 갈 예정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딸들의 사진을 많이 남겨줘야겠다.


#중학생 #양재천 #양재천벚꽃 #양재천벚꽃축제 #중학생영어 #중학생영어학원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2시에 잠드는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