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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경 Jun 23. 2021

#2. S에게 보내는 편지

S에게.



S야. 20살의 첫 시작을 정말 정말 축하해. 원래는 오늘 개강을 해야 하는데,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개강도 미뤄지고 밖에도 마음대로 나가질 못해서 많이 답답할 것 같아. 최근에 너네 어머니께서 얘기해주시길, 네가 입학할 대학에 대해서 실망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이 많아 보인다고 하시더라고. 그런 너에게 어떤 얘기로 위로를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남을 위로해주는 데에 별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그냥 네 나이 때의 내 얘기나 조금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나는 스무 살 때 딱히 인생의 목표도 없었고, 꿈도 없었던 것 같아. 첫 학기에는 매일 대학에서 퇴학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동기들이랑 같이 과 활동에 참여하며 친하게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외로워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동아리나 대외활동도 하나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다는 것? 그냥 매일 게임이나 하고, 어쩌다 한 두 번씩 친한 동기 한두 명이랑 술만 마셨던 것 같아. 그렇게 허무하게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고서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학교에도 잘 안 나가고 사람을 피해 다니기만 했어. 누군가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을 헛 보낸 거지.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정말 시간을 잘 못 썼구나, 내 머릿속에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만 들더라고.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자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복학 후 딱 한 학기만 열심히, 진짜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한 거야. 전역하고 나서는 정말 열심히 다녔던 것 같아. 여전히 지각은 자주 하는 흔한 대학생이었지만 적어도 결석은 안 했고, 군대 가기 전에는 수업시간에 늘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기만 했었지만 복학하고 나서는 그래도 강의실의 가운데쯤에는 앉으려고 노력했어. 안 하던 필기도 하고, 시험 때가 되면 요약정리도 하고. 사실 군대 가기 전엔 시험기간에 공부도 잘 안 해서 도서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는데, 전역하고 나서는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도 했어. 그래도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고. 생각했지.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자퇴를 하고 나니까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처럼 세상 한복판에 동떨어져있는 사람 같았어. 어릴 때 7년 동안 했던 피아노랑 작곡을 다시 배우러 다녔는데, ‘내가 과연 지금부터 다시 음악을 시작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그래서 한 달 하고 그만뒀어. 그때부터, 난 대체 뭘 하면서 살아야 되나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던 것 같아. 그러다 선택한 게 결국 수능을 다시 봐서 수학교육과에 입학하는 거였고. 그때는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선생님이 되는 게 목표였지만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네.



S야. 돌이켜보면 난 어릴 때부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고 어떤 일에 자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그걸 위해 어릴 때부터 노력했다면 나의 삶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 해. 지금 내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 삶에 감사하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매일 노력하지만, 어쩌면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 더 잘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아쉽더라.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취업해서 돈 벌고 독립해야 된다는 족쇄를 스스로 채우며 네 마음속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꼭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설령 지금의 네가 생각하기에 그 일을 시도하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는 게 두렵더라도, 그래도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실패할지언정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스스로가 믿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네가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임을, 스스로가 알았으면 좋겠다.



곧 개강할 대학에서 너의 꿈을 멋지게 펼치길 바랄게.










2020. 03. 02. 

대경.








*

[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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