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손길이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래전부터 유기견 센터에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다. 마음은 있었으나 선뜻 실천하지 못했던 이유는 거리가 너무 멀거나 지도상 가까워도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에 위치해 있어서였다.
일상에 파묻혀 바쁘게 지나다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 몸 돌보는 것도 정신없지만 더 이상 미루기만 하다가는 영원히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너무 멀어서 딱 한 번 다녀오더라도 꼭 가보겠다! 는 마음으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유기견 센터들을 검색했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1시간가량 가다가 내려서 택시를 타고 다시 들어가야 하는 곳이 꽤 많았다. 저런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 아팠지만.. 멀더라도 다녀오자는 다짐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하게 되면 자주 가고 싶은 마음에 조금 더 가까운 곳은 없는지 살펴봤다. 그러다 지금 내가 있는 지역에서 대중교통으로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곳을 발견해 기쁜 마음으로 클릭했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유기견과 함께 산책을 가시면 견사 청소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곳은 산책 봉사자를 모집 중이었다. 한껏 올라갔던 입꼬리가 급격히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산책 봉사? 내가 강아지랑?
괜히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 문의할까 말까 고민만 수 십 번. 오랜 검색 끝에 찾은 갈 만한 위치에 있는 곳이라 어서 빨리 연락해 봐야지 하는 마음과 강아지를 가까이서 만져본 적도 별로 없는데 산책 봉사를 어떻게 하냐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페이지에 있는 사진만 들락날락하며 보다가 '실외 배변을 하는 아이들', '함께 하실 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문구를 보고 용기를 내어 연락했다.
나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마음을 말씀드렸는데 처음이어도 괜찮다는 답변을 받고 그렇게 7월의 어느 여름날 산책 봉사를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오전 산책에 합류하기 위해 쉼터로 향했다.
가면서 떨리고 설레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자기 전 유튜브로 찾아본 강아지와 첫 만남에 해서는 안 되는 것, 강아지가 좋아하는 행동, 강아지가 싫어하는 행동 등을 머릿속으로 복습해 봤다.(복습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는 후문)
센터가 가까워지니 어제 읽은 주의 사항이 떠올랐다. 안전을 위해 이중문으로 되어 있으니 꼭 문을 하나씩 열고 닫아주세요. 주문 외듯 중얼거리며 침착하게 문을 여닫았다.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기 전까지 돌려본 시뮬레이션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었구나를 깨달았다.
미리 도착한 봉사자분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줄 매는 법과 간식통 챙겨가는 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 주셔서 거울처럼 따라 하며 산책 준비를 마쳤다.
나의 첫 산책 짝꿍이 되어주었던 복길이. 하얀 양말을 신었다.
갑자기 드러누워서 움직이지 않던 복길이가 당황스럽고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블록 한 칸도 안 될 정도로 작았던 새끼 강아지.
이전에 몇 번 주인이 있는 강아지의 목줄을 넘겨받은 적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 상태로 문을 나섰다. 중요한 규칙 중 하나가 '절대 줄을 놓지 않을 것'이라서 손이 하얘지도록 줄을 꽉 쥐었다. 아마 복길이도 자신과 길을 나서는 사람이 긴장했다는 걸 눈치챘을 듯싶다.
떨리고 긴장된 마음 + 이론으로만 배운 반려견 산책 때문에 어정쩡한 포즈 + 하필 바지도 편한 거 입고 간다고 고무줄 바지를 입고 가 폰을 넣으면 줄줄 흘러내려서 한 손에 든 휴대폰 + 겸사겸사 사진을 찍어야 해서 한 손에는 폰 + 한 손에는 꽉 쥔 목줄 + 애매한 포즈 = 어쩔 줄 모르는 나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똥꼬 발랄 에너지 넘치는 귀여운 강아지 = 복길이
나는 목줄에 강아지가 걸리는 느낌이 나면 숨이 막히는 줄 알고 이 날은 복길이가 달리면 달리고 멈추면 멈추며 산책 코스를 따라갔다.(이러면 안 됨) 너무 작은 아기 강아지 복길이가 빠르게 앞서 가니 줄을 따라 내 몸이 낮춰져서 강아지님이 가시는 곳으로 가시지요, 하는 포즈로 뒤따라 갔다.(이러면 절대 안 됨)
줄 너머로 전해져 오는 어설픈 느낌이 있으니까 복길이도 이 날 좀 당황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이 인간 너 뭐 하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그건 맞아 괜찮네, 잘하고 있어, 이 인간은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내 마음대로 가볼까, 아휴 내가 맞춰준다, 이런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올 때는 고수 봉사자님이 곁에서 나를 코칭해 주셔서 돌아올 때는 조금 더 수월하게 굽은 허리를 펴고 같이 '산책'하는 모습으로 걸을 수 있었다. 내가 복길이를 따라 산책한 기분으로 복귀 완료. 첫 번째 산책 끝.
쉼터에 되돌아오자마자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서툰 인간이 함께 산책하는데 이 정도로 맞춰준 복길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길로도 잘 안 빠지고 어떻게 기억하는지 산책길 따라서 잘 갔다 와준 천재 강아지. 덕분에 아침 산책 잘했다(?)
다녀와서 발도 물티슈로 닦아주는데 이것도 서투른 나.. 다음 주에는 좀 더 공부하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른 강아지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위해 좀 더 머물다가 나왔다.
사진으로도 귀여움이 뿜어져 나오는 복길이는 나와는 첫 산책을 끝으로 입양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기뻤다가 개인 사정으로 파양 되어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마음이 좀 아팠다. 어서 빨리 평생을 함께할 좋은 가족이 나타나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좋은 가정으로 입양 가서 새로운 이름으로 즐겁게 견생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길이처럼 흰 양말을 신은 강아지 가을이.
복길이랑 똑같은 갈색에다가 발이 하얘서 첫날 구분이 되지 않아.. 복길이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힌 가을이. 운명이었나, 가을이는 서툰 인간인 나의 다음 산책 파트너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