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극의 주연, 집 딜쿠샤; 희망의 궁전
옛날 옛적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이 사는 마을엔 마을을 지키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죠… 흔하디흔한 레퍼토리에 주어를 바꾸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어떤 ‘집’에 대한 이야기이며 집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한국 특파원인 알버트 테일러와 그의 영국인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는 한국에서 살 집으로 인왕산 언덕 은행나무 옆에 서양식 2층 주택을 짓는다. 그 앞은 복숭아나무밭이고 그곳에선 한강을 포함한 서울이 한눈에 보인다. 창문을 바라보면 사계절마다 변하는 큰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알버트 테일러의 아들인 브루스와 한국 딜쿠샤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한 할머니, 금자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딜쿠샤에 대한 추억을 나눈다. 이 작품의 온전한 주인공은 희망의 궁전, 딜쿠샤 그 자체다. 한국 종로구 인왕산 언덕에 위치한 이 집은 모두를 이유 없이 따듯하게 맞아주는 희망의 궁전으로 1923년부터 최근까지 주거용 주택으로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방문해 둘러볼 수 있는 국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나는 딜쿠샤 근처 동네에 살았다. 걸어서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것 같은 동네였음에 존재를 전혀 몰랐다. 심지어 딜쿠샤 바로 옆 문화 체육센터를 몇 달 동안 다녔는데도 말이다. 사직터널 위 인왕산 언덕에 100년 동안 살아 숨 쉬고 있었는데도 그저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한 곳으로 생각하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늦은 밤 10시가 넘은 시각, 운동을 끝내고 나오면 나보다 몇 배는 오래 살았을 주택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무서움에 빨리 집에 가고자 했던 그런 길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우연의 일치인지, 나는 브루스가 태어났던 세브란스 병원 건물에서 한동안 일했었다. 서울역 앞에 있던 세브란스 병원이 신촌으로 이전되어 그 부지엔 상업용 임대 건물이 세워졌고, 나는 그곳에서 일했다. 1919년 2월 28일 독립 선언서 위에서 태어난 브루스, 그리고 그 독립 선언서를 해외에 알린 알버트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저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들이 너무나 특별해졌다.
공연을 보는 내내 딜쿠샤가 내 일상과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딜쿠샤가 한국의 역사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함께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오히려 이 집을 만든 테일러 부부와 그에 살았던 이들이 모두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딜쿠샤에 대한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그 사이엔 한국의 여러 아픔이 들어있지만, 나는 딜쿠샤 뜻대로 희망을 느꼈다. 딜쿠샤의 지난 1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었고, 앞으로 그를 보존해 문화재로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궁금했다. 공연을 보고 딜쿠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실제 여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시절의 딜쿠샤를 담았다.
극 중에 나온 금자 할머니와 가수 써니 등 비슷해 보이는 선생님들이 살고 계셨다. 퇴거 요청과 불법 점거 벌금이 날아오는 가운데, 금자 할머니는 여기서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흐리는 말과 웃음을 짓는다. 극 중 금자 할머니는 참 인자했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소녀로 돌아가 설레하며 이야기하신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할머니는 짧은 영상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마음의 순수함과 밝음을 가지고 계셨다.
공연을 보고 실제 삶인 다큐멘터리를 보니 내 머릿속 딜쿠샤와 그들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딜쿠샤에선 사람이 탄생했고, 떠나기까지 했다. 묵묵하게 인왕산 언덕을 지키고 있는 딜쿠샤는 모두를 품어주었다. 테일러 부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딜쿠샤를 보게 된다면, 그들의 소망대로 여기는 기쁜 마음이 한가득한 희망의 궁전이 되어온 것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지금은 문화재가 되어 더 이상 사람이 살진 않지만 이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의 궁전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나도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 눈 오는 겨울날, 그를 찾아가 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따듯함과 넉넉한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
사람에겐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아늑한 공간, 배경으로 집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주택, 아파트, 오피스텔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은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주며 그들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그렇게 집은 주인공 곁에서 그를 지원해 주는 배경 중 일부지만, 이 공연에선 누구보다 주연이고 주인공이다. 브루스가 미국에서 살았을 때도 딜쿠샤와 비슷한 집에서 살기 위해 찾아보았다는 것을 보면, 그에게 딜쿠샤는 삶의 기능적인 일부가 아닌 온전한 주연으로 생각해 온 듯싶다. 이 공연을 보면서도 큰 경계나 장치가 없는 무대를 통해 관객석까지 통틀어 극장 전체가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 함께 딜쿠샤에서 이 공간 자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 행복한 사람과 희망의 궁전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니 참으로 따듯했다.
한강과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고층 건물이었던 딜쿠샤는 이제 한강뷰도 아니고 복숭아 나무 밭 또한 없어졌다. 서울에서 제일 낡고 낮은 건물 중 하나로 그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담긴 철거 대상일 뿐이었다. 다행히 문화재로 등록되어 테일러 부부의 아늑한 공간이 전시되게 되었지만, 현실에서 대다수가 바라보는 집, 부동산의 가치로서는 그저 재개발되어야 마땅한 건물이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뜻 깊은 공간과 건물이 단지 딜쿠샤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숨쉬고 있는 여러 공간들이 각자에게 모두 주인공으로서 충만한 자격과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