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의 순간을 포착하다
그림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 책은 그마다의 매력이 있다. 원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작가의 글이 배가시켜 더욱더 큰 감동을 간접적으로 선사한다. 이 책 또한 그런 매력을 지닌 책이다.
예술가들의 결정적 순간들을 6가지 뽑았으며, 그에 해당하는 작가들을 재분류해 각자의 삶을 조명한다. 이렇게 예술가들을 나눈 색다른 분류 기준은 처음 보았다.
1. 권력과 편견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 거장들의 삶을 다룬 '고개 빳빳이 들고 맞선 순간'
2. 두려움 없이 세상을 향해 뛰어들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가들의 도전을 다룬 '마음 열어 세상과 마주한 순간'
3. 열정과 신념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출해 낸 천재들의 행보를 담은 '나만의 색깔을 발견한 순간'
4. 불행의 나락에 빠진 순간에도 오로지 사랑과 열정에만 집중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일이 없는 듯 사랑에 빠진 순간'
5. '삶이 때론 고통임을 받아들인 순간'
6. 롤러코스터 같은 운명의 고락 속에서도 온전히 삶을 끌어안고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럼에도 힘껏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림을 생생하게 감상하기 위해서, 예술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술가의 삶을 생생하게 스토리텔링 한 글을 통해 예술가를 느끼고 그의 인생과 주요 사건들을 알고 나서,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작품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글을 읽어 예술가를 알게 되고, 예술 작품을 알게 되는 이 순서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다. 예술가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알고 나면, 작가 섹션의 메인 이미지로 넣어진 작품을 다시 돌아가서 보게 된다.
고갱의 이야기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연도에 따라 바뀌면서 흘러간다. 시작은 1897년, 고갱의 딸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은 날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고갱의 고통을 시작으로, 다시 1883년으로 회귀해 그가 겪은 중요한 사건, 만난 인물, 그로 인해 탄생한 작품들이 나온다.
새로운 샛길을 찾기 위해 열대의 땅, 타히티로 떠난다. 그리고 상상했던 원시적 삶과는 동떨어진 문명화의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신과 함께 살 부인을 구해 살면서 그린 작품들은 딱히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런 사회의 외면으로 점점 고갱은 절망의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원시의 절정에서 탄생과 죽음, 인생의 여정을 모두 담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품을 만들어낸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실 내 책상을 두고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중년 남녀의 장면은 꽤 유명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서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남자는 웃으며 손을 잡아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학생일 때 이 영상을 처음 어디선가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약간은 충격적인 행위 예술을 보고 처음으로 '행위 예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예술관과 사랑관을 몇 가지 예술 작품을 통해 짧게 만나면서 사실 이해가 되기보단 충격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이 책에서 오랜만에 나이가 든 두 남녀의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녀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그녀의 통제와 억압의 집안 사정을 뒤로 하고,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대상인 자기 몸을 캔버스처럼 다루는 예술을 하게 되었다.
예술가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전사의 역할은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파장을 만들고, 역할을 하며 퍼져가는 데 염두에 두고 깨어 있는 시간으로 사는 것이 전사의 모습이다. 강력한 퍼포먼스의 그녀는 이미 전사였다. 지금도 전사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로 대표되는 예술가 고야의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다. 73세의 나이로,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다. 집 안 벽면을 검게 칠하고 4년간 벽화를 그린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많이 아는 작품이다.
불행과 공포에 사로잡힌 작품을 보면 사실 너무나 끔찍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모두 이러한 질병, 증오, 분노, 배신,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 궁정의 왕세자 가족들을 그리기도 했으며, 꽤 추상화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스페인 독립 전쟁, 학살, 시민 봉기 등이 연달아 벌어지는 시대 안에서 인간의 악의 본능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음침한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검은 그림을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예술가들의 인생을 보면, 하나도 쉽게 얻은 것도, 누린 것도 없다. 사실 여기 나온 대부분의 예술가는 생의 찬미를 누린 사람들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운 명을 받들고 살아간 듯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결정적 순간에 탄생한 그림들을 내가 쉽게 만나도 되는 건지, 내 감상이 너무나 가벼운 것은 아닌지, 짧게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을 보며, 나의 순간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진중하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