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Feb 29. 2024

2월 29일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묘수의 날



“4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인데 오늘 특별한 곳에 가고 싶다. 고 생각하며 그냥 출근하고 있다.”며 출근길 영상을 업로드 한 나의 산소호흡기 언니야의 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 오늘이 2월 29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알고 보니 특별한 날이었구나?


언니의 릴스를 시작으로, 아이들과 특별한 오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사전을 찾아봤다.

윤일(閏日, leap day)이라고도 하는 오늘은 윤년에만 존재하는 2월의 마지막 날로,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에서 4년에 하루를 더하는 날의 날짜를 가리킨다.

그레고리력의 역법상 365일을 주기로 하는 1년과 실제 지구의 공전주기에 따른 태양위치 변화 사이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4년마다 2년의 마지막에 윤일을 두고, 윤일이 있는 해를 윤년이라 한다.

실제 지구의 공전주기, 즉 태양년은 정확히 365일이 아닌 365.2422일(365일 5시간 48분 45.5초)이라 해를 거듭할수록 오차가 커지며, 4년이 지나면 하루에 해당할 정도의 오차가 발생하므로, 4년에 한 번 3/4일을 늦춘 달력인 윤년을 두어 지난 4년간의 오차를 단숨에 바로잡게 하는 것이 그 원리이다.


세상에, 4년간의 오차를 단숨에 바로 잡게 하는 하루라니, 엄청난 날이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특별한 오늘을 보내는 건데, 우리는 오늘 입학, 개학 초읽기로 병원투어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어젯밤 갑자기 아들의 온몸을 뒤집어 놓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로 아침부터 피부과 당일접수를 하며 시작한 병원투어는 딸아이의 성장검사,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시력이 떨어진 것 같아 불안했던 김에 나와 더불어 아이들까지 같이 예약한 안과검진까지 마치고 나니 하루가 가버렸다.

지난 방학의 오차를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날이었으니, 윤일 하고도 좀 맞아떨어진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윤일을 맞아 오늘이 가기 전에 오랜만에 허파언니랑 통화하려고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결국 전화는 포기하고, 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나의 허파, 나의 산소호흡기 언니야와의 인연은 무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젠 하도 오래돼서 햇수를 따지기도 우습다. 햇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인터넷 웹서핑을 즐겨하던 고등학생시절 우연히 찾은 언니의 개인 홈페이지에 댓글을 달며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언니가 1년에 한두 차례 제주로 여행을 오고 가며 만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매계절 여행자로 제주에 오는 언니를 따라 제주여행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제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

언니가 발견한 돌담에 비친 햇살을 보는 눈을 찾기까지 근 25년의 시간이 걸렸달까?

스물다섯까지만 해도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커녕, 제주를 떠나고만 싶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언니 덕분에 발견하게 된 제주생활여행자의 눈 덕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날 때마다 “우와! 한라산 색 바뀌는 것 좀 봐!!! 진짜 예쁘다. 우와, 바다 색 바뀌는 것도 너무 이뻐!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알아?”라며 제주토박이 남편을 놀라게 했고, 이런 제주생활여행자의 눈에 남편이 반했다니, 지금의 남편을 쟁취하게 된 것은 언니의 공이 컸다.  

사는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나의 산소호흡기가 되어준 언니야. (나는 언니의 허파다)


그런 언니가  제주로 1년 살이 왔을 때만 해도 심심하면 “언니 뭐 해? 옵서예 약국에서 만나!”(언니가 1년 살이 하던 집 근처 우리만의 랜드마크였던 그곳. ‘옵서예약국’)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볼 때도 있었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도시여자가 된 언니에게 잊을만하면 전화해 “언니, 뭐 해? 커피 마시러 가자! 옵서예 약국으로 나와!”하고 진담반 장난반으로 안부를 물을 때도 있었는데…

시간 참 빠르지. 세월 참 야속하게도 빨리 흐른다. 돌아서면 한 달, 한 계절이 훌쩍 지나버리니.

늘 마음은 함께하고 싶지만, 바쁘기 그지없는 일상을 살아가며 자꾸만 텀이 길어지는 언니와의 연락에 아쉬움이 자꾸 쌓인다.


그래도 언제든지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주고, 매년 생일 잊지 않고 챙겨주고, 때마다 연락 주는 언니야 덕분에 나는 여전히 숨 쉬며 잘 살고 있다. 늘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언니야!

지난 제주 1년 살이때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다시 함께하는 그날이 다시 오리라 믿고 기다리자!


그리고 오늘, 윤일의 힘을 빌어 지난 4년의 오차를 단숨에 잡아버리는 묘수를 깨달았으니, 이 글로 말미암아, 앞으로 오는 윤일에는 꼭 언니와의 만남을 주선해야겠다.


언니, 우리 다음 2월 29일에 만나. (물론 그전에 만나야 하고, 만날 거지만) 앞으로 윤일엔 우리 꼭 만나기로 하자!!!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언제가 되었든 말이야.

아~ 보고 싶다. 언니야. 우리 우선 오늘은 꿈에서 만나. 지금은 없어졌지만, 꿈속에선 여전히 존재할 우리의 옵서예약국 앞에서.

기다릴게!!!! 이따 봐^^


작가의 이전글 김씨며느리빙떡조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