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봉사활동 중 나와 닮은꼴 찾기
‘마잘라이 일람(Mazhallai Illam)’이라는 고아원은 수용하고 있는 아이들 연령대가 1~4세 정도로 매우 어렸다. 평균 30여 명 정도의 아이들을 수용한다는 말라이 일람은 오전에 들르는 우리와 같은 봉사자들 외에 미국 등지에서 와 상주하며 봉사하는 분들도 계셨다.
워낙 어린 아이들인지라 별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워 우리는 그 곳 직원분들을 도와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이미 우리와 같은 봉사자들의 손길에 익숙해 처음부터 낯을 가리지 않고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호기심은 있지만 아직 낯을 많이 가려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활발한 아이들은 대개 관심을 원했다. 여러 봉사자들이 있지만 1:1로 안고 케어해주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바닥에 앉아 두세 명의 아이들을 한 번에 안고 놀아주기도 했다. 먼 발 치의 아기들이 눈에 밟혔지만 이 친구들을 뿌리치고 가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태생부터 '아싸'기질을 다분히 타고난 나는 평소에도 같은 결을 가진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활발하게 다가와주는 친구들도 물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항상 쭈볏쭈볏 먼발치에서 우리를 쳐다만 보며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눈에 밟혔다. 그리고 나는 봉사자들이 케어해주는 활발한 아이들 너머로 종종 아싸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다리가 불편해 주로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거나 혹은 앉아서 다른 친구들이 노는 것을 구경만 하던 ‘프리잔’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프리잔에게 계속 마음이 갔다. 안아주어도 눈을 마주쳐도 쉽사리 웃어주지 않던 아이는 나의 기나긴 구애(?) 끝에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번쩍 안아 빙그르르 돌며 비행기를 태워주니 처음으로 내게 활짝 웃어주던 그 아이가 처음 내 품에 안겨 잠들었던 순간. 그 행복은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멀리서 기관 직원분이 실빗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빗어주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이에 옮은 친구였을지 모르겠지만 이에 옮아 고생했다는 전 기수와 달리 우리는 아무도 이에 옮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 간 이 약은 마지막 날 모두 기관에 기부를 했다.
헤어짐의 순간에도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인 줄 모른 채 끝끝내 해맑던 아이들과는 다른 기관에 비해 비교적 담백한 이별을 나눴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마잘라이 일람 아이들을 생각할 때면 내 품에서 곤히 잠들었던 프리잔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만 같다. 아직 그 곳에 지내고 있는 줄은 모르겠다. 다만 항상 넘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부족함 속에서도 늘 감사함과 만족감 느끼며 자라날 수 있기를. 프리잔을 비롯한 마잘라이 일람 아이들을 위해 나는 이따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