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방앗간이 몰고 온 일에 대한 심경 변화
일이 재밌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만 2년의 직장 생활을 했지만 알 수 있었다. 일은 재미없거나, 힘들거나 둘 중 하나다. 재미없고 힘들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회사 기숙사에서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로 옮겨지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마다, 새를 잡아다 날개를 꺾으면 저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모습도 그럴 거라는 생각에는 약간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 다채롭게 힘든 쳇바퀴 생활을, 적어도 30년은 더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데 지난 2년을 다 썼다.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마,”
취준생 시절, 한 선배는 이렇게 조언했다.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에 가서 퇴근 후에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 당시엔 워라밸이라는 말이 대유행이었으므로, 언뜻 맞는 말 같았다. 일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충실히 노력했다. 일의 성패와 나의 자존을 연결 짓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하루의 삼분의 일을 적당히 버티는 데 익숙해졌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태화방앗간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세상엔 심장이 뛰는 일도 있는 거였다. 일이 너무 좋다는 사람들은 그저 도시괴담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전설의 포켓몬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점심시간 쪼개서 기획 회의하고, 주말을 반납하고 모임 준비를 해도 그저 좋았다. 일상이 태화방앗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아이디어였다. 에버노트에 ‘태화방앗간 운영’이라는 노트북을 만들고 생각날 때마다 업데이트를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태화방앗간의 컨셉을 설명하고, 모아둔 아이디어를 보여주면서 조언을 구하고, 홍보를 부탁했다. 회사 업무를 이 정도로 했으면 발탁 승진의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직함을 미덕으로 하는 회사에서와는 다르게, 나의 변칙성, 즉흥성 같은 것들이 쓸모를 찾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게 즐거웠다. 아무래도 기계만 들여다보는 것보단 사람과 일하는 게 더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든 서비스에 누군가 돈을 쓴다는 건 또 얼마나 멋진지. ‘조직에 기대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로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월급에 비하면 아주 아주 아주 작았지만, 밀도가 높은 돈이었다.
일도 재밌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태화방앗간은 아직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에, 멋지게 사표를 던진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멋지게, 사표를, 던진다니, 어느 하나 회사에서 하기 쉬운 게 없구먼.) 그래도 ‘일은 힘들거나 노잼이거나 둘 뿐이야’하는 슬픈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워크와 라이프 사이에서 하는 불안한 줄타기를 그만두었고, 워크든 라이프든 풍덩풍덩 빠져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삶이 좀 더 찐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