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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과 빙카와 레이밴 클럽마스터 선글라스

하루에 8시간은 일을 하고, 8분은 글을 씁니다.


나는 취향이 뚜렷한 편이다. 

특히 심한 분야는 음식으로, 음식의 맛뿐 아니라 음식을 먹는 방식에 있어서도 나만의 기준이 있다.  


예컨대,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된장찌개도, 삼겹살도, 떡볶이도 아니고 볶음밥이었다.


그냥 볶음밥이 아니라, 메인 음식이 끝나면 졸아든 양념이나 국물에 잘게 썬 채소와 참치, 스위트콘, 김치 등 식당마다 제각기 다른 재료를 넣고 볶다가 후라이팬에 둥글 납작하게 펴서 꾹꾹 눌러 익힌 볶음밥.


해외에서도 종종 한식을 하는 식당을 마주쳤지만, 남은 소스로 볶음밥을 찰지게 볶아주는 집은 단 한 번도 없었다.(하면 대박날 듯)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갔던 식당도 학교 앞에 있던 '뚝닭'이라는 뚝배기 닭요리점이었는데, 버터향이 잔뜩나는 볶음밥을 술안주로 콘치즈를 시키면 나오는 철판 위에 올려주었다. 볶음밥 한 숟갈을 닭국물에 푹 찍어 한 입 가득 넣고 씹으면서 한국에 살아야겠다. 하고 나는 생각했더랬다.


음식을 딱히 가리진 않지만, 이런 뾰족함 덕분에 '맛있는' 음식이 '존맛탱'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았고, 

따라서 나만의 '존맛탱'을 충족하는 곳이 있다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갔다. 

그리고는 이내 사장님과 인사를 주고 받는 단골이 되곤 했다.

아직도 특정 식당이나 음식을 보면 나를 생각하는 동기들이 많은 것도 그 덕분이다.


기욤뮈소의 "아가씨와 밤"에는 빙카라는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 나오는데, 

토마의 서술에 따르면 그녀는 항상 쉐 디노의 구석 테라스 자리에 햇볕을 마주보고 앉아 여름에는 체리 코크, 겨울에는 핫초콜릿을 먹었다. 레이븐 클럽마스터 선글라스를 즐겨썼고, <<델마와 루이스>> <<피아노 레슨>>을 좋아했다.


누군가 나를 떠올린다면 나도 저렇게 구체적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예를 들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떡볶이에 돈가스를 찍어먹길 좋아했고, 주로 하늘한 셔츠를 입고 다녔고, 맑고 선선한 날을 좋아했고, 더운 날은 잘 견뎠지만 장마철은 거의 녹아내리듯 지냈고, 추운 계절에는 롱패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기 편하게 해가 밝게 드는 창문을 좋아했고, 주말에는 늘어지게 자기도 했지만 가끔 일찍 일어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으며, 포탈을 넘나들며 웹툰을 봤고, 따듯한 일상툰을 사랑했으며, 생각이 넘쳐날 참이면 갑자기 글을 썼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아, 내일 닭칼국수에 볶음밥 먹어야지.

아, 나도 햇볕이 잘 드는 게 좋아.

아, 나도 글을 써볼까?


내가 빙카를 보며 레이븐 클럽마스터 선글라스를 검색했던 것 처럼.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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