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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수영

애매한 버스 탑승 줄 사이를 은근슬쩍 비집고 인파의 중간보다 약간 에서 버스카드를 찍었다.

노란색, 분홍색 의자커버를 지나, 앞뒤 간격이 약간 좁은 회색 커버 의자 하나가 반갑게도 비었다.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반동을 써서 휘익 앞으로 돌리고 숙달된 모습으로 자리에 털썩하고 앉는다.


무심하게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뒤로 '반갑습니다.', '청소년입니다.'하는 기계음이 몇 차례 더 들리고 버스가 출발한다.


이내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여러 번.


다시금 버스의 출입문이 열릴 때

정수리 위 두 개씩 달린 공기구멍으로 나오는 에어컨 냉기를 비집고서

물기가 서려있는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흐느적이 밀려든다.


가볍고 맹랑한 에어컨 바람 사이를

밀려왔다가,

밀려왔다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리고 무거운 바깥 공기를 가만히 두었다.


생각은 파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른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린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려야 할 곳을 알리는 방송이 들리고,

잠시 서서 기다렸다 따뜻하고 뭉근한 공기 사이로 풍덩 뛰어든다.


생각은 다시 '기체의 분압은 다를텐데...' 따위로 어리석게 흐른다.

'아, 부피가 다른가보지.'

'정신과 의사면 이과 출신 아닌가?'


파도 위를 속절없이 둥둥 떠다니다가


"타직!"

하고 정육점 앞에서 모기인지 파리인지 모를 날벌레 하나가 통구이가 되는 소리에 놀라

콧구멍에 바닷물 들어간 기분으로 깨어난다.


유월의 중순을 훌쩍 넘은, 초여름 저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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