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는 프로 치실러
치과가 싫다.
하긴, 치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게 빠르다.
특유의 냄새도, 소리도, 찌릿찌릿한 통증도, 5~60만원은 우습게 깨지는 병원비도 싫다.
치과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상투적이다.
그렇다고 나는 치과가기를 무서워하는 어린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피아노 콩쿨 나가기, 영어배우기같은 걸 무서워했지.
그래서 그냥 치과를 가라면 갔다.
양치하기는 더 싫다.
누구는 치과가기 무서워 양치를 열심히 했다던데, 나에게 있어서는 눈 앞의 양치가 미래의 치과보다 싫었다.
지금 딱 자면 내일 아침까지 꿈도 안 꾸고 잘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양치하러 일어나는 것도 싫고,
수백년 역사의 재미없는 칫솔질을 3분이라는 관성적인 시간동안 하는 것도 싫고,
양치를 하고나면 세수 해야하는 것도 싫다.
마시멜로 두 개 얻어먹기는 글러도 한참 글렀던 어린이였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런데 요새는 치실을 한다.
하루에 한 번, 귀찮으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처음엔 치실을 넣는 족족 피가 나더니 이젠 피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어금니쪽 치실을 할 때 어느 손을 어디에 놔둬야할지 망설이는 일도 줄었고,
숨어있던 플라그가 나올 때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특히, 송곳니 근처가 노다지다.)
게다가 최근에 뷰티디바이스 사용에도 맛을 들이는 바람에
나의 '잘 준비'는 거의 20분이 넘어간다.
딸각, 탁, 딸각, 탁 소리와 함께 기계처럼 치실을 해나갈 때마다 나는
운동회마다 으레 하던 공굴리기 경기가 이미지로 떠오른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동그란 규칙 속에 집어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 굴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귀찮은 일도 할 수 있다.
언뜻 쇠똥구리가 연상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쇠똥구리의 삶이다.
마시멜로 두 개짜리 삶에 근접해간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마시멜로는 한 개만 먹어도 맛있다.
개인적으론 달아서 두 개 이상은 별로 안 땡기더라.
최근들어 만난 쇠똥구리같이 하루하루 굴려가는 내 인생도 아주 만족스럽지만,
예측불허, 우당탕탕, 다이내믹 롤러코스터같은 내 인생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매일 치실하는 삶은 안온하고 보장되고 책임감 있지만
가끔 치과에 가는 것도 스릴있고 도전적이고 뭐 그렇지 않겠는가.
돈은 좀 깨지겠지만.
가기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면서도 나는 생각할 것이다.
아, 원래 나는 치과에 가는 인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