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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싶은 글

오늘도 하얀 창에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는 당신과 나에게.

글을 써야한다.

글을 쓰려고 50일동안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는 모임에도 가입했다.


스무명 남짓 있는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는 날마다 새 글이 줄줄이 기차처럼 딸려 올라간다.

글을 쓰는 사람은 계속 쓴다.

일주일에 한 편을 쓰는 모임인데, 자주보는 이름들은 일주일에 서너편씩 너끈히 올라온다.


이번주엔 나도 기차에 올라타야지, 하는 생각에 한참을 쓰다 지운 글도 여럿이다.

이번 글은 꼭 올린다.

어딘가에는 나처럼 눈팅만 하는 사람도 몇 있을 것이다. 우리 50일에 한 편은 써 보아요,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무슨 글을 써야할까.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다. 나는 인간이고, 그래서 모순적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가 쓴 글 사이에는 딱 내 욕심만큼의 괴리가 있다.


재밌는 글을 쓰고싶다.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재밌게 봤다. 브런치에선 '코딩하는 공익'으로 유명한 반병현 작가의 글을 자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이게 이야깃거리가 되나?'싶은 것들을 모아서 책을 낸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낸다. 그것도 제법 두껍게. 게다가 재밌다. 그들이라면 '오늘 회식에서 참치회를 먹었는데 맛있었다.'를 425 페이지짜리 에세이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산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소소한 공감을 이끌어내는데는 생각보다 예리함이 필요하다. 흘러가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만 쓰는 글이다. 물따라 결따라 졸졸 흘러가던 내 인생도 덩달아 꽉 붙들어매고는 사유하고 쉬어가게 만든다. 자박자박 길따라 걷는 소리가 은은하고 소소한 글. 나도 그런 글을 쓰고싶다.

 

따뜻한 글을 쓰고싶다.

읽다보면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 있다. 최근에 본 것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이 그랬다. 제목처럼 50여명의 '이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포를 피하고자 약간 빗대어 설명하자면, 오늘 아침에 만원 버스를 탔다. 그 안에는 종점에서 타서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줄달린 이어폰을 끼고 두 시간씩 등하교를 하는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있고, 야간 알바를 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신 무릎이 훌떡 꺾이면서 놀라 잠에서 깨어나도 이내 꾸벅 잠을 자는 대학생도 있고, 버스가 급정거를 할 때마다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참으며 어제 회식자리에서의 말 한마디를 곱씹는 신입사원도, 45년 다닌 회사를 퇴직하고 무료하던 차에 초등학생 등하교 도우미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을 보러가는 반지퍼 등산용 티셔츠와 검정 기지바지의 부조화가 익숙한 중년과 그 외 기타 등등도 있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사실은 <피프티피플>에서는 기타 등등까지 모두 이름이 있다. 작가는 아주 세심하고 따뜻하게 모든 이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독자는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이름들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잘 됐으면 좋겠다.


인간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런 시선에서 쓴 글은 놀랄만치 사랑스럽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오는 조보아씨 같다.


그러면서도 '특유'할 것.

솔직하지 않은 글은 새벽 3시 감성글보다 오글거린다. 재밌고, 따뜻하려고만 하지 않는 글. 아주 솔직해서 재미있고, 그 안에 형용할 수 없는 '특유'한 무언가가 있는 글. 이상하게 내 냄새가 나는 글. 그런 글은 명문이 아니라도 의미있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일종의 선언문에 가깝다. 재밌고, 따뜻한 글을 쓰겠지만 나다움을 잃지 않을 것. 없는 감흥을 억지로 짜내 글을 쓰지 않을 것. 마음의 종지가 찰랑찰랑 차오르다 어느 순간 넘칠 때, 그 때 자연스러운 글을 쓸 것. 그럼에도 끊이지않고 글 쓰는 생각을 할 것.


드디어 한 편의 글을 썼다.

글을 써야해서 글에 관한 글을 썼다.

다음 글은 이번 글보다는 쉽게 써졌으면.


오늘도 흰 화면 앞에 앉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네 인생,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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