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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Song Mar 01. 2024

예수의 길_ Henry Nouwen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마저 잃을 까봐 두려워 우리가 가진 것에 더욱 집착한다. 그러나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무엇에든 집착하면 어느새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나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일을 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뢰 가운데 행하는 것인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런 작은 일들에 충실할 때 이로써 먼 길을 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말이나 생각의 배후가 두려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일이 먼저다.


제자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삶이다. 두려워하며 따르는 삶은 제자도의 형태일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이 무수히 많다는 데 있다. 공동체란 바로 그분의 부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합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워낙 풍성하고 광대해서 이를 눈에 보이게 하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상처란 정확히 무엇인가? 거부당하는 경험이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경험이다. 관계의 지향점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품으시는 더 큰 사랑이다. 

내 정체성과 자아상이 친구와 원수에게, 즉 나를 좋아하는 부류와 싫어하는 부류에게 달려 있다는 커다란 착각이며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의지하라. 그러면 감정은 결국 따라오게 되어 있다. 감정이 지식을 따라온다. 감정이 워낙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는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영적 진리다.

원수를 향한 사랑은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시작되며 그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우리가 걷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과 십자가의 고뇌를 없애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짐과 고난과 고통을 그분의 짐과 고난과 고통에 연결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우선 자신의 고난을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영적 삶은 점점 더 남에게 잘 이끌려 험지로 가는 삶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남이 데리고 가면.. 네가 정말 사랑 안에 있으면 스스로 택하지 않은 곳이라도 능히 남에게 이끌려 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에도 갈 수 있다. 


심각성은 성취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맡은 프로젝트가 있고 목표를 실행하여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한없이 심각해진다. 마치 우리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듯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하나님만이 세상을 구원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고난과 고뇌 속에도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웃음과 놀이는 바로 하나님의 치유다. 희열이란 늘 똑같이 정체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희열의 삶은 고정되고 경직된 상태에서 새로운 자리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순종이란 온몸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쁨은 결코 슬픔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 

생명의 신비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심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분은은 오셔서 우리의 고난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하신다. 그 기쁨은 이미 이 세상,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삶을 경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경축이란 이 순간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순간입니다"라고 아뢰는 것이다. 오늘을 올려 드리며 '이날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날이라'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경축은 좋은 순간만 경축한다는 뜻이 아니다. 희열의 기쁨은 삶 전체를 끌어안으며 고통스러운 순간과 이별과 심지어 죽음도 피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직역하면 '나는 너희와 함께하는 자'라는 뜻이다. 곧 '나는 너희의 여행에 함께하는 하나님, 너희의 곁에 머무는 하나님, 너희에게 충실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영의 헬라어인 프뉴마는 숨결을 뜻한다.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그래야 나는 너희에게 내 숨결을 보낼 수 있고.." 떨어져 있을 때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존재로만 아니라 부재로도, 함께함뿐 아니라 떠남으로도 더 가까워진다.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 안에 친밀함이 자란다. 고인에 대한 기억이 당신의 삶 속에 생생히 살아서 숨 쉰다. 내가 죽으면 당신이 나를 새롭게 발견할테니 말입니다. 죽어서도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 곁에 있습니다. 


인내란 현재의 자리에 온전히 머물며 순간에 충실하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이곳에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씨앗은 당신의 현재 속에서 자라나 미래를 보여 줄 것이다. 씨앗은 분명히 늠름한 나무로 자랄 것이며 그러려면 당신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조바심을 내지 말라. 잘 자라고 있는지 보려고 되돌아가 씨앗을 파내지 말라. 그러면 그 순간에 뿌려진 씨앗이 자라나 당신을 미래로 인도한다. 미래는 옥토 속의 씨앗처럼 현재 속에 숨어 있다. 인내란 직므 이 순간에 충실하여 현재의 의미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뜻이다. 


나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 생겨난다.

해방된 공간... 영혼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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