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시영 May 09. 2023

잔액부족입니다.

컵라면 하나도 사지 못한 날.

새우탕 작은 거 하나면 됐었는데...




모처럼 기분 좋은 날이었다.

바리스타 일이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투잡을 하려고 바텐더 일을 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태원에 위치한 참 힙하고 마음에 드는 바였다.

첫날이었지만 다른 직원분과 호흡도 잘 맞았고 손님들과도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특히 외국인 손님이 많은 곳이라 오랜만에 영어도 쓰면서 내 안의 숨겨진 외향성을 끌어올렸다.


원래는 11시 반까지 일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손님들도 신나고, 나도 신나고, 다른 직원분도 신나서 2시까지 일하게 되었다.

손님들은 원하는 곡을 마구 틀어대며 춤도 추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우리 또한 칵테일을 만들면서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며 한참을 웃었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던 밤이었다.


2시가 되자 나 또한 내일의 본업을 위해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손님들과 허그를 찐하게 나누며 손키스를 마구마구 날렸다.

심야버스를 타고 오는 길, 

내가 일할 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행복감에 취해있었다.

집 가서 내가 좋아하는 새우탕 라면을 먹고 자면 완벽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집 앞 편의점에서 새우탕 작은 컵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잔액 부족입니다."


아차.

나 돈이 없었지.


나는 돈이 없었다.

지금 일하는 곳의 첫 월급날은 내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바닥이 돼서야 일을 구했기에 정말 여윳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적금을 깨? 얼마 없는 귀여운 주식을 팔아?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며 새벽 2시 반에 텅 빈 길바닥에서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내가 컵라면 하나 먹자고 이런 사고를 하는 것도 웃겼다.

나 정말 컵라면 하나도 사 먹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비참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나 웃겼다. 

잠시 10분간 멍해있다가,

더 멍해있으면 멘탈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있는 일본산 컵라면을 와구와구 먹었다.

냉장고에 남겨져있던 새우초밥까지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새우탕 그 이상으로 맛있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더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로 했다.


다만, 이런 기분 평생 다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굳이 굳이 스스로의 치부를 끄집어내어 

이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


작가의 이전글 모가지 댕강-이 무서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