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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3일 : #8 상큼한 점심 식사

by 새로나무

푸른 하늘이 선사하는 햇살을 한 움큼 안고 잠시 벤치에 누웠다. 저 푸른 빛깔은 지구 어디서나 같은 색일 것이다. 하늘을 보는 방식, 햇볕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기 다를지 몰라도 푸른 하늘을 느끼는 감성과 햇볕이 만들어주는 비타민 D를 만드는 과정은 비슷할 것이다. 잠깐의 여유가 주는 아늑함속에 점점 더 자세가 늘어진다. 남 시선 상관없이 대자로 누워 이완된 몸을 천천히 느끼며 관찰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캐닝하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다뉴브강변 벤치는 더 좋았나 보다. 큰 딸은 거기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한다. 여독의 영향인지 신체적인 변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잠시 떨어져 제대로 휴식을 취했다고 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걱정이 많고 사소한 근심이 많았던 내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처럼 해외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근처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분위기가 근사하다. 직접 맥주를 만드는 곳이다. 가게 상호와 같은 이름의 IDA라거는 약간 가벼우면서도 맑고 깨끗한 맛을 선사했다. 바로 밑의 HÜBRIS BÜZA/Wheat 생맥주를 주문했다. 지금껏 먹어본 밀맥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상큼하면서도 약간 새콤하니 알코올도수를 낮춘 스파클링 와인을 연상시키는 맛이다. 입안에 한 모금 머금고 있으니, 침샘이 자극을 받는다. 음식과의 상호작용에 적합한 맥주다. 문득 궁금해졌다.


Hubris Brewery가 내건 첫 번째 슬로건은 "Minimalist Microbrewery Brand", 맥주를 만드는 방식에서 복잡성을 제거하고, 핵심적인 맛과 품질에 집중하는 한편, Microbrewery를 지향하며, 소량 생산을 통해 독창적이고 품질 높은 맥주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또한 단순한 디자인과 제조 공정의 단순화, 불필요한 화려함 없는 마케팅을 지향한다. "Craft Beer Without Craft"는 보통의 수제맥주가 지닌 창의적인 레시피, 다양한 재료, 복잡한 양조 기법을 지양하고 수제 맥주의 본질적인 맛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의미를 담고 의미를 음미하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의 세계다. 우리 삶도 단순 명쾌하고 군더더기를 제거하되, 삶의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살짝 해봤다.


때맞춰 등장한 슈니첼에 레몬을 한 움큼 뿌리자 블링블링한 빛이 난다. 이번 여행 중 대부분의 식당에서 제공하는 레몬 한 조각에는 레몬즙을 잔뜩 머금어, 침샘 분비를 한껏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아마도 신선한 지중해 날씨에서 자란 레몬을 유럽 전체로 공급하는 생산책과 공급책이 제 역할을 해서가 아닐까라고 혼자 공상했다. 슈니첼 한 조각만으로도 맛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부터 사이드 메뉴의 매력을 제대로 즐겼는데, 여기서도 으깬 감자, 양배추, 피클 등을 주문했다. 적당한 양에 다양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재료를 요리하는 솜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칠면조 요리에 등장한 감자 덤플링은 쫀득한 수제비의 식감을 선사한다. 음식 욕심이 발동한다. 생선 요리와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한다. 파이크 퍼치에 바닷가재살 그리고 감자가 어우러진 요리는 일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파이크 퍼치는 생선살이 너무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녹는 분위기다. 바닷가재살은 짠 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감자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매쉬 포테이토와 절인 오이를 한번 더 주문했는데 깨끗이 비웠다. 다들 저녁을 안 먹을 요량으로 부다페스트에서의 멋진 식사를 마무리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문화를 맛보는 일이다. 저 음식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음식을 먹고, 역사를 만들고 또 다른 문화를 만들고 모듬살이를 통해 소통했을 것이다. 소통의 창구가 되어준 음식을 먹음으로써 말을 걸진 않았지만, 그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간다. 또한 음식은 기억의 창구다. 오늘 먹은 음식들을 사진 속 기억으로 되돌아보게 되면 우리가 아까 거기서 뭘 했었는지 그 향기와 따뜻함과 아늑함과 배부름을 다시 소환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늦은 오후 시간,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곳에서

식당 구석구석 세련된 디자인과 장식품들과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부다페스트 안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빠져든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직감과 직관, 촉각을 잘 활용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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