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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1. 2024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

단 하루 만에 완성한 날것들을 위한 음반

나는 날것이라는 단어가 좋다

날것의 느낌이 좋다

날것은 꾸미지 않고 직구처럼 곧장 쏟아지고 다가온다

그의 음악은 날것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날것의 소리들이 정적을 깨운다.

<찔레꽃>에서 임동창의 피아노 연주는 밝고 환하다. 처음 듣는 장사익의 목소리는 그 피아노 속에서 너울너울춤을 추었다. 그리고 노래를 던져주고 피아노가 받고 다시 피아노가 던져주고 노래가 받는 이중 구조속에서 노래는 점점 더 깊고 짙어져 갔다. 마지막 합창과 어울리는 부분에서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빛나고 마침내 찔레꽃과 당신이 겹쳐지는 부분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대목은 영화처럼 페이드아웃되어 짙은 여운을 남겼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갓 2년이 될 무렵 사무실 업무의 절반이상을 신입직원인 나에게 몰아주기 하는 상황은 힘겨웠다. 업무매뉴얼이 잘 갖추어진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인수인계 과정을 거친 건 더욱 아니며, 그저 알음알이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민원인 전화 4-50통에 방문객만 매일 20여 명에 수발신 문서 

2천 건, 과제 1000개를 시스템도 없이 수기로 처리하던 업무량에 치여 하루하루 힘겨워할 때 그의 노래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정제되고 체계적이며, 아름다운 김용우의 음악과는 달리 날것의 세계를 열어주었고 그 날것의 세계를 나는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음악을 시작했다고 해서 더더욱 관심이 갔다.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도 태평소다. 그걸 불지 않으면 온몸에서 열이 날 정도로... 그러니까 악기가 그를 부른 것이다. 전주대사습 놀이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고, 뒤풀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한 자락 하다가 우연히 이를 듣던 임동창과 조우하고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임동창과 만든 이 앨범은 단 한번, 단 하루 만에 녹음까지 마쳤다고 한다. 정설인지 전설인지 분간은 되지 않지만 앨범 어느 곡 하나도 내겐 완성도가 높게 들린다. 

<국밥집에서>는 노래와 대화가 결합되고 합창과 어울려 거대한 곡을 만들고 있다. 노래는 우리가 익히 아는 희망가의 가사를 차용해서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 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다."는 희망가가 설명하지 않은 어르신의 상황을 설명해 주며 마침내 삶의 종착을 향해 치닫는 인간의 숙명을 노래하되, 그 힘찬 날것의 느낌이 한없이 메아리쳐진다. 여기에 임동창이 추임새를 강하게 넣는 대목도 아주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희망가를 부른다"로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그래도 희망가를 노래해야 한다고 읽었다.


어린 왕자를 떠올리는 <꽃>은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소중한 자신만의 것들이 있음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무엇을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나? 봄이 되면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목련의 서글픈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오월의 장미였을까? 그러고 보니 그 당시 나에게는 꽃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시절이었다. 물론 결혼 직후 신혼살림에 첫 딸을 본 기쁨이 컸지만, 사회생활이란 도무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이 <꽃>은 그런 나의 마음을 깊이 적셔주었다. 


<섬>은 그런 나와 같은 도시인의 고독한 마음....

"술 취해 돌아가는 내 그림자,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의 가사는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앨범의 어느 노래도 너무 소중하고 깊이깊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만 <하늘 가는 길>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왜 타이틀 곡인지 분명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처음 접한 것은 4살인가 5살 때 이 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님과 아버님 손을 잡고 안동 외갓집으로 가던 길이 생각난다. 그저 별로 눈물을 안보이시는 어머님이 그토록 서럽게 우셨던 기억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래의 처음 시작부터 장사익은 상두꾼의 상여소리를 떠올리는 그런 선율을 울부짖기도 하고 노래 부르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이미 이 대목에서 나는 깊은 전율을 느꼈다. 1983년 10월 10일 막냇동생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단, 세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죽음에 관해서는 헤어나 올길 없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대학입학 후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줄곧 나의 관심사는 삶과 죽음에 가있었으나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운명이고 숙명이다. 


"간다 내가 돌아간다 왔던 길 내가 다시 돌아를 간다"라는 대목에서 피아노와 그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졌다. 목소리와 악기 따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노래를 힘차게 토해낸다. 이 노래는 삶과 죽음의 운명을 노래하는 곡이지 오직 우울하거나 슬픔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이해했다. 어느덧 연로해지고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막 자라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해 준다고 이 노래는 속삭인다. 그의 에너지는 이 모든 상념들을 떨쳐버리고 오직 노래에 집중하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다.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라는 마지막 그의 멘트 역시 여운을 오랫동안 남겨주었다. 천진난만했던 표정의 천상병 시인과 그의 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장사익은 이 앨범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아쉽게도 임동창과는 이 앨범 이후 후속 작업은 내지 못했다. 

내면에서 뜨거웠던 에너지가 밖으로 빛을 발하는 가치를 담은 앨범이다. 


리메이크 곡들인 <님은 먼 곳에>, <열아홉 순정>, <봄비>, <빛과 그림자> 역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재탄생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 곡들은 그러나 앞선 곡들에 비하면 

보너스 트랙 같은 느낌이다. 


팍팍한 나의 삶에 위로와 힘이 되어준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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