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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27. 2023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지난 며칠간 강추위가 엄습해 오고 감기도 일주일 정도 앓다가 보니, 마음속으로는 고독감이 밀려오고 신체적으로는 겨우 내가 이것도 못 견디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성큼 연말을 향하고 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음악! 출근길 버스 안에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듣는다. 20대 초반부터 버스는 화려한 공연장이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쇼팽의 <폴로네즈>는 테이프가 늘어져서 다시 살 정도로 오래도록 버스 안에서 들었다.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물들 사이사이로 음악이 은하수의 별들처럼 촘촘히 박힌 추억들은 오래도록 나를 감싸 안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늘 그런 느낌과 함께 추위와 감기기운도 사그라든다.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 난 성악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매우 낮았다. 가요는 쉽게 목소리가 들어오고 감정이 들어오지만, 성악곡은 뭔가 커튼이 쳐져 있어서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졌었다. 앨범 재킷의 기억이 희미하지만,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노래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보니 Gerald Moore와 작업한 앨범이다. 매번 혹독한 겨울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겨울이 오면 습관처럼 이 앨범을 듣게 되었고, 그 따스한 음악에 깊이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늦가을에도 듣고 싶어지기도 했고, 겨울이 다 지나갈 무렵 갑자기 생각나 듣기도 했다. 기억에서 인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24곡 중 하나인 이 앨범의 첫 곡 <안녕 Gute Nacht>은 겨울나그네 나머지 곡들을 저 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전체 줄거리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듯한 곡이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부터 노래하는 이 곡의 느낌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줄 테니 잘 들어봐. 이 노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거야. 이 매력에 빠져들수록 나의 슬픔과 절망과 희망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비록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할 거야. 아 희망에 던질 에너지가 많이 내게 남아있지 않아.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내 노래가 당신들의 슬픔과 절망에 위로가 되고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족해.'라고 슈베르트가 말을 건다는 느낌. 그의 삶은 짠하다. 너무 일찍 돌아간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그의 삶이 짠하다.. 그의 메마른 고독과 절망 그리고 희미한 희망의 불빛들이 앨범 전체에 흩뿌려져 있다.  


11번 <봄의 꿈 Frühlingstraum>은 애잔하다. 첫 소절의 피아노 연주는 맑고 밝은 봄날의 향기를 지금 여기로 미리 소환하는 느낌이 들어 더더욱 애잔하다. 노래를 들으면 뭔가 다급한 어두운 느낌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가사들을 들여다본다. 


나는 꿈에 봤다 찬란한 봄의 꽃밭을

나는 꿈에 봤다 푸른 벌판의 새소리

닭이 우는 소리에 꿈을 깨고 나니

추운 밤하늘에는 까마귀가 울었다

유리창에 고엽을 누가 그렸을까

겨울에 꽃을 꿈꾼 나를 비웃으려나

나는 꿈에 봤다 변함없이 사랑을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와 키스를

닭이 우는 소리에 마음이 식고 나니

나는 홀로 앉아서 꿈을 좇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니 가슴은 아직 뛴다

창에 그린 고엽이 푸르를 때는 언제

연인을 가슴에 안을 때는 언제ㅡ


그래서 오늘 갑자기 이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고독과 절망의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잠시나마 희망과 꿈을 상기시키는 순간들이 그의 삶 어디에 있었는지.... 슈베르트는 언제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썼을까? 그 시기는 아마도 곡의 가사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삶의 말기에 건강이 악화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작곡했다고 한다. 스케일이 크고 힘차며 웅장한 교향곡 9번을 작곡한 뒤에 썼다고 하니, 감이 오지 않는다. 피아노소나타와 현악 4중주, 교향곡들.... 수많은 가곡..... 감정을 파고드는 선율이 녹아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저만치 서있고, 지금 겨울나그네를 들으면서 새롭게 들리는 그의 음악이 이만치 와있다. 

스물네곡에 들어있는 키워드는 눈물, 고독, 소식, 최후의 희망, 폭풍우, 황량한 겨울, 환상 등과 다양한 스토리가 등장한다. 깊은 고독과 슬픔 그리고 절망, 그래도 다시 한번 가져보는 희망은 엷게 번진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고독과 슬픔이 온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 어느 누구든 삶이 평탄할 수도 있고 굴곡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떻게 견디며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것은 음악과 함께하는 삶일 것이다. 곡 전체를 통해 슈베르트는 피아니스트의 역할을 가수와 동등하게 중요하게 만들었으며, 피아노의 리듬은 시인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노래와 피아노는 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구조다. 피아노가 앞서고 노래가 뒤따른다.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겠지만, 그리고 유난히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많겠지만, 슈베르트가 밑자락을 깔아준 <겨울나그네>로 인해 덜 춥고 좀 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건 견디는 건데 어떻게 견딜 거냐 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견딜 거니까. 그리고 주변에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음악을 들으면서 덜 고독하고 덜 절망적으로 그리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서 견디시라고. 견디다가 피아노 소리에, 가곡을 부르는 목소리에 웃음을 갖게 된다면 그건 각자의 복을 캐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건, 이 훌륭한 음악이 지금 이 순간 어떤 경로로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는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견디는 자의 몫이기도 하고, 즐기는 자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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