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uckland 대학 Peter Lee와 뜬금없는 전화 대면
2007년 초가을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9시경 출근했다. 더위가 살짝 지난 후라 선선한 날씨였다. 사무실 문을 여는데 전화를 받던 직원께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전화를 공손히 건네준다. 아무 생각 없이 전화기를 받아 든 나는 그로부터 얼마간 진땀을 흘려야 했다. 뉴질랜드의 Auckland 대학은 바이오분야에서 신약기술의 개발과 기술이전을 통해 년간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Uniservices라는 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 Uniservices의 CEO인 Peter Lee가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이런 얘기는 하기 싫지만, 영어 특히 회화는 늘 실수투성이에다가 살 떨리는 긴장감, 그리고 아무 생각나지 않는 멍함, 한참 동안 단어를 뒤적거리는 안갯속을 헤매어 왔던 터라 전화를 들자마자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느닷없는 영어에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걸어오는 말에 연신 "I beg yoyr pardon"이라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두 번 세 번 말하게 하였다. 전화기 상대방은 정중하고 처음보다 한결 느린 템포로 천천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했다.
겨우 확인한 메시지를 종합하면, 오클랜드 대학총장이 한국을 방문하는 기간 동안 우리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음악회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는데, Uniservices 대표가 같이 동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이왕 방문하는 김에 우리 학교의 기술사업화 현황을 알고 싶고, 그래서 우리 대학의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를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불편하지 않다면 귀 대학의 지식재산과 기술사업화에 관한 내용에 대해 직접 브리핑을 듣고 싶다고 했다.
@2. 설상가상의 상황에서 만남을 준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함과 동시에 거절할 말을 영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나는 "No Problem과 OK"를 번갈아 얘기하며 계속 뜸을 들였으나, 바이오분야에 대한 관심과 오클랜드 대학 기술사업화 성과의 노하우를 직접 배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제안을 수락했다. 수화기를 놓고 보니 9시 15분이 되어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A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왜 사전 설명도 없이 대뜸 내게 수화기를 건네었나고 했고, A 역시 나와 같은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영어를 잘 못하기에 무슨 내용인지 몰라 들고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선 내가 마치 구원자처럼 보여 얼른 넘겼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면서 아주 미안해한다. 어이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점점 막막해진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5년간 20억의 사업비를 수주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현황과 내용들을 영어로 브리핑해야 한다고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제 막 기술사업화와 관련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으니,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알릴 것인지 불안했다. 앞으로 2주 남은 상황. 아무튼 이 사실을 단장님과 부장님에게 보고 드렸다. 자료는 우리가 만들더라도 발표를 해주시길 내심 고대하면서 보고를 드렸는데, 그다음에 벌어진 상황은 나를 미궁 속에 빠뜨렸다.
영어에 능통한 단장님은 지방출장이 있으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모시던 부장님은 그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갑자기 다른 일을 만들고 나보고 대처를 하라고 했다. 일개 과장이 한 대학 총장을 상대해야 한다니, 의전상으로도 맞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너무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영어를 안 그래도 잘 못하는 내가 1시간 동안 오클랜드 대학 일행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기술사업화와 관련 해외 대학 채널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스무 페이지의 발표자료를 완성했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미팅 날짜를 기다렸다.
@3. 의미 있는 만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다
마침내 오클랜드 대학 총장과 Uniservices 대표 Peter Lee와 대면하게 되었다. 발표자료는 될 수 있으면 수치 위주로 작성했다. 혹시 막힐까 봐 밑에 살짝 서브노트도 달아두었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어를 잘 못하니 조금 천천히 얘기해 달라고 두세 번 부탁드려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우리 대학 발표를 마치고 오클랜드 대학의 발표를 듣고 깜짝 놀랐다. 매년 신약개발 후보물질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에 기술이전하는데 그 금액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2006년 우리 대학의 기술이전 규모는 약 5억 원이었는데 오클랜드 대학은 신약 후보물질 한 개당 100억이 넘는 규모로 해서 매년 3-4개를 개발하여 기술이전한다고 했다. 2006년에만 다 합쳐 6백억 원을 넘어섰다고 했다.
대학 간의 수준 차이를 비교하는 열등감과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아가버리고 부러운 마음과 함께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뭔가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내가 앞으로 기술사업화 분야의 일을 하면서 가야 할 길을 제시받는 느낌도 들었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대학이 구비하고 있는 좋은 환경과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업화를 위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투자와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Uniservices는 교수들이 연구하는 실험실과 평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지식재산과 기술이전을 위한 다양한 고도의 전문적인 서비스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4. 지금의 Uniservi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