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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0. 2024

5년 만의 여행 - 마쓰야마 #3



오전 6시 45분, 전화벨이 울린다. 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암튼 마지막날 아침을 잠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잠을 깨서 빛의 속도로 샤워를 하고 함께 아침 산책을 나선다. 나도 걸음이 꽤 빠른 편이지만, 우리 두 멤버에게는 한참 뒤처진다. 여기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은 건 날씨와 공기다. 먼지 한 점 없고, 맑은 날씨를 3일 내내 느낀다. 이 맑고 청량한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혼자 고독한 시간을 즐길 때 써먹을 재료로 킵해둔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다니는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을 보노라니 80년대 박제되었던 세월이 지금 나에게 다가온다. 무겁고 검은 교복을 입고 교과서 잔뜩 넣어둔 책가방을 팔에 끼고 가던 등굣길이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다. 아직도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일본 학생들을 보는 시선이 묘하다.


공원의 공기는 더 싸늘하고 상쾌하다. 공원 주변으로 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어제 먹은 맥주가 휘발되어 날아가버려 한결 몸이 상쾌하다. 아침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채소와 국물, 약간의 계란 정도)하고 마쓰야마성 탐방 일정을 포기하고 온천탕으로 향한다. 주머니에 영수증이 있어서 내가 계산했는가 하고 의아해했는데 후배님께서 계산했고 내가 영수증을 보자고 했단다. 약간 머쓱하다. 한 잔이라도 내가 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깔려 얼른 온천물로 씻어낸다. 오래 탕 안에 있지 않아도 몸의 피로는 점점 옅어진다. 근력운동을 하면서 몸의 회복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숙취도 별로 없고, 피로도 빨리 풀린다.


다시 산책을 나선다. 앞서 걸었던 길이 익숙해서 내가 안내하게 되었다. 후배님이 얘기한 말이 깊이 아로새겨진다. ”생각보다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중간에 아프거나 다른 사건이 있거나 아니면 개인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면 정년을 채우고 은퇴한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 예전에는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사람들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물고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편견이 가득했는데 오늘 이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수긍이 된다. 건강을 유지하며, 흠없이 정년까지 일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최근의 두세 가지 어려운 과정을 겪었던 터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1시에 체크아웃을 하는데, 자동체크아웃 기계에서 처리했다. 기계로 체크아웃하는 건 처음이다. 사람이 많을 때, 일 처리가 느린 사람이 체크 아웃할 때 답답함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되게 편리하게 활용될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있을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당면한 현실이다.

엊그제 마쓰야마행 비행기 안에서 우리 멤버 옆자리에 앉은 분이 마쓰야마에서 가락국수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그 집으로 향한다. 앞서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가고 우리가 늦게 갔는데 사람들이 줄 서있다. 헐. 일본에서 줄 서있는 음식점에 입장하는 건 처음이다. 그런데 앞서 갔던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연락해 보니 이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메뉴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냄비가락국수와 유부초밥! 가벼운 이 합쳐서 1만 원 정도다. 유부초밥의 밥알들이 입안에서 한 알 한 알 존재감을 드러내고, 냄비가락국수의 국물을 한 모금 먹어본 순간, 왜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알 것 같다. 최근 밥과 면을 그동안 먹었던 양의 1/10으로 줄이고 있던 터라, 유부초밥을 드리블하면서 조금씩 뜯어먹는다. 가락국수 면발이 너무 쫄깃했으나 반 가닥만 먹고 오직 국물에 집중한다. 시치미를 곁들여 밥알을 조금 먹고 국물을 뜬다. 이건 더 먹어야겠다 싶어 국물을 요청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한 그릇 더 주신다. 그 국물에 유부초밥의 밥알을 말아 한 술 뜨니 세상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적당히 먹어두는 이유는 그 사이 공복감을 즐기기 위한 전략이다. 그래야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내가 섭취할 수 있는 칼로리양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12억 엔이 걸린 로또를 공동경비로 사자고 졸랐다. 혹시 당첨되면 108억이 생기는데 그 정도 돈이면 매 달, 해외여행을 비즈니스로 올 수 있지 않겠냐고 내가 설레발을 쳤다. 공항으로 가기 전 잠깐의 자유시간 동안 생맥주를 한 잔 먹으로 가게를 찾는다. 이자카야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페들이 있는 대로변으로 향했는데 가라아게를 파는 가게에 생맥주가 있다. 기린이찌방을 한 잔 받아 든다. 산토리나 아사히보다 부드럽고 가볍다. 비행기 탈 걸 생각하면 대미지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내가 혼자 마시는 게 외로울까 봐 같이 온 후배님도 즐겁게 한 잔 마신다. 굴튀김과 새우튀김을 시켰다. 물론 튀김 요리는 잘 먹지 않지만, 일본 튀김은 맛있고 또 튀김 하나면 어떠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 것을 몸생각한다고 이거 제치고 저거 제치는 것도 스트레스일 수 있다. 먹을 땐 맛있게. 굴튀김이 예술이다. 안의 뜨거운 육즙이 입안을 적시고 바다내음 살아있는 굴의 부드러운 살을 튀김옷의 감칠맛이 감싼다. 딱 한 점 먹었는데 이 가게의 모든 음식을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이 밀려온다. 대만족!! 딱 두 잔만 먹고 일어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한 잔 더 주문했는데 그 사이 멤버 두 명이 합석했다. 다른 손님들도 있었는데 시간이 걸린다. 얼른 계산부터 하고 나니 한 잔을 주길래 선 채로 다 마셨다. 양이 작아서 오히려 고마웠다. 시간에 쫓기며 먹다 보니 맛을 음미하기에는 부족하다.


공항 가는 무료 셔틀버스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9천 원 정도 하는 공항버스를 탔다. 차창으로 햇살이 밀려와 나른하다. 만보기가 포함된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멤버께서 추천해 줘서 그거 깔고 활용법 배우는 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후배님이 선물한 마유크림을 들고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해서 다른 멤버님 부치는 짐에 같이 넣었다. 짐 부치는 것을 같이 기다리다가 창구 앞에서 제주항공 앱을 보니 내 아이패드가 분실물 목록에 떠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창구에서 분실물 센터 이용법을 물어보려니 바로 내 아이패드를 가져다주었다.


한국에 가서 분실물 센터로 향했으면 며칠 기다리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왔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한꺼번에 해소되었다. 다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 출국 수속을 하는데 시간이 걸려도 너무 걸린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승객들의 대부분의 짐을 파헤치고 있었다. 위험물 투과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액체는 무조건 다 걸러내는 융통성 없음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그대로 두고 보는 나의 태도를 보며 내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참 후 일행들과 조우했다.

다들 빛난다.

함께 평생 같이 여행을 다닐 멤버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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