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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n 20. 2023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에 대해

#1. 마쯔오 선생과의 우연한 만남


갑자기 국제파트에서 일본에서 손님이 오신다고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마쯔오 교수님의 제자가 한국 사람이라 통역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으로 출장 목적은 주요 대학의 산학협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인데, 어느 대학도 섭외하지 않고 무작정 한국으로 향했고 첫 목적지가 우리 대학교라고 하셔서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일단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내용과 자료를 설명드리고 주꾸미 불고기를 잘하는 곳으로 모셨다. 다행히 막걸리를 좋아하시기에 불콰해질 정도로 마시면서 서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주요 대학 인맥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네 군데 대학의 실무책임자와 통화하고 미팅일정을 잡아드렸다. 마쯔오 교수는 일본인 특유의 예의 바른 모습을 넘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다. 그렇게 첫 만남이 있고 일본으로 돌아간 교수님이 우리를 초청하셔서 그해 겨울 일본 오이타 대학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2. 마쯔오 선생과의 두 번째 만남


마쯔오 교수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너무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꼭 언어를 100% 이해하고 100% 구사해야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 한국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이어준 건 제자였고 제자의 의사소통 중간중간에 나는 뜨문뜨문 일본어 한 문장씩을 던지기만 했다. 일본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던 와중에 일본이 졌을 때 재떨이를 던져 텔레비전을 날려먹었을 만큼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한국어는 전혀 모르는 분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고자 했다. 밝고 부드러운 인상과 처음 방문한 대학에 대한 사전 조율 없이 무작정 출장 오셨던 순수함 속에서 뭔가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에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3. 소통의 조건


공식적인 행사와 만찬을 마무리하고 마쯔오 교수와 제자 그리고 나 세 사람만 남았다. 오이타 시내 선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처음에는 제자가 중간에서 통역절차를 거쳤다. 밤이 깊어가고 취기가 오르며, 각자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터놓았다. 마쯔오 교수와 나의 아버지 모두 광부로서의 삶을 살았고 그 부친의 희생 위에 이렇게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눈물지으면서 감정의 간극이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마쯔오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시면, 내가 통역을 멈추게 하고 이런 이런 뜻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교수님의 제자가 무릎을 치면서 맞는 말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제자가 통역하려는 순간, 마쯔오 교수님이 이런 이런 말이 아니냐고 하면 제자가 다시 무릎을 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 그때 우리는 서로의 눈빛과 낯빛과 억양과 소리의 강도를 같이 느꼈다. 말을 던지는 순간, 말이 닿기 전에 다른 것들이 순차적으로 가닿고 말이 제일 나중이었음을 깊이 알게 되었다.


#4. 언어는 말하는 것인가 느끼는 것인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생각하는 것이 다르면 그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 좀 더 확대시키면 세상 어느 누구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사소통이란 말도 중요하지만 말속에 포함된 감정과 억양과 소리의 높고 낮음, 그 말을 하는 특수한 어떤 환경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녹아 소통이 되는 것이지 어느 한 가지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계의 언어일 것이기 때문이다.


밤늦은 시간 지금 나는 라스베이거스 바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있다. 바텐더와 다른 손님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들의 말을 100% 이해해야 그 상황이 어떤 건지 이해되는 건 아니다. 어떤 느낌으로 서로 주고받는지를 내가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의사소통을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다. 아니 서로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상황을 내가 그냥 해석하면 그만이다. 다정한 웃음과 유머, 그리고 가벼운 한 잔이 오가는 그런 상황을....;


#5.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언어란 인간이 가진 가장 멋진 발명품이기도 하지만 가장 불완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가지고 있는 느낌과 생각 등 모든 요소들을 끝없이 종합해서 고려하지 않으면 완벽한 소통이란 있을 수 없다. 100%의 완벽한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과 느낌과 환경에 따라 그 정도껏 의사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산다. 그에 따르는 시행착오야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종족이 되기 전 언어의 발명과 협업에 의해 다른 종족들은 모두 멸망했다고 해서 그들이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했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대체로 삶에서 우리가 건지고 있는 것들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우세한 쪽에 수렴되는 것이 아닐까? 건방과 겸손의 경계는 거기서 명확해진다. 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모른다고 자신 없어할 일이 아니라는 점.


#6. 경계의 무경계성


지금 여기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생각한 이 생각들은 앞으로 내 삶에 있어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완벽한 소통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소통, 어느 정도에 근접해 가는 소통,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그 뚜렷한 경계와 희미한 경계  혹은 경계가 자욱한 안개처럼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속에서 소통을 한다는 것. 그 지향점은 나와 그에게로 향할 것이다. 무엇을 느끼고 담을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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