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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0. 2024

적당한 결핍 속에 살기로 결심


Autophagy라는 개념을 알게 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음식을 몸에 공급해주지 않으면, 몸안에서는 불필요한 세포 내 단백질 및 손상된 세포 내 소기관을 분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세포의 생존과 항상성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전날 음식을 먹고 18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비트, 당근, 브로콜리, 사과, 레몬, 토마토에 최근 하나 추가한 양배추를 갈아 만든 주스 한 잔을 마신 게 전부다. 공복감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내내 이어진다.


본격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한 지는 석 달 정도 되었다. 처음에는 허기가 저서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회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했다. 그러다가 음식을 먹을 때 채소와 단백질 등을 먹고 나중에 탄수화물을 조금 섭취하는 식사법으로 바뀌면서 공복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허기지는 현상이 사라졌다. 공복감을 느끼되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허겁지겁 먹지 않고 천천히 모양과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다. 먹을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이게 내 몸 안의 장내 미생물의 먹잇감이 될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신경을 쓰고 먹으면 다음날까지 속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석 달 동안 일주일에 이틀 정도 회수로,  16 시간에서 20 시간 때로는 24 시간 동안 간헐적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자그마한 행복나무가 스멀스멀 자라나기 시작했다. 삶에 있어서 약간의 결핍이 주는 행복감을 발견한 것이다. 공복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기운이 빠졌던 이유는 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했기 때문이다. 간헐적 단식을 안 하고 끼니와 끼니를 이어서 먹을 때도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금방 배가 고파졌다. 탄수화물이 소진되면 허기를 느끼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면서 공복감은 점점 행복감으로 변한다. 탄수화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공복감을 느끼는 동안 내 몸안에서는 Autophagy와 함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방이 연소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내가 알고 깨닫게 되었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동안에 오는 그 약간의 결핍,  약간의 결핍이 주는 행복감은 먹는 일에 그치지 않고 조금씩 확장해 보기로 했다. 되었다.  내가 앞으로 사는 동안 격을 일들은 대부분 결핍과 충족 사이에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워크숍에서 2023년에 버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욕심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내 앞에 나와 마주하고 있는 욕심의 크기를 낮추고 좁혀서 줄이는 만큼 나는 약간의 결핍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적당히 결핍된 순간이 오히려 완전히 만족한 상태 보다 나한테 주는 메시지가 더 분명함을 간헐적 단식을 통해 깨달은 바, 다른 일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견딜만한 결핍의 시간들을 공복감과 마찬가지로 즐긴다면 행복나무들은 여기저기서 자라날 것이다. 머릿속은 맑아지고, 충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약간의 긴장과 적당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약간의 결핍과 약간의 긴장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고,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고, 오히려 내가 부족한 게 뭐가 있는지를 찾아보게 된다. 많은 결핍이라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약간의 결핍은 견딜만하다. 식사에서 출발한 약간의 결핍은 나의 삶 전체로 확장된다. 당장 뭘 해야 되고, 당장 뭘 이루어야 되는 강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 삶에 다양한 요소들 중, 나에 관해서 적당한 결핍과 적당한 만족 속에서 안심시킬 수 있다. 나의 주위에 있는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그들에게 거는 기대치를 대폭 할인함으로써 약간의 결핍상태를 만든다. 그 결핍은 내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아니 기대치를 낮춘다는 말은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기대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나와 독립된 존재들이고 각자의 몫이다. 나는 단지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만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가 뭔가를 공유해 줄 수 있는 게 혹시라도 있을 지만 생각하면 된다. 적당한 결핍 상태가 만들어주는 행복나무들이 한 그루씩 자라서 숲을 이루고 내가 그 숲 속에서 평안과 안식과 위로를 받는 그림을 계속 그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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