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궁에서 하궁으로 내려가는 정원은 넓게 펼쳐진 평화의 광장이다. 저 멀리 비엔나 시내가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과 좌우로 나무들이 감싸고 있는 곳. 오이겐 왕자가 공을 들여 조성했다는 정원은 스케일 넘치고, 그러면서도 아담한 정원의 느낌을 준다. 중간에 잠시 벤치에 앉아 또 한 번 멍 때린다. 세련된 현대적 디자인과 오래된 옛 것 사이 경계에 머물고 있는 벤치의 디자인도 좋다. 잠깐 앉아 쉬는 동안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하궁 끝나는 곳, 바로 옆에 우연히 빈 음악 예술 대학을 보게 되었다. 이 입구는 인류의 축적된 예술과 문화를 탐방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음악 소리가 아주 은은하게 들리는데, 아마도 수업을 하고 있나 보다. 그 소리와 하늘빛이 잘 어울린다. 팻말이 붙어있다. 이곳은 벨베데레 궁전 입구가 아니니까 들어오니 말라고.... 얼른 발걸음을 돌리는 길에 예쁜 꽃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큰길로 나서자마자, 브루어리와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는 가게의 광고 문구가 딱 눈에 들어왔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 당장 배가 고프지는 않았으나, 맥주의 빛깔들을 보고 있노라니 다섯 가지 종류의 맥주를 다 맛보고 싶어졌다. 오늘이나 내일 꼭 들르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하고 지나친다.
Stepan 슈테판 성당을 향해 가는 길에 Ottaringer 맥주 간판이 붙은 파스타 가게를 지나쳤다. 2019년 12월 빈 공항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맥주. 또 한 번 유혹을 참고 지나친다. 비엔나는 부다페스트나 프라하처럼 강을 사이에 두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지는 않는다. 옛 것을 온전히 보존하고 그 바탕 위에 조금씩 새로운 옷을 입히는 비엔나 시가의 풍경 속에서 다른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서촌의 한옥마을만큼은, 전주의 한옥마을만큼은 그대로 보전했으면 좋겠다.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붐비는 시가지에 오자, 막내딸이 드디어 감동의 멘트를 날린다. 어제까지는 너무 실망했었는데, 첫 번째 유럽여행의 첫 단추가 제대로 맞아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유럽의 첫인상을 비엔나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1800 년대 후반부터 1900 년대 초반까지 문화 예술 철학 정치 경제 공학 할 것 없이 모든 것의 중심지가 비엔나였다. 이전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말러, 브람스, 알반 베르크....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과학자 아인슈타인,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등. 수많은 거장들이 자기들의 사상과 작품을 꽃피웠던 것이 바로 이 비엔나.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5년 전 갔었던 터키음식 파는 가게를 검색하지 않고 찾을 수 있을까? 기억은 날아가 버렸다. 바로 검색한다.
가는 길에 비엔나 페스트 조일레(Vienna Pestsaeule)를 만났다. 1679년, 빈은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은 대재앙을 겪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황제 레오폴트 1세(Leopold I)는 재앙에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신의 도움을 간청하며 기념물을 세우겠다고 맹세했다. 나무로 만든 임시 기념물이 세워지고, 이후 석조 기념물로 교체되었으며, 완성까지 20년이 걸렸다. (1693년 완공). 이 과정에서 다수의 조각가와 예술가가 참여하였다고 한다.
기념물의 가장 윗부분에는 삼위일체((Triune God : 성부, 성자, 성령)를 상징하는 구름과 빛나는 십자가가, 그리고 흑사병의 퇴치를 상징하는 천사들과 성인들의 조각이 다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성 로커(St. Roch)와 성 세바스찬(St. Sebastian)은 페스트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하단부에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징하는 요소와 함께, 황제 레오폴트 1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조각이 포함되었다.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페스트 조일레는 전염병과 인간의 대응이라는 주제를 되새기게 하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묘하다!! 2019년 12월 비엔나 방문 직후 12월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이 기념물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코로나 직후 전 세계를 휩쓸었던 공포, 카뮈의 <페스트> 작품이 묘사한 생생한 현실, 마스크와 격리상황 등이 생각났다.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페스트 앞에서 무력했으나, 그 위기를 넘기고 그 상황을 잊지 않고 넘어서기 위한 기념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노력의 숭고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드디어 식당을 찾았다. 오! 예전 모습 그대로! Zipfer Urtyp vom Fass를 한 잔 주문했다. Fass Bier가 Draft Beer를 뜻한다. 맥주에 흥미를 갖기 전에도 유럽 맥주는 맛있었다. 알고 모르고 차이가 크다. 1858년 상부 오스트리아(Upper Austria) 지방의 지펭(Zipf) 마을에서 프란츠 카를 브라우어(Franz Karl Brauer)가 창립하여 지역 기반으로 맥주 양조를 시작했다. 고품질 원료와 맑은 지하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Zipfer Urtyp는 가장 대표적인 제품으로, 클래식한 라거 스타일이다. 진한 황금빛 색상과 약간의 쌉쌀한 맛이 조화를 이루며, 부드러운 마무리가 특징이다. 이외에 Märzen, Pils, Hops 버전이 있다고 한다. “Zipfer. Besonders klar. Besonders frisch.” (특히 맑고, 특히 신선하다.) 맑고 신선하며 깔끔한 맛에 목 넘김에 브레이크를 건다. 입안에서 머금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고 넘기는 그 순간의 짜릿함과 시원함과 맑음을 오래도록 음미한다. 지금 이 순간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나와 마주한 이 맥주만을 음미하고 생각한다.
목을 축이고 나자 5년 전 먹었던 렌틸콩 수프가 등장한다. 렌틸콩 수프 안의 깊이는 마치 수심 100m 정도 되는 거 같았다. 별거 아닌 수프 라고 하지만 그 수프 안에 담겨있는 고소한 렌트 콩의 맛과 고유한 터키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맥주 안주로 충분했다. 고소하면서도 약간은 달콤하고 입안 가득 콩의 향기를 머금게 해주는 멋진 음식이다.
도톰하면서도 맛깔나게 구워진 피타빵(Pita Bread)은 부드럽고 쫄깃하며 찰진 식감을 선사했다.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진리를 확인한다.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서 무려 4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하니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만들어졌을 빵들과 그 빵들로 위안을 받았을 사람들의 매 순간순간들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추가한다. 렌틸콩 수프에 적셔 먹으니 찰진 부드러움이 한층 깊어진다.
Adana 케밥과 Roast치킨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양이 차고도 넘친다. 여기에 맥주를 없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케밥은 숯불이나 화로에서 구운 고기 요리로 심플한데,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게 정통 케밥인지 잘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먹어본 케밥과 이렇게 식당에서 요리로 나오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 말고는 이제껏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 보편지향적인 음식임에 틀림없다.
고기를 한 점 먹는 순간 5년 전의 맛이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기억 속의 저편인 <아까 여기>를 <지금 여기>로 끌고 오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가운데 기억 속의 여행이 입안에서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진한 아쉬움에 bayreuther brauhaus 생맥주를 추가 주문했다. Zipfer와 결이 다르다. 두툼하고 진한 라거의 향이 입안에 들어온다. 가벼움과 진함이 서로 대비될 수 있다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런 세세한 맛의 차이를 느끼고 음미할 수 있을까? 이 또한 홀가분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계산할 때 비로소 비엔나의 팁 문화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력은 약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 같다. 2019년에도 분명히 팁 문화가 있었을 텐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66유로여서 카드로 계산하려다가 현금으로 70유로를 내고 잔돈은 가지라고 했는데, 최근 비엔나의 팁 평균이 10% 정도여서 그런지 약간 시큰둥한 반응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5년 만에 다시 조우한 터키의 맛은 근사했다는 좋은 느낌만 갖고 시큰둥한 반응은 길거리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