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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Dec 21. 2020

취미는 발톱 손질

특기는 관찰

네일숍에 딱 한번 가보았는데 발톱 스케일링 때문이었다.

발톱에 무좀이 생긴 걸 발견하고 약국에서 파는 의약품으로 해결해보려 했지만 몇 년 동안 나한테 찰싹부터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오른쪽 엄지발톱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 왼쪽 엄지발톱까지 침범해가고 있었고 새끼발톱의 색이 조금 달라진 거 같아 두려움은 점점 커졌다.

그래서 찾은 유튜브라는 도피처에서 발톱, 발톱 무좀, 발톱 치료, 발톱 관리, 발톱 병원 같은 검색 끝에 발톱 스케일링 동영상을 보았다. 이것은 피지 짜기 같은 중독성 혐오 콘텐츠였다. 대부분의 스케일링 영상은 샵에서 광고로 올려둔 것이었고 환자의 상태도 아주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before and after를 볼 때의 희열도 더 컸고 기대감에 나도 그 광고의 네일케어 샵에 예약을 해버렸다.

마치 의사처럼 흰 가운은 걸치고 차트를 들고 나타난 매니저는 내 발톱은 스케일링할게 별로 없다며

지금 고객님의 문제는 이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다른 시술을 받을 권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듯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얼굴을 들이밀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언제 빨았을지 모르겠는 오염된 가운을 입고 여전히 권위적인 의사처럼 말했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 엄지발톱 두 개에 이상한 걸 달아주고 나는 거금을 내고 나왔다. 그리고 난 그곳에 격주로 관리받으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가 곧 닥쳐올 거라고 했기에 예약도 하고 나왔다.

집에 와서 보니 내가 필요하지 않은걸 하고 돈을 쓰고 왔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한심함이 밀려왔는데, 병원에 갔더니 이런 걸 달고 오면 상태를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치료도 할 수 없다고 해 나의 한심함은 더욱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치료가 시작된 이후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의 발 만 보였다. 길에서도 어디에 가서도 샌들을 신은 사람들의 발과 발톱 귓끔치만 클릭 확대한 것처럼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기준이 발톱 무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눠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얀 각질도 백선의 증세 중 하나였다는 싫어하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자꾸만 시선이 머문다. 

나는 잠시 이 방대한 세계에 빠져 한국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백선을 앓고 있고 비교적 간단히 치료할 수 있음에도 그대로 방치해 나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한 사람 한 사람 잡고 얘기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목욕탕, 헬스장, 요가, 찜질방 등의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에서도 쉽게 옮아 올 수 있다는 걸 프린트해 서울역 광장에서 뿌리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뭐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안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당신의 세계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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