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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Aug 17. 2022

이유 있는 이상한 사람

ADHD

나를 정의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청소년 땐 혈액형, 한의원에서는 8 체질, 2000년대부턴 MBTI, 팟캐스트를 듣다가 WPI를(Whang's Personality Inventory 황상민 박사가 만든 개인 연구결과물로 한국형 성격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검사까지 했다) 그리고 역술인에게 사주를 보는 등 여러 가지로 나의 정의를 남에게 물으러 다녔다.

몇 년 전부터는 정신과를 다니며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 있고 HSP(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장르의 사람이라는 것도 되었다. 어쩌면 이미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일지라도 누군가(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신뢰도가 올라간다) 나를 분류하고, 정의를 언어로 설명하면 그 후로는 유형화된 틀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곤 한다.


학교 다닐  어학 점수가 모자라 패스를 못하고 계속해서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던 나에게 어학 선생님이 아무래도 내가 난독증 같다고 했다. 와 비슷한 케이스들이 있고 그들은 난독증이었다고, 진심으로 의사, 임상심리사 +그외 검증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추천서를 써주었다.(참고로 학교에서 확진이 확인되면 그 이후에 보통학생과는 다른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에세이 날짜 미루기 공식 신청도, 학교에서 진행되는 텍스트 관련해서는 따로 내 문서를 봐 주는 선생님이 따로 배정되기도 한다) 신청은 했지만 절차가 매우 복잡해 1 정도 기다리는 사이 나는 시험에 패스했다. 하지만  말을 들은 후로내가 갑자기 이해되면서 조금은 관대해졌다. 어학 점수 때문에 학교에서 학년을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레터를 받고도 시험에 떨어지는 나에게 멍청하다 탓하며 한심한 마음을 갖고 괴롭히는 것에서 이해하는 쪽을 선택할  있었다. ' 그래서 내가 그동안 쓰기 시험만 이렇게  봤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할  있음에 마음이 편해졌다.( 있을 시험에 쫓기는 것과는 별개로)  행동을 두둔해줄 정당한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며칠 전 병원에 약을 타러 갔다. 특별히 요즘 증세가 나쁘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라 거의 약만 타고 나오는데 그날따라 내 뒤로 환자도 없고 해서 선생님과 오랜만에 상담을 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증세와 내 기질 등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약을 먹어도 '나'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게으르고 미루고 또 미뤘다.

일상생활을 망가트리는 신체증상도 거의 없어졌고, 무기력증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종이 무덤을 현관문 앞에 쌓아놓은지 두 달이 되어가는데도 그걸 치우지 못하고 피해서 넘어 다닌다. 집에 들어서면 산처럼 쌓아놓은 쓰레기가  보기 싫지만 버리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체 외면하고 살고 있다. 이전처럼 완전히 쓰레기집 같은 데서 사는 것에서는 벗어났지만 내가 여전하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내가 일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하는 것, 그래서 곤란함을 겪는 것,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것,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것, 한 가지를 끝내지 못하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래서 늦어지는 것, 사소한 실수를 하는 것, 그게 반복되는 것, 충동적인 것 등은 여전했다.

문제는 다  내 지능이 낮아 서고, 타고난 성격이고 느려 터진 내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어서 나는 어떤 성취를 이룬 적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게 현재의 이룬 게 없는 내가 된 원인이었다.  작은 성취들이 모여 자존감을 만들어줄 텐데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계속된 실패와 중도포기 등으로 나라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리고 바라는 나의 모습에 조금도 미치지 못했고,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내 모습이 너무 차이가 커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으로 자기혐오만 키웠다. 거기엔 덩달아 자격지심 같은 못난 마음들도 따라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기 좋은 상태로 두고 자기혐오의 늪에 숨어 지냈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그대로도 삶은 느리고 힘겹게 돌고 돌아 살아졌다.


가끔씩 조카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면 ADHD인 자신이 보기에 내가 ADHD로 보인다라고 몇 번을 말해준 것이 생각나 선생님께 얘기했고, 요즘 유행처럼 성인 ADHD 특징이 SNS에 보이는데 내가 거기에 부합하는 거 같다 말했다. 간단한 설문지를 먼저 풀었고 생각보다 더 의심할만한 높은 점수가 나와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길고 어려운? 검사를 했다. 나온 결과지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많았다. 정상범위는 다 검은색으로 표시된다고 한다. 결과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성인 ADHD 었다. 일반적인 부주의한 성향은 아니나 충동적인 성향의,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명? 되었다. 내가 가진 결벽증, 강박 성향이 있는데 내 행동과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것 등을 기억하고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이로서 나는 요즘 서점가에 가득한 ADHD 유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결과를 듣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이 답이 듣고 싶었던 것일 수도 모른다.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에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나는 그 병명 뒤에 숨어 내 행동에 책임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되었다. 나를 어떤 영역 안에 분류하고 유형화시키면서 '내 행동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말하는 건 진짜 변명밖에 되지 않기에, 전문가를 통해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스스로도 벗어나고 싶은 기질과 행동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어려워도, 내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긍정을 하면 나를 덜 미워할 수 있게 될거 같다.

자괴감의 늪에서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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