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함께 여행을 다닌 친구는 장거리 운전을 잘하고 안전거리를 잘 지키며, 깜빡이를 꼭 키고 차선 변경을 했다. 나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성격은 다른 친구였다. 과거형이 된 건 얼마 전 나의 이사에 내 사정을 잘 헤아려 주며 이사하면 현금 쓸 일이 많다고 50만 원을 턱 하고 보내준 후 이삿짐도 풀지 못했을 때쯤 그 친구로부터 절연을 당했다. 어른의 인간관계는 쓸쓸하다. 그래서 마음이 꽁하게 말리고 초라해질 거 같아 마지막 여행은 끄집어내기가 싫다.
진은영의 새로 나온 시집을 폈다가 첫 장에 써진 허르베르트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사람이 나의 마음을 읽고 있구나 싶어 철렁했다.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 자지.”
여행을 떠올려보려고 핸드폰 사진첩을 둘러보니 집 사진을 찍은 게 정말 많았다.
여행은 낯설게 보기를 하게 되는 것, 걷고 또 걷는 것, 발견하는 것,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지? 가장 가까운 과거의 나는 집을 보러 다닌 것, 설문조사원처럼 92개 의 집을 방문했다. 가난을 서류로 증빙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나에겐 선택권이 생겼다. 92개의 집이 다 다른 곳에, 제각기 다른 모양, 평수를 하고 있기에 집을 보고 오라고 리스트가 나왔다. 그 집들 중에 하나를 골라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인데 대학입시 때도 고민하지 않던 경쟁률까지 신경 써야 했다. 집은 마치 경매장에 올려놓은 채소 같았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멀지 않은 동네를 걸어서, 버스로 이동하며 움직였다. 새로운 길을 모르는 동네의 풍경을, 주택가 같은데 남색 잠바를 입은 사람이 많았다.
계속 걸었다 하루에 만 오천 걸음 이만 걸음, 한건물에 여러 개의 집이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남양에서 서울, 서울에서 운정까지 가보지 못한 곳들로 내가 누울 곳을 찾아다녔다.
창문이 막혀 있기도 하고, 창문을 열면 남의 집이 나오기도 했다, 낮인데 캄캄하기도 해가 들어오기도, 창 앞에 나무가 있기도,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기도 했다. 창밖을 보고 싶었다 창밖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내가 침식되지 않는 곳.
집에 누워있을 때 늘 관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비약이 심하다. 실제 눈으로 본 관은 사람이 이렇게 작았던가 싶을 만큼 정말 좁다. 아니 얇다.
내 언어엔 언제부턴지 절대 같은 부정적 감각들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건물엔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그들의 살림살이가 한가득 복도를 메워놓은 것을 보고 알았다, 두부 반모와 찌개 냄비가 사는 사람의 음식취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으면 문 앞에 나와 뒷짐 지고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올라갈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나를 노려보는 반가운 이웃을 만나기도 한다. 다정한 이웃의 바로 앞집은 보지 않고 넘어 뛰었다. 하나같이 집 앞을 장식한 물건들이 집집마다 그 집의 냄새를 풍긴다. 소방법 위반으로 신고 넣을까? 생각하다 아 어쩌면 나의 이웃이 될 사람들인데 나의 시선은 이미 편견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나도 그들인데 나와 선긋기를 시도하고 있는 내가 역겨워 나오는 골목길 로또 명당에 나를 숨겼다. “스피토 천 원짜리 다섯 개랑, 로또 자동 오천 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