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델 토로의 피노키오
1.
동화로서 피노키오는 약간 혼란스러운 데가 있는 얘기입니다. ‘ 인간 소년이 된 나무 인형과 제페토 할아버지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는 해피 엔딩으로 얼버무려서 그냥 넘어가지긴 했지만 대체 이 종잡을 수 없는 얘기의 교훈은 뭐죠?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자? 어른들 말씀을 잘 듣자? 쇼비즈니스는 너의 영혼을 잠식할수 있다?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LSD에 취한 교장선생님의 맥락없는 훈화 같은 원작을 좀 더 말이 되는 스토리 라인으로 정리합니다. 그 말이 되는 줄거리를 위해 새로 등장하는 것들은 무솔리니와 파시즘, 군사 학교와 쇼펜하우어를 숭배하는 염세주의 작가 캐릭터처럼 매우 선명하고 구체적인 현실의 오브제들 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피노키오 애기에 정치색이 지나친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분도 있을 수 있지만... 델 토로의 굉장한 점은 만드는 사람이 제대로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파시스트에 대한 맹렬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으로 필멸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결함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아니 실은 그보다 더 나아가서, 이 영화를 보고나니까 '당연히' 꼭두각시 인형 얘기는 파시즘 교육 얘기랑 연결해야 말이 되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아...
치열한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은 정치의 문제를 호출합니다. 나무인형도 그럴진데, 진짜 피가 흐르는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2. 상당히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꽤 울게 됩니다. 아 솔직히 난 이런 얘기에 너무 약해요!. 사랑을 처절하게 원하는 아이가 자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서.. (벌써 오열)
피노키오는 자기가 제페토 아저씨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아들이라는걸 아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제페토 아저씨의 유일한 사랑은 오직 죽은 아들인 카를로입니다. 자기 아들과 비슷하지조차 않은, 술에 취해 만들다만 나무 인형은 완벽한 아들의 대용품조차 되지 못합니다.
꼭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더라도, 이 사랑이 내 존재를 완성 시켜준다는 걸 나는 알고 있는데, 상대는 그걸 모르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나요? 피노키오 - 제페토의 관계는 내가 충분히 훌륭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착하지 않거나 부유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순간들을 불러냅니다.
20세기 말 부터 개인에게 부여된 단호한 과제 - 자존감을 지키라는 요구. 다른 사람을 위해 너를 바꾸지 말라는 충고, 너의 것을 뺏겨서는 안되고, 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조언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존재들입니다. 짝사랑의 밤을 밝히는 수많은 부치지 못한 편지들의 주제는 I'm a creep, You are an angel. 로 요약됩니다.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자존감에 좋은 활동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빠를 위해 터무니없이 착취적인 쇼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피노키오처럼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멍청한 짓들을 하죠. 그런 노력들은 도움이 되었던가요? 우리는 어떻게 존재를 완성시키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나무 인형이 ‘인간 아이’ 가 되면 아빠는 나에게 아들에게 주었던 완벽한 사랑을 줄까요?
피노키오 얘기기 때문에, 스포일러라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를 완벽한 크리스마스 영화로 만드는 탁월한 결말을 제가 여기서 말해버리지는 않겠습니다만,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델 토로는 As good as it gets 의 감동적인 고백 -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 - 를 다소 폄하하고 싶게 만드는 군요. 물론 오프라 윈프리 식의 자존감 코치들의 조언도 무시하고 싶게 만들구요.
완벽한 아들을 돌려달라는 제페토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면 제페토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겠죠.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들과 우리의 불완전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작은 마음들입니다. 우리는 너무 작은 것들을 위해 한심하게도 많은 걸 지불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랑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슬픔조차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우리를 충만한 존재로 만들어주니까요.
그런 생각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크리스마스 스피릿이라면 이 영화야 말로 더하고 뺄거 없는 완벽한 크리스마스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눈내리는 장면이 있고 없고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죠!
결말을 말 안하고 정리하려니 좀 어렵군요! 아무튼 올해가 가기전에 꼭 보시면 좋을 초초초 강추 크리스마스 영화입니다.
3. 매우 완성도가 높고 아름다운 영화이지만 그와 무관하게 들었던 사소한 의문
- 나무인형이 움직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굉장한 볼거리인 세계에서 원숭이가 완벽한 사람 말을 하는 것은 왜 시시하게 취급되는지 이해할 수 없지 않습니까?!
- 피노키오와 제페토를 삼키는 큰 물고기는 디즈니 만화에서는 향유고래로 표현되지만 델 토로 버전에서는 심해어로 표현되는 점이 매우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래에 대한 재밌는 사실들)
- 아주 큰 고래들은 수염고래로 이빨이 없음 - 그래서 원작동화에서는 수염고래였던 것이 디즈니 버전에서는 이빨고래들 중에서는 큰 편인 향유고래로 변경.
- 수염 고래들은 체처럼 걸러서 새우나 플랑크톤을 먹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렇게 목구멍이 넓지 않음 (배나 사람이 통째로 들어갈수 없음)
그런 점 때문에 뱃속의 재회를 하기에는 좀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변경한걸까요? 사실 디즈니 디자인은 좀 하이브리드 형이긴 합니다!
이번 버전에서는 심해어가 아마도 짝짓기 철에 잠시 얕은 물로 올라온 것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어서 (외모도 일단 고래가 아니고..) 심해어라면 뭐 그런 생물이 있겠거니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우리가 심해의 사정을 다 알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짤방은 피렌체 갔을때 봤던 뮤지컬 피노키오 포스터 - 무슨 얘긴지 상상도 안되서 일단 찍어오긴 했는데 아직도 궁금증은 남아있음.. 흐음.. 저 남자가 피노키오일까.. ? 지나치게 성숙해 보이는 피노키오 얘기에서도 길어지는 것은 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