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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Oct 14. 2022

모든 가능한 우주의 가장 형편없는  '나'들을 위하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1. 사실 세상은 공허합니다. 과학은 신의 아이들이었던 우리를 지구라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돌덩이 위에 붙어 있는 평범한 생명체로 만들어버렸고, 위대한 태양조차 실은 우주에 흔하디 흔한 수소 헬륨 덩어리에 지나지 않죠. 우리 우주조차 유일한 것이 아니며 존재의 의미는 순간적이고, 생각해보면  현대과학이 밝혀낸 모든 사실은 우리가 하찮고 의미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입니다.


다른 멀티버스의 나는 좀 다를까요?  어딘가엔 지금보다 나은, 존재의 의미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있을까요? 저는 농구선수가 되라는 중학교 담임의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요? 혹은 피아노를 계속 치거나 아이를 낳았어야 했을까요? 이 정교하고 더럽고 아름답고 추접하고 터무니없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는 우리가 가지 않았던 길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2. 우리는 대부분 될 수 있었던 어떤 것도 되지 못한 채로, 이룰 수 있었던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한 채로 우리에게 주어졌던 가능성을 제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건 끔찍한 삶인 듯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실패들 때문에, 모든 가능한 우주중에서 가장 시시한 결과물인, 우리 우주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미친 속도감으로 내리 달리는 광기의 영화는 실은 가족과 사랑에 대한 찬가입니다. 다양한 우주를 넘나들면서 펼치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로 폭발할 것 같은 영화가 마침내 공허한 우주의 모든 것이, 어디서나, 한꺼번에 의미로 가득차는 순간을 만나면서 감동의 눈물이 폭발하죠. 저는 워낙 영화보면서 잘 우는 편이긴 하지만.....아무 대비없이 갔다가 마스크 두개를 버렸습니다 ._.)a


3. 코믹스로 다소 맥락없이 이어지는 세계들을 엮어내기 위해 불러낸 마블의 멀티버스가 ‘대 혼돈’ 그 자체라면 양자경의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는 마치 인플레이션으로 한꺼번에 만들어진 멀티버스처럼 정교한 목적이 있는 혼돈을 설계해냅니다. 


그 세계는 양자경의 모든 재능과, 너저분한 농담과, 가짜 페니스와 애널 플러그와 화장실 농담과 왕가위 흉내 같은 키치, 이민 2세대의 가족갈등과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B무비의 우주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뒤 섞여 우리를 인생의 진짜 목적에 대한 자연스러운 깨달음의 감동으로 끌고가죠. 


아아 좋군요. 이렇게 저속하고 우아하면서도 영리한 SF 는 진짜 오랜만인 듯.  써야할 특수효과에 돈을 아끼거나 제이미 리 커티스 대신 저렴한 배우를 캐스팅 하는 식으로 저예산성을 드러내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에 B급 영화의 느낌이 넘쳐납니다. 더하고 뺄거 없는 완벽한 코미디/SF/힐링 컨텐츠로 대 강추입니다. 주말에 휴지(중요) 챙겨서 꼭 보세요!  


짤방은  계속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생각했던 남자 주인공. 나와서 찾아보니 진짜 어디서 보긴 봤던 배우긴 한데!!!!!! 양자경의 남편 역이라니 진짜 세월이!!!!!


양자경 훌륭한거야 말하면 입아프지만, 이 훌륭한 분은 대체 누구신가 영화보는 내내 생각함 


알듯 모를듯 했던 그 분의 청체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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