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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May 08. 2023

'자유'의 송가 에 바치는 송가

예술의 전당 - 구자범의 베토벤 9번 합창 공연 


1. ‘환희의 송가’로 알려져있는 베토벤 9번의 코러스 첫 가사는 ‘ 기쁨(환희)’ 입니다.  쉴러의 원제부터 베토벤의 악보까지 ‘환희의 노래 An die Freude’ 라는 글씨가 선명하지만, 이게 유일한 해석은 아닌 듯도 합니다. 89년 번스타인은 브란덴브루크에서 독일 통일을 기념하며 베토벤 9번을 연주했는데, 이날 공연의 제목도 ‘자유의 송가’.  9번 합창곡의 가사에 ‘환희 (Freude) ‘ 대신 ‘자유 (Freiheit)’ 를 넣었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vxt2HuNYW3k : 번스타인의 89년 공연 '자유의 송가' 

 

오늘 공연에서 첫 가사에 ‘자유’가 나왔을때 ‘아항, 번스타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전체적인 번역을 보면, 구자범 선생님은 상당한 자신감으로 이 노래가 자유에 관한 노래라는 확신을 가졌던 듯 합니다.사실 비슷한 단어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의미는 자유라고 보면 더 납득이 잘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기쁨의 송가’가 ‘우리는 신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형제들, 모두 모두 사이좋게 지내요.’ 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유의 송가’ 는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기 위한 자유를 얻어내고 모두가 형제인 미래로 나아가자.’ 는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됩니다.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 작품은 정치가들을 겁먹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한 예술가였습니다. 구자범의 탁월한 번역으로 9번은 인간애에 대한 순진한 열정을 노래하는 작품에서 자유와 투쟁, 유토피아에 함께 할 수 있는 형제들과 그렇지 않은 적들을 갈라내는 뜨겁고 현실적인 작품이 된거죠. 합창단의 딕션도 매우 선명해서 이 작업의 의미를 밝혀 주었지요. 


2. 음.. 제가 환희의 송가를 들은건 평생 몇번이나 될까요? 에반게리온을 돌려보면서 추가한 10번 정도를  제외하더라도 대충 100번도 넘을 것 같은데, 오늘처럼 확연하게 곡의 구조와 가사의 의미가 선명하게 들어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모국어로 베토벤 9번을 연주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한국인 지휘자가 있는 건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뒤에 약간 불평을 늘어놓더라도 이건 변하지 않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가사와 함께 적절하게 들어간 지문과 역할에 대한 설명 때문인지, 4악장은 전체적으로 오라트리오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프로그램북의 설명에 의하면 오페라 (실은 징슈필)을 하나 크게 말아먹은 베토벤은 대본에 음악을 붙이는 형태보다는 음악이 극을 주도하는 오라트리오 형식에 끌렸고, 평소 꼭 만들어보고 싶었던 쉴러의 시를 바탕으로 오라트리오 형식의 극음악으로 4악장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럴듯하죠! 


3. 음..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300명이 넘는 대형 합창단에 대해서 불평하기는 어렵지만, 솔리스트들이 전반적으로 너무 약했고, 1악장의 연주는 진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 정도였던 데다가, 4악장에는 재 연주가 있기도 했구요. 


제가 4악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 - 미친 팡파르 뒤에 베이스 솔리스트가 노래를 시작하는 부분은 특히 너무 아쉬웠어요!  아니 사실 그분만 찍어서 비난하는건 옳지 못한 일 같군요. 솔리스트들은 다들 뭔가 아슬아슬 했으니까.. 


음… 구자범을 여러면에서 응원하는 편이긴 하지만, 구자범의 오케스트라는 대체로 전반적인 프레이징이 살짝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는 어떻게 연습하는지 제가 알수는 없겠지만, 완벽주의자인 지휘자가 음표 3개에 한번씩 끊어가면서 뭔가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연습 장면이 떠올라요. 


부분 부분 유지되는 연주자들의 집중력이나 긴장감이 전체적으로 지휘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건드리지는 못한 느낌. 지휘하는 모습에서 지휘자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가 막연히 느껴지기는 했지만요. 


구자범 지휘자는 이 곡을 지휘하고 싶어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는 베토벤이 이 곡을 초연한 나이에, 초연한 날자와 같은 날자에 이 곡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연주하는 일을 해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4. 저는 4악장 중간부터 괜히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그게 참 이런저런 굴곡이 많았던 예술가가 인생의 한 장을 정리하는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벅참인지, 자유와 형제애와 하늘의 부드러움에 억센 사슬이 깨어지고, 우리가 형제들과 하나가 되는 큰 뜻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베토벤 선생의 순진하고 확신에 찬 메시지 때문인지, 같은 혁명을 꿈꾸기엔 우리가 지금 처한 처지가 한심스러워인지, 


지휘를 하고 있는 구자범 선생의 머리 속에 뜨겁게 펼쳐지고 있을 하늘의 소리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소리가 완전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에 차오르는 안타까움인지, 그래 나도 정말 잘하고 싶었던 일이 제대로 안됐을 때의 막막함이 떠올라서 였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뭐 인생이나 오케스트라라는 가끔 진짜 안풀릴때도 있쟈나요. 


그래도 가길 잘했어요! 완벽한 연주가 아니어도 감동은 도처에. 


5. 그러니까 이런거.. 감동적인 프로그램 북.


 프로그램 북 별로 안보는데, 진짜 챙겨오길 완전 잘했어요. 우앙 너무 좋아! 몇 권 더 가져와서 오늘 효도하느라고 같이 못간 친구들 나눠줄걸 !!



논문인지 프로그램북인지 번역작업과 해석에 대한 얘기가 꼼꼼하게 적혀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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