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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Dec 14. 2023

This is War

마쓰모토 히토시의 <도큐멘탈> 

저는 최근 넷플릭스의 <코미디 로열> 을 봤습니다.나쁜 쇼는 아니었지만, 뭔가 엄청나게 웃긴 것을 볼 것 같았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저의 마르지 않는 웃음 샘물인 마쓰모토 히토시의 <도큐멘탈>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것은 희안하게도 <코미디 로열>보고 <도큐멘탈> 얘기하는 포스팅.. 

마쓰모토 히토시의 웃참전쟁 도큐멘탈


 1. 마츠모토 히토시는 일본의 유재석… 이라고 표현하던데, 대충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 이라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네요. 마츠모토 히토시가 아마존 오리지널로 런칭한 후에 세계 각국에서 last one laughing (lol) 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포맷의 판권이 팔려나갔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보시는 분들이라면 온갖 나라 버전으로 보셨을 lol 의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포맷은 단순합니다. 각각 100만엔씩을 들고 모인 10명의 코미디언들이 6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모입니다. 웃으면 탈락. 마지막까지 안웃고 버티면 1000만엔을 모두 가져가게 되죠. (판돈은 2시즌에서는 더블이 됩니다) 


타짱 같은 웃참 컨텐츠나 <코미디 로열>의 웃음참기 라운드를 떠올릴 수 있겠네요. 기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이지만, 타짱이 일기토라면 <도큐멘탈>은 전쟁다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뭐든지 (말그대로 뭐든지!) 허용되고, 웃기기 위한 소품이나 분장도 준비해 올수 있습니다. 뒷 시즌으로 갈수록 룰은 더 정교해져서, 공격하지 않고 방어에만 주력하면 승리하기 어려워지고, 탈락자들이 좀비로 돌아오는 등의 룰이 추가됩니다만, 기본적으로 웃음참기라는 뻔한 포맷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이나 친구들끼리 모여서 지금 당장이라도 할수 있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요란한 자막도 없고 대단한 연출이 끼어들 여지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마츠모토 히토시의 이름과, 괜히 무게잡는 타이틀,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신선함. 대본없는 만담과 즉석연기와 분장과 허를 찌르는 몸개그!! 탑클래스 코미디언들의 웃음 진검승부!! 같은걸 볼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이정도로 누가 웃냐 1 


3. 현재 아마존 프라임에 올라와있는 다섯시즌을 다 본 결과! 


진짜 뭐 이렇게 거지같이 웃긴게 다 있지? 하루종일 뒹굴거리면서 미친듯이 웃고 홀린듯이 두시즌 반정도를 다 본건 사실인데…. 이게 일반적인 코미디가 재밌듯이 재밌다고 보긴 좀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좋은 코미디의 조건이라고 우리가 생각해 온 것들 -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고안된 재치있는 대사들이나 노련한 배우들의 합으로 짜여진 타이밍의 쾌감이 나오기 힘든 설정입니다. 6시간의 한계때문에 맥락을 구축하고 반복이나 패턴으로 웃기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온갖 몸개그에 단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슬랩스틱도 거의 안먹힙니다.  다들 1000만원씩을 넣고 시작한 상황이다보니 절박함은 배가됩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이 뻔한 컨셉의 쇼는 매우 특이한 지점의 소셜 익스페리먼트가 됩니다. 안웃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뚫고 나오는 웃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웃을 수 밖에 없는가


4. 우리는 왜 웃는가에는 여러 이론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이론 중 하나는 인간이 상대하는 사회의 사이즈가 커지다보니 영장류의 털고르기보다 수월하게 친밀감을 표현할 수단이 필요했다는 것이 있죠. 우리는 공동체 의식과 호감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사회적 행위로 웃음을 활용합니다. 


쇼에서 보여주는 웃음 중 가장 허무하고 무력한 실패는 유전자에 각인된 명령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초반부나 유력 멤버의 탈락 후에 방심한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거의 반사적인 웃음을 띄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더군요. 이건 코미디 로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웃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에 굴복 - 봐준다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선배가 그저그런 새 헤어스타일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할때 , 누군가가 과자를 나눠줄때, 누군가에게 수건을 건네줄때 , 인간이 단지 그런 상황에서 웃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웃어버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전반적인 게임의 긴장감을 생각하면 터무니 없지만,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명령은 그렇게 쉽게 거스를 수 있는게 아니겠죠. 


5. 프로이드는 성적인 주제와 금기를 다루는 유머들이 응축하고 있는 부적절한 욕망이나 질투심이나 적대감이 해소되는 순간에 터지는 웃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죠. 이 쇼에는 거의 교과서처럼 그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1시즌의 대량살상무기 애널림픽( …) 을 예로 들어보죠. 음.. 출연자 중 한명이 구령에 따라 팬티를 빨리 내리고 자기 항문을 빨리 보여주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네, 애널림픽)을 제안하고 자기가 첫번째로 시행합니다.


이건 그냥 경악할 미친짓이고, 대부분의 항문에는 그다지 웃긴 면이 없죠. . 그런데, 이 분이 팬티를 내리고 나서 거기에 하얀 휴지가 매달린 걸 보면 누구나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프로이드가 말하는 웃음이 생성되는 의외성 (펀치라인)이 발생하는 순간인것이죠. . 부적절함에서 오는 억눌린 긴장감이 컸기 떄문에 웃음의 파도는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코미디 로열의 원숭이 섹스가 안웃긴 건, 이경규 선생님의 말처럼 그것 자체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불경한 짓이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해소파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펀치라인! <도큐멘탈> 지미 오니시가 낭심에 청소기를 넣고 빨아 들이는건 멍청하거나 끔찍한 짓이지만, 과장된 울상을 하면서 청소기 때문에 자기 낭심이 이전과 다르게 주조되었다고 선언하면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죠. 


본인을 내려놓는 너저분한 짓만으로는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없습니다. 모든 너저분한 농담을 시도하려는 분들은 자신이 적절한 해소포인트 (펀치라인) 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6. 설명할 수 없는 영역, 혹은 설명도, 맥락도 에너지의 응축도 필요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2시즌의 대량학살무기인 “훌라후프 사진” 을 예로 들수 있겠군요. 한 출연자가 발랄한 표정으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는 자기 엄마의 14세 사진을 가져옵니다. 명랑하고 즐겁고 미소짓게 하는 발랄한 흑백사진입니다. 사진의 어떤 면이 좀 웃기긴 한데, 도저히 못참을 정도는 아니긴 하죠. 


그런데, 여기에 부가적인 정보 - “ 우리 엄마는 창던지기 선수였다.” 가 더해지자, 스튜디오에 거의 대량 학살 웃음 폭탄을 던진듯한 분위기가 전파됩니다. 베르그송의 이론중에 뭔가 가물가물 떠오르는 것이 있는 듯도 하지만, 설명은 포기하겠습니다.  새롭게 주어진 부가적인 정보의 의외성일까요? 터무니 없지만 그 사진의 발랄함과 가늘게 이어지는 선? 혹은 14세 소녀 - 엄마 - 창던지기선수 가 만들어내는 의외적인 서사 구조?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안웃기도 어렵습니다. 이와 가장 비슷한 코미디 모멘터는 메코클의 아기 캐릭터 이재율이 뽀얀 피부를 노출하는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서  "어제 발레 빠진 새끼 나와." 라는 대사를 했을때? 뭔가 설명은 어렵지만, 상당히 파괴적인 의외성이 있죠.


스스로 웃음을 못참아서 오래 버티진 못하지만 아무튼 파괴적인 천연 보케 지미 오니시 


7. 그 외에는 어떤 게 또 있을까요? 자기 코미디의 기믹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지만, (아는 무기는 방어할 수 있죠) 지미 오니시의 보케 캐릭터는 어느 순간에나 강력하게 먹힙니다. (천연보케이기 때문에..?) 


지미 오니시는 여러모로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여서 앞으로 약간 더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외에도 몇가지 웃긴 사람이 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코미디의 교훈들과 더 알아보고 싶은 코미디언의 리스트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신다면, 제가 말한 것 외에도 각자 웃음에 대해 드는 생각들이 있을 것 같네요.  


사실 저는 일생동안 ‘웃기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혀있지만 재능이 없달까 흥이 부족하달까한 개그계의 살리에르로서, 어쨌든 웃길 것 같다는 것을 잘 못지나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의 흔한 저질 코미디들에 대한 항체는 거의 없는 편인데, 이건 이상하게 과격하고 엉망진창인 쇼인데도 별로 거슬리는 면이 없는 것은 왜일까요? 


일단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츠모토 히토시를 비롯하여, 여기 참여한 정상급 코미디언들이, 코미디는 자기를 희생해서 남들을 웃기는 일이라는 그 업의 본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자기는 우아하게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코미디들은 실은 별로 재미가 없죠. 


좋은 코미디는 훌륭한 사랑 얘기와 마찬가지로 ‘희생’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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