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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Dec 18. 2020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아론소킨처럼 쓴다는 것.

넷플릭스 같이 봐 드립니다. 

 




1.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은 1968년 민주당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카고 시위에 참여한 7(+1)명에 대한 재판을 다룬 영화입니다. 젊은이들은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과 꽃과 음악(과 마리화나)로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었고,  당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젊은애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베트남이라는 사지로 청춘들을 몰아넣습니다. 수많은 젊음이 무의미한 전쟁에 희생되고, 급기야 모자라는 병사들을 채우기 위해 제비뽑기로 징집자를 뽑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민주당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급기야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반전 단체들은 전당대회장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며 시카고로 모여듭니다.

평화 시위라는 계획이었지만 이런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리가요. 경찰과 시위대는 무력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됩니다. 이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7명의 젊은이들은 내란죄로 기소되게 되죠. 영화는 바로 이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시카고 재판을 그려냅니다.


2. 아론 소킨은 엄청나게 유능한 작가/ 연출가이고, 특히 그것이 SNS 서비스건, 전쟁이건, 정치투쟁이건 일단 '법정'으로만 가져오면 그 유능함이 한 30배는 더 부각되는 사람입니다. 당시에야 다소 논쟁적인 점도 있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명확한 정치권력/악당의 존재라든지, 최소한의 인간미와 자존심을 가진, 선량한 주류 남자의 당연한 선택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뻔한 얘기를 설교적인 톤으로 늘어놓으면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감독이 되려면 이 정도까지 잘해야하는 거구나… 영화를 보면 약간 기가 질리고 주눅들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 메피스토가 나타나서 영혼을 가져가고 뭔가를 준다고 했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소킨처럼 쓰는 능력을 달라고 했을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다시 온난화 문제의 해결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세계적 체제전ㅂ….아 아닙니다)


3. 세상에는 수많은 정치/법정 드라마의 전문가들이 있지만, 21세기의 관객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상업적 반성(?)을 촉구하는 고통스럽지 않은 세시간의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내는 믿을만한 장인으로 소킨을 능가하는 사람은 별로 떠오르지 않네요.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장점은 이것입니다. 훌륭한 헐리우드의 잘 훈련된 전문가들이 자기 일을 완벽하게 잘해내는 걸 보는 쾌감이 있어요. 코비드 때문이겠지만, 올해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쾌감을 느낄 순간이 매우 적지 않았나요. 오프닝시퀀스의 편집이나 중간중간 샤샤 바론 코헨이 탁월하게 그려내는 스탠딩 코미디 분위기의 정치집회가 잡아내는 경쾌하고 잘 기획된 기능적 나레이션, 실망시키지 않는 스크립트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정확하게 필요한 연기를 해냄으로서 보는 쾌감과 전율을 제공하는 탑 클라스의 배우들 - 제가 이럴 때 자주 쓰는 표현으로, 아이포드 클래식의 포장을 처음 뜯을때의 쾌감같은게 느껴졌어요. 포장을 풀때 처음 느껴지는 단단한 박스의 질감부터 물건의 무게와 매끈한 휠의 감촉. 이게 좋은 음질의 MP3 플레이어인지 아닌지 조차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완벽한 만듬새같은거요.


4. 또 다른 장점은 뭐가 있을까요..?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꽤 많은 미국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당시의 정치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본 기억은 떠오르는게 거의 없더군요. 그 시기의 정치적 인물들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고, 무엇을 믿고, 어떤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 흑인과 여성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단초들을 줍니다. 물론 충분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당시의 문화나 사회, 음악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촘촘한 그물망에 의미있는 추를 매달 수 있는 정도의 정보는 제공해줍니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이 영화를 매우 만족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5. 하지만 ( 네, ‘하지만’이 나올 타이밍!) 이 작품이 2020년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좀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2020년의 정치 드라마는 기원전 3000년을 다루던, 60년대를 다루던간에 2020년의 정치를 다루고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시카고 7 트라이얼이라고 알려진 이 재판은 실은 8 명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7명의 평범한 백인 남자들을 과격한 선동분자들로 보이게 하기 위해 흑인 과격단체 블랙 팬서의 리더인 바비 실 을 이들과 공범으로 묶어 같은 재판정에 올린거죠. 바비 실이 기본적인 재판권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태로 겪는 일에 비하면, 이 7명이 재판 동안 겪는 부당한 일들은 엄격한 교관을 만난 보이 스카웃 캠프의 소년들보다 크게 나빠보이지 않을 정도랄까요… 


’숨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굳이 2020년의 BLM 을 호출하는 바비 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이 영화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처리됩니다. 나중에 위키를 찾아보니 디테일을 다 옮길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바비 실이 겪은 일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심각하고 가혹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 같았구요.


한편,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갈등을 해소하고, 진짜 절정을 만드는 부분은 주인공중 한명의 정치 연설의 생략된 문법으로 인해 생겨난 오해가 풀리는 것입니다. - 나경원이 ‘주어가 없음’변호를 이 재판에서 가져온게 아닌가 생각해봤어요. 그럴듯 하지 않나요?


6. 소킨은 정치는 말의 싸움이고, 언어를 고르고,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며,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어쩌면 지금의 시대정신과 잘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부터인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할 것 없이, 진보정치가 트럼프/ 김종인 / 홍준표가 한 말에 멋지고 재치있게 한방 먹이는걸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로 생각하는 스피커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것 같지 않나요.


어린이 만화에 나올것 같은 얄팍한 악당 캐릭터랑 비교해봐도 별로 특별히 더 고려할만한 인간적 레이어같은건 없어보이는 미친 노인네 판사 캐릭터는 오히려 사람들을 안도하게 만듭니다. - 미국의 시스템은 괜찮아. 저 판사는 문제지만. - 소킨의 정치물들이 광범위한 사랑을 받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소킨이 관객들에게 이입하고 같이 움직일 인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올리버 스톤의 고뇌하는 영웅들이 아닙니다. 적당한 정도의 상식과 인간미 정도면 충분해요. 그러니까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 이 영화에서 시카고 7+1을 기소한 검사 정도? 이긴게 뻔한 재판에서 피고의 최후진술에서 전쟁사망자들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의 매너를 가진 검사 정도면 됩니다.



 고뇌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있긴 하지만, 부당한 케이스의 기소를 담당한 검사역의 조셉고든래빗.. ._.)a 



영화에서 길어야 20분 정도 법정을 떠나있다가 구속되고 재갈이 물려 돌아온 바비 실은 실제로는 몇일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0분의 구속은 미친 판사를 나무라면 될 일이지만, 몇일의 감금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미국은 약간의 미친 사람(들)만 제거하면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고, 우리는 약간의 인간적 결함이나 문제나 사적인 이슈들을 갖고 있지만, 지성과 반성을 통해 상식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2020년의 진짜 위기를 겪고 있는 관객들에게 얼마나 적절한 메시지일까요? 정말 숨쉴수 없는 인종과 가난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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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드라마는 어느 시대를 다루든지 현재의 공기를 마시는 관객과 호흡하게 됩니다. 아론 소킨은 여전히 보기 즐거운 순간들을 만드는 뛰어난 작가겠지만, 우연히 잘맞았던 멈춰버린 시계처럼 이제는 그 시계가 맞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그러고보니 법정밖에서 시위대가 외치던 the whole world is watching 구호도 신경쓰이는군요. 그 캐치 프레이즈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이든에게서 도저히 찾을수 없었던 어떤 희망을 붙잡고 있을때, 정신나간 대통령 때문에 세계적으로 손상된 자존심외에는 별로 잃은게 없는 부유한 리버럴들이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트럼프를 미워하면서 외치고 싶었던 바로 그 구호는 아니었을까요?


사진은 실제 주요 인물들과 영화의 배우들, 너무 마음대로 보랏 연기 비슷한걸 해버리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서 조금 아슬아슬했던 샤샤 바론 코헨이 싱크로가 제일 높은게 충격 포인트랄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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