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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 Mar 25. 2019

편린-1

블루 스크린의 공포

추천음악 - 정재형 편린


나는 대한민국에서 1983년에 태어난 공주다.

딸이 환대받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서인지...

아들이 없는 집의 딸로 자란탓인지...

동화책의 공주를 몹시도 동경했기 때문인지

나는 나를 공주라고 부르는것이 좋았다.


첫 글이니 내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10살정도에 처음으로 DOS용 컴퓨터가 집에 들어왔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전화모뎀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을 잘 하지 못한 터라 컴퓨터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인터넷이 가능해지자 컴퓨터 안의 신세계가 열렸다.

그렇게 내 사춘기 시절의 추억이 모두 '인터넷'과 관련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매일 컴퓨터를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블루스크린'이라는 파란화면이 뜨기 시작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나는 프라블럼(?) 데미지(?) 같은 단어만 읽고는 공포에 질리곤 했다. 그 후 나는 수년간 수도 없이 공포의 블루스크린을 마주하고 때로는 안전모드에 들어가야만 했다.

컴퓨터를 배워보지 못했고 컴퓨터 관련 책 한번 읽어 보지 못한 내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날 나는 블루스크린이 뜰때 둥(?)하는 음악소리를 듣기만 해도 심장이 철렁내려앉은 후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블루스크린을 두려워하는가?


블루스크린이 나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일을 주는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첫째.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 음악을 듣거나. 별 쓰잘떼기 없는것들을 보고 있던 전형적인 소비자(?)였기 때문에 하고 있는 중요한 작업이 날아가서 열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나의 두려움의 근원이 되지 않았다.


둘째. 영어로 써 있는게 무서웠다.

이해가 안되니까 아무거나 눌렀다가 컴퓨터가 더 이상해질까봐 겁이 났다.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셨고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고등학생인 내가 우리집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했으니 고장났을때도 내가 알아서 고쳐야 했다.


잦은 블루스크린은 포맷을 한번 하면 확연히 좋아진다. 그런데 포맷을 하는 과정도 수많은 영어(?)와 마주해야했다. 난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여 명령어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운 to부정사의 형용사적 용법은 도대체 언제 써먹는건지 모르겠다.


최악의 상황은 포맷을 해도 컴퓨터를 쓸 수 없는 것이었는데... 블루스크린 때문에 포맷을 감행해야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사실은 속도가 느려져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음을) 

포맷을 했는데도 컴퓨터가 먹통이 되 쓸 수 없는 일 따윈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수년간 블루스크린을 보며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어느 날 더 이상 내 컴퓨터에서 블루스크린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엄창난 자유를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두려움 대신 온전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서른 일곱 지금도 그때가 가끔 생각난다.

때때로 삶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할때면....

나는 무엇이 두려운것인가?

그 두려움은 실재하는 것인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되는가?


혹시 나는 여전히 일어날 확률이 1%도 되지 않는 생각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가?

덕분에 일어날 확률이 99%인 즐겁고 기쁜 일들을 보지 못하는건 아닐까?

읽지 못해서 더욱 두려웠던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했던 무거운 블루스크린처럼 말이다.


지금은 내 삶에 어떤 것이 그 블루스크린을 대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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