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完) - 20/10/2023
라면에 햇반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시작한 우리는 서둘러 프런트로 향했다. 얼른 체크아웃을 끝내고 프런트 바로 앞에 있는 카페 <더 엠브로시아>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더 엠브로시아>는 <소노펠리체 델피노> 안에 위치한 카페로 울산바위뷰가 유명했다. 체크아웃 시간 이후에 가면 이미 사람들이 차있다고 소문이 나서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자리를 잡아야 했다.
체크아웃 시간보다 약간 일찍 카페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이미 북적이고 있었다. 창가자리는 벌써 다 차 있었으나 다행히 창가자리 바로 뒤에 네 명이 앉을 만한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운이 좋게도 빈 창가자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더 엠브로시아>는 뷰 맛집답게 한쪽 벽면이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울산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창문 앞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벼서 뒷사람이 나오지 않게 셀카를 찍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날씨가 좋은 것도 한몫 한 듯했다.
<더 엠브로시아>에서 본 설악산 뷰는 자연경관에 인색한 내가 보기에도 시원한 절경이었다. 다만 사진으로 그 웅장함을 담기는 쉽지 않았다. 한창 사진을 찍고 디저트까지 먹은 우리 가족은 숙소 근처에서 사진 몇 장을 더 찍은 뒤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출발했다.
점심 식사 장소로 고른 곳은 <속초게찜 설악본점>. 주차를 마치니 마치 에버랜드에서 입을 것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저씨들이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셨다. 가게에 들어서니 우리가 아마 첫 손님인 듯했다. 게찜을 시키고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지만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불만은 쏙 들어갔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죽과 미역국, 가리비찜까지 모두 훌륭했다. 가리비찜은 더 먹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게찜 역시 훌륭했다. 사실 게 요리의 가장 큰 단점이 발라 먹기가 귀찮다는 것인데 이곳은 부위별로 손질해 주고 먹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물론 아빠는 이렇게 나와도 귀찮다고 하긴 했다(...) 곁들여 먹는 내장 소스와 하얀색 소스도 번갈아 먹기 딱 좋았다. 게찜을 다 먹을 무렵 식사를 언제 할 거냐고 직원분이 여쭤보신다. 타이밍을 맞춰 말씀드리면 게딱지 볶음밥과 라면이 나온다. 생각보다 약간 시간이 걸리므로 게찜을 반 조금 넘게 먹었을 때 주문하면 좋을 것 같다. 볶음밥과 라면은 무난했지만 결코 맛이 없진 않았다. 어떻게 먹더라도 맛이 없긴 힘든 조합 아닌가.
배부르게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직원 한 분께서 '헛개수차' 한 병을 주셨다. 가게에서 직접 끓이신 거라고 했다. 헛개수를 좋아하진 않지만 기왕 챙겨주신 거 카페로 가는 차 안에서 물 대신에 차를 마셨다. 그런데 시중에 파는 것보다 헛개수 함량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 평소에도 헛개수를 좋아하지 않던 우리 엄마는 차를 몇 모금 마신 뒤 속이 좀 안 좋다고 했다. 아마 과식을 해서 체한 걸 수도 있겠지만, 헛개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마음만 감사하게 받아도 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카페는 <바다정원>이었다. 교토에 이어서 이번에도 동생이 실시간 회의에 참여해야 해서 자리가 많은 카페를 찾아야 했다. <바다정원>은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 자리가 충분히 많아서 우리가 찾는 조건에 부합했다. 크로와상과 커피를 시킨 우리는 동생이 회의를 하는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물론 동생도 회의 시작 전까지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많이.
바닷바람이 차가웠음에도 불구하고 야외석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만큼 이 날 속초의 바다는 눈에 담을 가치가 있었다. 해변과 카페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두 어 번의 주문을 한 우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다.
서울에선 네 가족이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내 방, 동생 방, 소파, 안방 침대에 자리를 잡고 각자 할 일(보통 스마트폰을 보는 일)을 하다가 식사하기 전에나 거실에 모였다. '하이킥'이나 '용감한 형사들'을 볼 때가 그나마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이었다. 대화가 단절된 집은 아니지만 매일 같이 있다 보니 점점 각자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다.
지난 교토 여행 때도 느꼈지만 가족 여행, 그것도 한 방에서 모두가 같이 자는 가족 여행은 모두를 뭉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서로 부딪히고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따로 떨어져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에는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 구성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예의'를 차리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여행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서 우리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드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